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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의 농민으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은 의외로 농사 그 자체가 아니다. 씨를 뿌리고 뿌린 씨를 수확이라는 성과로 거두기 위해 땀을 흘려야 하는 육체적인 노동도 물론 힘든 일이지만, 힘든 노동의 강도보다 더 큰 어려움은 수확 이후에 찾아온다. 애써 수확한 작물을 말리고 적정한 온도에 보관할 공간이 없다. 또한, 수확물을 선별하고 포장해서 출하까지 감당할 여력은 더더욱 되지 않는다. 농사는 끝났는데 큰일은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수확한 농산물은 그 농작물의 특성에 맞춰 알맞은 온도에 맞춰 저장해야 물건의 품질이 담보되어 제값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저장할 공간이 없어 제값을 받지 못한 채 급히 출하하거나, 제때 저장하지 못하여 한해 농사의 결과물을 결국, 폐기해야 하는 현실을 바라만 봐야하는 농민의 가슴 속은 새까맣게 타게 된다.
[농가의 어려움]
1) 농민부담
농업 환경은 농민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개인에게 떠맡기고 있다. 보관.선별.건조.가공까지 모든 과정을 각자 해결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소규모 농가와 고령 농민의 부담은 갈수록 커진다. 청년 농업인과 귀농인에게도 이 현실은 녹록지 않다. 농사를 짓기 위해 농촌에 들어왔지만, 농사 외적인 일, 즉 수확 이후에 벌어지는 농산물의 보관에서 판매까지 이어지는 부담에 지쳐 다시 떠나게 되는 사례가 반복된다. 농사를 잘 지어도 그 농산물로 노동의 가치라는 합리적 이익을 얻지 못하면 농사지을 목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2) 저장창고
수확 이후 가장 큰 문제는 수확한 농산물을 저장할 마땅한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농산물의 물량이 쏟아지는 수확 시기에 바로 출하하는 것보다 물량이 희소해지는 기간까지 보관했다가 팔게 되면 농가의 수입이 더 늘어난다. 그러나 그 기간까지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보관할 창고가 없어서 농민은 헐값에 농산물을 바로 팔 수밖에 없다. 수확철이면 농산물을 저장할 공간이 없다고 손을 놓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활용 가능한 공간은 많다. 정부와 군 보조금으로 지어져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비어 있는 공공시설들이다.
[개선 방안]
1) 유휴시설
영암을 둘러보면 마을 곳곳에 문이 닫힌 채 시간이 멈춘 듯한 농협 양곡창고나 군에서 보조한 농기계 수리센터 등을 마주하게 된다. 구조적으로는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 주체와 관리 모델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되고 있다. 쓸 수 없는 공간이 아니라, 쓰지 않기로 한 공간이 된 셈이다. 한때는 수확한 농산물이 쌓이고, 농기계 수리를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히 오가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잡초와 먼지 속에서 제 역할을 잃은 채 방치된 곳이 대부분이다. 쓰이지 않는 공간은 점점 기억에서도 멀어진다. 그러나 그 앞에 서면 비어 있는 것은 그런 공간만이 아니라 과거 농촌 마을에서 이웃들과 품앗이를 나누던 우리 민족 ‘두레’의 전통마저 사라져 씁쓸한 공허함만 남아 있다.
2) 공동창고
마을 내 창고와 공공시설을 조사해 리모델링을 거쳐 농산물을 보관할 수 있는 공동창고로 만들면 지역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농산물의 적정 저장온도는 농산물마다 다르므로 영암군 소농들이 가장 많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저장할 수 있는 온도에 맞춰 지역마다 한 품목에 특성화된 공동창고로 만들면 작업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A 마을은 고추 전문 저장창고, B 마을은 양파 전문 저장창고, C 마을은 마늘 전문 저장창고 등으로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문화된 공동창고에 선별, 건조, 소포장 설비 등을 단계적으로 갖춘다면 농민의 부담은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고, 협동하면 서로 이익이 된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어 ‘두레’의 전통도 다시 이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공간은 단순한 창고가 아니다. 농민에게는 시간을 벌어주는 곳이고, 농산물의 가치를 지켜주는 울타리이다. 출하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가격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며,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농사를 지은 농민의 자존심을 지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 운영주체
행정이 모든 일을 책임지는 구조가 아니라 영농조합, 협동조합 등을 조직하여 마을 사람이 주체가 되는 공동 운영 체계가 필요하다. 이용 기준과 관리 원칙을 함께 정하고, 함께 사용하고,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갖추게 되면 이런 공간들은 비로소 마을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그 지역의 거점이자 핵심시설이 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함께 일하는 협업은 주민자치의 근간이 되는 일이다. 단, 운영의 주체는 주민이 중심이 되는 조합원이지만 행정에서 집행하는 보조 사업이 있으므로 군 담당자는 관리와 감사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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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효과]
1) 농가의 부담 완화
농산물을 수확한 후 저장할 수 있는 창고가 있다는 것은 농민이 마음 놓고 농사만 지으면 되는 첫 단계이다. 여기에 저장한 농산물을 공동으로 선별, 건조하여 포장까지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다면 농가의 농산물 판매에 대한 부담이 완화된다.
2) 농산물 판로망 안정
농산물을 온도에 맞춰 저장하게 되면 품질은 유지되고, 출하 시기 조절도 가능하므로 땀 흘려 수확 후 바로 판매하지 않아도 된다. 저장시설이 있으면 수확기에 바로 팔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제값을 받을 다양한 판로를 모색할 수 있다.
3) 농업 인프라 구축
유휴 창고를 활용 가능한 공동 자산으로 바꾸는 일은 단순한 시설 정비가 아니다. 이 일은 농촌을 지속 가능한 삶의 공간으로 되돌리는 출발점이 된다. 방치된 공간에 불이 켜질 때, 그동안 멈춰 있던 농촌의 시계도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4) 귀농 귀촌인 정착
공동 거점의 인프라는 청년 농업인과 귀농인에게도 의미가 크다. 초기 진입에 따른 부담을 줄여주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을 준다. 농촌에서도 잘살 수 있다는 확신은 동네의 실질적인 인적, 물적 인프라에서 비롯된다.
5) 지역 선순환 경제
농민이 농사 외의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농산물이 나온다. ‘마음 놓고 농사만 짓는 환경’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농촌이 다시 숨쉬기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영암군의 닫힌 창고 문이 다시 열리고 생산-가공-판매가 마을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립형 농촌경제의 구조가 구축되면, 영암군의 농촌은 단순한 농산물 생산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농촌경제’를 만드는 본보기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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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의 방향]
영암군 유통산업과는 먼저 유휴창고 실태조사를 통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공공사업 활용 가능성(안전성검토 등)을 파악할 계획이다. 유휴창고 활용사업은 지역 주민의 실질적 참여와 운영 의지가 핵심인 만큼 사전의견 수렴을 진행하여, 주민주도 관리가 가능한 마을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개선으로 즉시 활용가능한 공간조성에 중점을 두어, 공동 임시적치 및 저장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순차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
임시 저장공간 활용이 안정화되면, 유휴창고의 농산물 처리 시설 전환을 위한 인허가와 용도 변경 등 행정절차를 지원하고, 단계별 리모델링 및 설비 도입을 위한 국.도비 공모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예산을 확보하고 필요하면 군비 지원도 검토할 예정이다.
*자료제공: 임영순 도포면 주민자치회 회장, 영암군 유통산업과
글.정리: 조정현 편집위원 yanews@hanmail.net
2026.02.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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