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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미술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기 위한 중국 유학은 김준권 화백에게 오히려 우리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1994년 중국 심양(瀋陽)으로 건너가 노신미술학원(魯迅美術學院)에서 수인(水印) 목판화와 전통 판화 기법을 연구했다. 먹과 물의 농담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수인 판화의 방식은 동양 판화가 지닌 미학적 깊이를 다시 되새겨 보게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가 중국에서 마주한 것은 ‘타자의 예술’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였다. 동아시아 목판 인쇄 문화는 고려.조선 시대 불경과 목판 인쇄술을 통해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중국에서 판화의 역사와 이론을 체계적으로 접할수록, 그는 한국 목판 문화의 전통을 알게 되었고, 그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김준권 화백은 중국 유학 시절을 통해 판화를 단순한 표현 기법이 아닌 사상과 기록을 전파하는 문명사적 유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가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 속에서 체득한 ‘현실과 만나는 예술’이라는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었다. 과거에는 시대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도구였다면, 중국 유학 이후에는 역사와 정신을 새기는 매체로 확장된 셈이다. 그의 화면은 점차 자연과 산수, 생명에 대한 사유로 넓어졌다. 굵은 선은 여전히 힘을 품고 있지만, 그 안에는 시간의 흐름과 문화적 기억이 스며 있다. 특히 먹의 농담과 여백의 운용은 동양 회화의 전통과 목판의 물성을 결합한 결과다. 이는 단순한 기법의 수용이 아니라, 동아시아 미술 세계에서 한국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중국 유학 8년, 그리고 이후 이어온 인연 속에서 그는 고구려 유적을 찾고 동북지방에 흩어져있는 독립운동의 현장을 답사하며 자신에게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외부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또렷해지는 자국의 역사처럼, 그는 타국에서 우리의 문화를 다시 그리고 새겼다. 결국, 김준권 화백에게 중국 유학은 기술 습득의 과정이 아니라, 우리 역사와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여정이었다. 목판 위에 새겨진 선들은 단순한 조형을 넘어, 동아시아의 시간과 한국의 역사를 함께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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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대학을 세우다]
1990년대 초반, 충북 진천 백곡면에 작업실을 마련한 이후, 김준권 화백은 도시의 속도 대신 산의 리듬을 택했다. 진천에서의 삶은 고요하지만 치열했다. 도시의 속도는 빠르지만 쉽게 휘발되고, 산의 리듬은 느리지만 깊이 스민다. 그는 빠름 대신 깊이를 택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등성이와 들녘, 안개 낀 새벽 공기는 배경이 아니라 판목 위에 새겨질 형상이었다. 계절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칼끝으로 옮겨 적어야 할 결이었다. 자연은 그의 작업실 바깥에 머물지 않고 그의 손 안, 나뭇결 속에 있었다. 그의 작업은 개인적 성취에 머물지 않고,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에서 전시와 기획으로 이어졌다. 판화는 화랑 안에만 머무는 예술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화 자산이 되었다.
한국 현대 목판화의 지평을 넓혀온 김준권 화백에게 예술은 전승되어야 할 기술이자, 함께 나누어야 할 정신이었다. 진천 작업실에서 시작된 ‘목판대학’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서 태어난 배움의 장이다. 이곳은 제도권 대학의 공간이 아니어서 학위도, 졸업장도 없다. 대신 나무판과 조각칼, 먹과 종이, 그리고 긴 시간이 있을 뿐이다. 배움은 작업대 앞에서 나무를 마주하며 이루어지는 공동체적 실험이기도 하다. 함께 판을 나르고, 먹을 갈고, 종이를 적시며 작업하며 완성된 작품에는 모두의 시간이 스며 있다. 오늘날 디지털 이미지가 순식간에 복제되는 시대에도, ‘목판대학’은 느린 시간의 가치를 묻는다. 한 선을 새기기 위한 집중, 한 장을 찍기 위해 반복되는 손길은 속도와 효율의 논리를 넘어선다.
영암에서도 영암문화관광재단이 주관하는 ‘판화 버스킹’이 시작된다. 첫걸음은 월출산을 품은 영암읍 망호리 농촌체험마을이다. 김준권 화백과의 버스킹은 작업실을 벗어나 마을로 들어가 마실하고, 이야기를 줍고, 그 자리에서 나무판에 새겨 곧바로 찍어내는 현장의 기록이다. 참여자들은 함께 걷고, 새기고, 색을 입히고, 찍어낸다. 마주치는 모든 풍경은 배경이 되고, 목판에 새길 대상이 된다. 골목의 말투, 지명의 어원과 유래, 논과 돌담 같은 마을의 자원은 선과 여백으로 옮겨진다. 옛 기억을 잃은 마을은 다시 새겨지고, 입혀지고, 찍히는 과정에서 되살아난다. 즐겁게 협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손에 쥐어지는 것은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는 이 마을을 함께 읽었다’라는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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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울림-산운(山韻)]
2000년대 중반까지 새로운 틀을 모색해온 김준권 화백은 2006년 이후 마음속에 그려온 작품을 실체화하기 시작한다. 그의 대표 연작 《백두대간》은 이런 작업의 결과물로 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나무판 위에 새겨야 할 한반도의 맥이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큰 산줄기를 이르는 말이다. 강은 끊겨도 산은 이어지듯 백두대간은 단순한 지리 개념을 넘어 이 땅의 정신적 축을 상징한다. 이 거대한 산맥을 목판 위에 옮기며, 백두대간이라는 역사의 흐름을 예술로 새겨왔다. 칼끝 하나하나로 새겨진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선은 산의 맥박이며, 먹빛의 농담은 안개와 바람의 흐름을 담는다. 수 없는 인화(印화) 과정을 쌓아 올린 화면에는 산과 그의 시간이 함께 겹쳐있다.
김준권 화백의 산은 실제 지형을 바탕으로 하지만, 화면 속 산맥은 한반도 전체의 기운을 품는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도 산줄기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인간이 그은 경계와 달리, 자연의 능선은 하나로 흐른다. 《백두대간》은 바로 그 연속성과 생명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현장을 지나온 그는 현실과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어왔다. 이후 그의 시선은 국토의 맥으로 확장되었다. 산을 새기는 일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이 땅의 역사와 시간을 새기는 작업이 되었다. 나뭇결 위에 얹힌 먹빛은 자연의 재료로 자연을 담아내는 순환을 이룬다. 반복되는 그 과정은 수행자의 사유가 된다. 산은 말없이 서 있고 그의 시간이 빚어낸 고요한 화면은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2009년에 제작된 《산운-0901》은 2018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서명 장면의 배경으로 사용되며, ‘화합’과 ‘이어짐’의 상징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분단의 공간에서 하나로 이어진 산맥이 배경이 되었다는 점에서 《산운-0901》은 화해와 연결의 이미지로 읽힌다. 산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공존의 이미지를 읽었다.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먹의 깊이다. 옅은 먹은 공기를 만들고, 짙은 먹은 산의 골격을 세운다. 번짐과 여백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다. 나무판 위에 새겨진 선들은 반복과 압력을 거쳐 화면에 찍히는데, 그 과정 자체가 수행에 가깝다. 한 번의 붓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깎고 찍어내는 인내의 축적이 백두대간의 울림을 만들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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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을 그리다]
김준권 화백은 8년 전부터 그리웠던 월출산을 화폭에 그리고 있다. 그에게 고향 영암의 월출산은 예술적 사유가 시작되는 자리다. 그가 월출산의 모든 장면을 담고자 하는 이유는 그의 삶과 뿌리를 새기기 위함에 가깝다. 월출산을 그리는 동안 영암군으로부터 전시회 제안을 받았고, 어렵사리 약 4년만인 2024년에 영암 하정웅 미술관에서 〈백두대간에 스미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이는 작품활동 40년을 집약해 선보인 자리로, 백두대간의 장대함을 목판에 새긴 대표작들을 통해 국토의 맥과 시간을 먹빛의 농담으로 펼쳐 보였다. 늘 월출산을 그리워하던 작가가 고향 영암으로 돌아와 작품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그의 전시회는 예술가의 귀향이며, 국토와 탯자리가 만난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전시회를 마쳤지만, 김준권 화백은 영암을 더 자주 방문하며 월출산 깊은 골까지 들어간다. 2024년 8월 3일, 35℃가 넘어서며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었던 날도 월출산 속살을 그리기 위한 탐방길이었다. 사전에 약속되었던 월출의 깊은 골, 칠치폭포를 찾는다. 비법정 탐방로라 사전 허가를 받고 나선 길은 무더위만큼이나 쉽지 않았지만, 장마 뒤 가느다랗게 흐르는 네 곳의 폭포는 각기 다른 자태로 맞이하였다. 첫 폭포의 단단한 기세, 두 번째의 단아한 곡선, 세 번째의 농염한 깊이, 그리고 환희의 절정을 보여주는 네 번째 ‘작은 이구아수’까지. 김준권 화백은 먹으로 물과 암반의 숨결을 스케치한다. 이런 그의 작업은 “en plain air”(현장에서 그리기)를 추구한 태양의 화가 ‘반 고흐’의 열정과 닮았다.
나그네처럼 오가던 8년여의 과도기를 지나 김준권 화백은 영암에 소소한 작업 공간을 마련했다. 30여 년 삶의 기반이었던 진천을 떠난 건 아니지만, 고향에 머물며 작업을 할 공간을 꾸렸다는 사실은 그의 예술적 귀소를 뜻한다. 월출산의 기암과 능선,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물길은 어린 시절 사유의 원형이자 그의 세계를 떠받쳐온 뿌리다. 영암에 머물며 지역 문화 인사들과의 교류 속에 예술인의 공공적 역할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어법으로 영암을 기록하며 지역과 소통할 방법을 찾고 있다. 고향 사람들과 고향의 어린 학생들을 위한 ‘판화 버스킹’ 같은 활동은 물론, 앞으로 리모델링을 통해 문화생산기지로 거듭날 ‘대동공장’의 방향에도 목소리를 보탤 것이다. 그에게 월출산은 “수반 위에 놓인 한 폭의 산수화”이며, 그의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빛과 바람이다. 신령한 월출산을 매일 바라볼 수 있는 영암에서의 시간은 그의 예술혼을 더욱 단단히 여미는 ‘또 하나의 새김’이다.
2026.04.1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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