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군 지명연구(2)
검색 입력폼
 
낭산로에서

영암군 지명연구(2)

- 도포, 상리, 길고지, 야기내, 가척 -

이영현 영암학회 회장
영암군 도포면의 ‘도포(都浦)’라는 지명은 현재 도포리 뒤에 있는 돼지섬(돛섬, 猪山)에서 유래한다. 100여 년 전까지 바닷물에 휘감겨 있던 이 도포리의 산이 돼지를 닮았다 하여, 사람들은 돼지의 옛말인 ‘돗섬’이라 불렀다. ‘돗(돛, 돝)’은 ‘도야지, 돼지’와 같은 어원이다. 썰물이 되면 이 돗섬 앞에는 광활한 개펄이 펼쳐졌는데, 돗섬과 개펄을 합하여 사람들은 ‘돗+개’라 불렀고, 발음하기 쉽게 관형격조사인 ‘의’를 넣고 연음화하여 ‘돗의개>도시개’로 불리게 되었으며, ‘도시개’를 영암의 관리들이 한자로 표기할 때 ‘도시포(都市浦)’로 기록하면서 관제명(官制名)인 도시포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명칭은 조선시대 각종 문서나 1872년 지도, 다산 정약용과 절친했던 문산(文山) 이재의(李載毅, 1772-1839) 시구(詩句) 등에도 남아 있다. 그러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읍면동리 폐합에 따라 ‘리’나 ‘면’, ‘군’의 명칭은 원칙적으로 2자여야 했기 때문에, 도시포에서 관형격조사인 ‘시’가 탈락되어 ‘도포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 영암군은 영암면(군시면과 군종면 통합), 신북면(군의 북쪽의 의미), 군서면(서시면과 서종면 통합), 금정면(금마면과 원정면 통합), 시종면(북이시면과 종남면 통합)이라는 5개 면에 북일시면과 북일종면, 곤일시면과 곤일종면, 곤이시면과 곤이종면을 합하여 현재와 같은 11개 면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다 1931년에 영암군의 읍면 명칭이 다시 크게 바뀐다. 북일시면부터 곤이종면까지 6개 면민들이 자주 혼동된다는 이유로 명칭 변경을 건의하게 된 것이고, 이 건의서는 1931년 1월 27일 전라남도지사를 거쳐 총독부에 접수되었다가, 1931년 4월 1일부로 공식 인가되면서 북일시면는 덕진면으로, 북일종면은 도포면으로, 곤일시면은 미암면으로, 곤일종면은 삼호면으로, 곤이시면은 학산면으로, 곤이종면은 서호면으로 변경되었다.

조선 초기부터 불리던 북일종면이라는 명칭이 1931년 4월 1일부로 도포면이 되면서, 요즘과 같은 도포면 도포리가 생겨난 것이다. 1998년 『영암군지』나, 2024년 『영암의 땅이름』에 이 당시 함께 변경된 읍면 연혁이 더러 잘못되어 있는 것은 국가기록원에서 제공하는 ‘총독부 기록물(면의 명칭변경에 관한 건(전라남도), 관리번호 CJA0002884)’을 보지 못한 탓이다.

도포면 구학리 서리마을의 명칭도 자주 질문받는 지명 중 하나다. 원래 서리는 한자로 상리(霜里)이므로, 이 지명의 어근은 ‘서’인데, 1798년 『호구총수』의 마을 이름은 ‘학송정(鶴松亭)’이다. 학은 흔히 ‘크다, 흙, 학(鶴)’의 의미로 빌려쓰는 한자인데, 여기에서는 날아다니는 학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송이다. ‘송(松)’의 순우리말은 ‘솔’이다. 이‘솔’은 ‘소나무’나 ‘작다’는 뜻으로 주로 쓰였는데, 여기에서는 소나무로 쓰였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松里’는 원래 ‘솔리’였음을 재구(再構)할 수 있다. ‘학이 앉아 있는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솔리’에서 받침 ‘ㄹ’이 탈락되고 모음이 상승하면서‘솔리>소리>서리’로 변했다가, ‘서리’를 ‘서리상(霜)’자로 명기하면서 관제 지명인 ‘霜里(상리)’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765년 『여지도서』에 상리제(霜里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300여 년 전부터 학송정과 상리가 함께 사용된 아주 오래된 지명 중 하나다.

상리와 등을 맞대고 있는 도포면 영호리 1구의 마을 이름은 회호정(回湖亭)이다. 실제로 도포에서 도도히 올라오던 바닷물이 썰물 때면 길고지의 산능선과 부딪치면서 급속히 휘돌아 나갔을 법한 마을이다. 내킨 김에 회호정 맞은편 길고지 마을 지명을 재구해 보자. 1789년 『호구총수』에는 ‘지곶지(地串之)’로 적혀 있다. 방금도 말했지만, 예전에 이곳은 바닷물이 넘실대던 해안이었다. 따라서‘串(곶)’은 ‘장산곶’, 울산의 ‘호미곶’의 곶처럼, 바닷가에서 앞으로 뻗어나온 긴 능선을 말한다. ‘지(地)’는 ‘길다’의 사투리 ‘질다’에서 나온 말로 ‘긴 곶’이 된다. ‘길+곶’이 연음화하여 현재와 같은 길고지가 된 것이다. 그 이웃 마을 ‘야기내’의 지명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야기내는 ‘야기’와 ‘내’의 복합어다. ‘야기’는 ‘아기’의 변음으로, ‘아’가 들어가는 지명의 대부분은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호면 아천리의 ‘아천’이 작은 시내를 말하듯이 ‘야기내’도 ‘작은 시내가 있는 마을’을 말한다.

영암군 도포면의 ‘가척’이라는 지명의 뜻도 질문을 자주 받는다. 영암 방언에 가장자리를 의미하는‘가(邊)’는 ‘가새’, ‘가생이’‘가재’ 등으로 불린다. 여기에서‘가재’를 한자를 쓰면‘가’는 ‘加(가)’이고, ‘재’는 잴 척의 ‘尺’ 자로 대체되어‘가재=加尺(가척)’이 되었다. 1896년 9월 24일 나주군 종남면 가척이 인덕, 학림 등과 함께 현 도포면인 북일종면에 편입되면서 영암의 가척과 구분하기 위해 나주 가척은 나가척, 영암 가척은 영가척으로 기재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지명은 주변 환경을 부르던 순우리말에 한자와 일본식 관제명이 가미된 역사적인 자산이다. 이런 언어 연구에 다들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키워드 : 영암군 | 지명연구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