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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공자는 누구인지 성찰해 본다. 공자가 유학사를 통틀어 유림들에 의해 최고의 스승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가 예수처럼 신(神)적인 존재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진흙 속에 핀 연꽃처럼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이행되는 혼란기를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내면서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위한 보편적인 울림과 메시지를 던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2577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그는 어쩌면, 당시 신분제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들의 절실한 과제인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행복과 존속을 위한 모범 답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공존한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지금부터 27년 전인 1999년 중국 갑골문을 연구하던 어떤 교수가 ‘유교의 유효기간은 끝났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는 자신의 저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 “유교의 이상 사회는 공자가 지나가는 말처럼 내뱉은 몇 마디 말을 가지고 부풀려놓은 허상에 불과하다”며, 유교는 그 양반의 독창적인 작품만은 아니며 뿌리를 캐보면 공자도 결국 전수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儒)의 기원을, 상(商)나라를 누르고 쿠데타에 성공한 은나라 출신의 무당 집단들이 이후 주나라의 제례와 문화를 담당했던 것에서 찾으면서, 하늘의 아들(天子)인 주나라 왕이 확립했던 ‘종법질서’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면서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공자는 바로 이들 유(儒)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정통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유학에서 출발하여 온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결국 속수무책으로 일제에게 나라를 내주게 된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에, 이제는 공자와 결별을 고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체였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위의 책이 출간된 지 채 2개월이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교수는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통하여 위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국민국가의 주권이나 공동체적 가치를 도외시하고, 세계전략에 의한 초강대국의 논리대로라면 그 이후에 파생되는 약소국의 빈곤과 기아, 그리고 인간의 얼굴은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또한 삼강(三剛)과 오륜(五倫)의 근본 이념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맹자」의 오륜이 인륜 관계의 상호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반면, 한나라 동중서에 의해 제창된 삼강은 약자의 일방적 의무만을 강요하기 때문에 결국 유교나 공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는 것이다.
종합주가지수와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세계자본주의는 이미 국경을 넘나들며 갈수록 강대강 대결로 치닫고 있다. 이-팔, 러-우 전쟁만으로 부족했던가? 미(이)-이란 전쟁 또한 엄청난 희생과 상처에도 아랑곳없이 지속되고 있다. 진영 간 대립과 갈라치기가 횡행하는 국내 정치 상황은 또한 어떤가? 과연 이 광기 가득한 세상을 치유할 방도는 없는 것인가? 고막이 터질듯한 굉음을 내지르며 중동의 하늘과 바다를 미친 듯이 누비는 미사일과 드론의 현란한 곡예를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가?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폭력과 패권주의가 만연했던 그 시절,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심정으로 인간성 회복을 외치며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았던 공자님을 지금 이 자리로 모셔 와야 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그분의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그분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2026.09.1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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