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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가타현 중심부에서 자동차를 타고 2시간가량 달리고 다시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나가오카시 야마코시 지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과 산 사이로 계곡이 이어지고 그 사이 비탈을 따라 오래된 일본식 주택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다.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상업시설은 물론 편의점도 마트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중교통만으로 마을 곳곳을 둘러보기에도 쉽지 않다. 이곳 나가오카시 야마코시 주민들이 모이는 공간 역시 시민회관과 같은 지역시설이 중심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산골 농촌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첫인상이다. 그러나 마을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다른 농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 나타났다.
산골주택 마다 크고 작은 연못과 양식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물속에서는 붉은색과 흰색, 검은색이 선명하게 뒤섞인 비단잉어들이 헤엄쳤다. 한두 집만의 모습도 아니었다. 마을 곳곳에서 비슷한 시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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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키고이(錦鯉.비단잉어).
이 산골마을의 역사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물고기부터 알아야 한다.
야마코시에서 니시키고이는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최근 만들어낸 콘텐츠가 아니다. 오랜 세월 주민들의 생활과 생업 속에서 이어져 온 산업이자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 겨울 식량이던 잉어, 200년 뒤 ‘헤엄치는 보석’으로
니시키고이의 역사는 약 200년 전 에도시대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부와의 왕래가 쉽지 않았던 산골마을 주민들에게 겨울철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주민들은 산간지역의 논과 연못 등을 활용해 식용 잉어를 길렀다.
그런데 평범한 잉어 가운데 기존과 다른 색깔을 띠는 개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붉거나 흰 빛깔을 띠는 잉어를 따로 골라 기르기 시작했고, 아름다운 색깔과 무늬가 나타나는 개체를 서로 교배했다.
처음부터 세계적인 관상어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계획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산골 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우연히 발견된 변화에 관심을 갖고 이를 세대를 이어 발전시킨 결과였다.
시행착오가 반복되면서 붉은색과 흰색 등이 어우러진 다양한 형태의 잉어가 등장했다.
1830년 무렵에는 나가오카 일대에서 무늬가 있는 잉어가 거래됐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산골마을 주민들의 겨울 식량이었던 잉어가 서서히 ‘보는 물고기’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니시키고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중요한 계기는 1914년 도쿄 우에노공원에서 열린 다이쇼박람회였다.
당시 약 20마리의 니시키고이가 출품돼 은메달을 받으면서 야마코시가 속한 나가오카시 비단잉어가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됐다. 이후 품종 개량은 더욱 활발해졌다.
다이쇼산쇼쿠, 쇼와산쇼쿠 등 여러 품종이 등장했고, 생산자들이 색깔과 무늬, 체형을 발전시키면서 니시키고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관상어로 성장했다.
1968년에는 제1회 전일본종합비단잉어품평회가 열렸다. 니가타에서 니시키고이를 ‘헤엄치는 보석’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화려한 색깔을 가진 물고기가 아니라 생산자가 오랜 시간 품종을 개량하고 한 마리 한 마리를 길러내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바라보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니시키고이 관련 주요 용어와 21개 품종의 명칭.정의가 일본농림규격(JAS)에 포함돼 표준화되기도 했다. 현재는 150종이 넘는 다양한 품종이 존재하고 일본을 넘어 세계 각국에 애호가를 둔 수출상품으로 성장했다.
나가오카시는 주에쓰 대지진 10년을 맞은 2014년 니시키고이를 ‘시의 물고기’로 지정했다.
200년 전 눈 덮인 산골에서 겨울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키우기 시작한 잉어가 이제는 지역을 세계에 알리는 상징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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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특산물이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
현장에서 바라본 니시키고이의 모습은 관광안내책자에서 접하는 것과 조금 달랐다.
야마코시 마을을 돌아보면 니시키고이를 지역특산물이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래된 주택 바로 옆에 양식장이 붙어 있고, 집 주변 연못에서 니시키고이가 헤엄쳤다. 주민들의 주거공간과 생산공간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야마코시 시민회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건물 안에는 니시키고이를 볼 수 있는 작은 수족관과 관련 상품들이 마련돼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시민회관 관계자 역시 니시키고이가 야마코시의 중요한 특산물이며 지역을 지탱하는 자산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오랜 세월 주민들이 직접 기르고 품종을 발전시켜온 만큼 니시키고이는 단순히 외부 관광객에게 판매하기 위한 상품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지역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설명하는 상징에 가까웠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은 훗날 야마코시가 지역 밖 사람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야마코시의 역사를 바꾼 것은 니시키고이만이 아니었다.
이 마을에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또 하나의 기억이 남아 있다.
2004년 10월23일 니가타현 주에쓰지역을 진원으로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했다. 니가타현 주에쓰 대지진이다. 산간지역에 자리 잡은 마을에 지진이 덮치면서 곳곳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다. 도로가 끊겼고 전기와 통신을 비롯한 생활기반시설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산과 계곡 사이에 흩어져 있던 취락들은 외부와 연결되는 길을 잃었다. 야마코시의 모든 취락이 고립됐다.
이번 현지 취재에서 만난 야마코시 시민회관 관계자 역시 당시 지진을 직접 겪은 주민이었다.
관계자는 당시 강한 흔들림과 함께 마을 곳곳이 무너지고 도로가 끊기면서 외부와 오갈 수 없게 됐던 상황을 설명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오가던 길이 끊기고 자신들이 생활하던 마을이 한순간에 고립됐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상황은 주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시민회관 2층에 마련된 지진 관련 전시공간에는 그날의 흔적이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산허리 전체가 무너져 내린 모습부터 도로가 사라진 현장, 파손된 주택과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버린 마을의 모습까지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사진 속 풍경과 자동차를 타고 지나온 마을을 머릿속에서 겹쳐보면 지진의 규모가 더욱 선명해진다.
지금은 도로가 다시 놓이고 집과 논밭이 자리하고 있지만 2004년 당시에는 주민들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 “전촌 피난은 야마코시 재생의 시작이었다”
지진 발생 직후 주민들은 고립된 마을 안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구조에 나섰다.
하지만 계속되는 여진과 산사태 위험 속에서 주민들이 마을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어려웠다.
지진 발생 이틀 뒤인 10월25일 피난권고가 피난지시로 전환됐다.
결국 주민 전원이 야마코시를 떠나 나가오카시로 피난하게 됐다. 도로가 끊긴 곳이 많아 주민들을 마을 밖으로 옮기는 데 헬리콥터도 동원됐다.
야마코시의 지진 기록에는 당시 주민들이 입고 있던 옷 그대로 헬리콥터에 올라 마을을 떠나야 했던 상황이 담겨 있다. 주민들이 헬리콥터에서 내려다본 것은 자신들과 선조들이 지켜온 논과 밭, 집과 마을이 무너져 내린 모습이었다.
가축을 키우던 주민들에게 피해는 더욱 컸다. 축사가 무너지고 소들이 죽거나 마을에 남겨졌다.
함께 데려갈 수 없는 소들의 줄을 풀어놓고 피난해야 했던 주민들의 기록도 남아 있다.
당시 야마코시 촌장이었던 나가시마 다다미는 전촌 피난을 단순히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만 보지 않았다. 야마코시가 남긴 기록에서 그는 주민 모두가 함께 행동하는 것이 공동체의 유대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판단했고, 전촌 피난을 ‘야마코시 재생’을 향한 시작으로 바라봤다.
재난으로 주민들이 흩어지는 순간 오히려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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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날 것인가, 다시 돌아올 것인가
피난 이후 주민들에게는 더 어려운 선택이 남았다. ‘다시 야마코시로 돌아갈 것인가.’ 피난생활이 끝난다고 모든 주민이 자연스럽게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산사태로 생활터전이 훼손됐고 다시 큰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도 있었다. 피난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지역에 정착할 수도 있었다.
야마코시의 기록에는 귀촌이 현실화될 무렵 가설주택에 살던 많은 가정에서 한두 번씩 가족회의가 열렸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돌아갈 것인가, 남을 것인가. 현재 야마코시에 살고 있는 주민 상당수는 그 과정에서 다시 이곳에서 살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선조에게 물려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남은 땅이 아니라, 대지진 이후 삶의 터전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다시 살아가겠다고 주민들이 선택한 땅이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주민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지진 이전 약 2천200명이었던 야마코시의 인구는 이후 크게 줄었다. 현재 이곳에 사는 주민은 700명 안팎이다.
2005년에는 나가오카시에 편입되면서 독립된 행정구역이었던 ‘야마코시촌’도 사라졌다. 재난 복구를 통해 도로와 시설은 다시 만들 수 있었지만 떠난 사람까지 모두 되돌릴 수는 없었다.
대지진은 야마코시에 건물과 도로의 복구를 넘어 ‘사람이 줄어드는 마을을 앞으로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더 긴 숙제를 남긴 셈이다.
■ 지진의 기록 아래 헤엄치는 비단잉어
야마코시 시민회관에서 이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은 어쩌면 계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2층에서는 주에쓰 대지진 당시 사진과 주민들의 기록을 볼 수 있다. 산이 무너지고 도로가 끊겼다. 주민들이 마을을 떠났다.
전시공간을 둘러보고 1층으로 내려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작은 수족관에서 형형색색의 니시키고이가 유유히 헤엄친다.
주변에는 니시키고이를 소재로 한 상품도 놓여 있다. 한 층 위에는 마을이 무너졌던 기억이 있고 한 층 아래에는 200년 가까이 주민들과 함께 살아온 지역의 상징이 지금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시민회관 밖으로 나오면 그 모습은 다시 주민들의 생활로 이어진다. 마을 곳곳의 집 옆에는 크고 작은 연못과 양식장이 있다.
시민회관 관계자 역시 지진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하면서 니시키고이가 지금도 야마코시의 중요한 특산물로서 지역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대지진은 도로를 끊고 주민들을 마을 밖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주민들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니시키고이 생산기술과 지역의 정체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인구가 줄어든 이후에도 니시키고이는 야마코시를 외부에 알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강력한 지역자산으로 남았다.
■ 복구됐지만 ‘인구감소’라는 재난은 계속됐다
20여 년이 흐른 현재 야마코시에서 2004년 당시와 같은 지진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하기는 어렵다. 도로는 복구됐고 주민들은 다시 농사를 짓고 니시키고이를 기른다.
그러나 숫자로 보면 마을은 지진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약 2천200명이던 주민이 700명 안팎까지 감소했다. 여기에 고령화까지 겹쳤다.
이는 야마코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많은 산촌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교육과 취업을 위해 도시로 이동하고, 고령 주민이 남은 마을에서는 상점과 교통, 의료와 같은 생활서비스를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사람이 줄면 지역의 산업과 공동체를 유지할 사람도 줄어든다. 새로운 주민을 데려오면 해결할 수 있지만 산간지역이라는 지리적 여건과 일자리, 생활편의 등을 생각하면 도시의 인구를 대규모로 농촌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야마코시 역시 같은 벽에 부딪혔다.
그래서 이 작은 산골마을이 선택한 방향은 조금 달랐다.
■ 인구를 다시 채우는 대신 ‘마을 밖 주민’을 찾다
사람이 줄어드는 농촌의 전통적인 해법은 새로운 주민을 데려오는 것이다. 귀농.귀촌을 유도하고 기업과 일자리를 만들고 주거환경을 개선해 정주인구를 늘린다. 이런 정책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주민 700명 안팎의 고령화된 산골마을이 떠난 주민 수만큼 새로운 사람을 다시 데려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야마코시는 여기서 질문을 달리했다. 반드시 이 마을에 살아야만 야마코시의 주민일까.
야마코시에 주소를 두지 않더라도 이 마을을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니시키고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대지진을 이겨낸 주민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다.
야마코시를 여행한 뒤 다시 찾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야마코시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외부인’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지역을 좋아하고, 응원하고, 지역의 활동에 참여하려는 사람을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그 질문에서 2021년 ‘네오 야마코시 빌리지(Neo-Yamakoshi Village)’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야마코시는 새로운 상징을 만들지 않았다. 200년 가까이 자신들이 키워온 니시키고이를 다시 꺼냈다.
이번에는 연못이 아니라 디지털 공간이었다. 니시키고이를 디지털 자산인 NFT로 만들고 이를 가진 외부 사람에게 ‘디지털 주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사람이 빠져나간 산골마을이 주민을 다시 채우는 데만 매달리는 대신 마을 밖에 있는 사람까지 ‘주민’의 범위에 포함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마코시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NFT라는 최신 기술 자체가 아니다. 200년 된 니시키고이, 대지진을 겪고도 고향으로 돌아온 주민들, 그리고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공동체라는 오래된 지역의 이야기를 새로운 기술과 연결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설을 지어 사람을 불러모으는 대신 이미 자신들이 가진 자산으로 지역 밖 사람과 관계를 맺을 방법을 찾았다. 그렇다면 야마코시의 ‘디지털 주민’은 인터넷에서 가입하는 단순한 온라인 회원과 무엇이 다를까. 사람들은 왜 돈을 내면서까지 자신이 살지도 않는 작은 산골마을의 ‘주민’이 되기를 선택했을까. 그리고 실제 주민보다 많은 ‘마을 밖 주민’들은 야마코시에서 무엇을 할 수 있까.
그 답은 야마코시가 NFT를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주민증’으로 사용한 방식에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승우, 노경하 기자 yanews@hanmail.net
2026.09.1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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