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의 신비감

申祉浩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2년 10월 26일(금) 09:27
얼마 전 우리 애들 어렸을 적 앨범을 스캔하는 중이었다. 그때 사진 속의 배경에는 월출산 산성대가 아스라이 비치고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산성대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월출산의 자잘한 봉우리까지, 너무나 눈에 익은 그곳은 지금도 내가 영암에 살고 있는 듯 친근한 풍경이었다.
영암을 떠나 살면서 월출산은 영암에 당연히 있는 산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살아온 삶을 한번 되돌아보아지는 황혼 녁에, 사진 속에서 보는 월출산은 가지가지 아름다운 상념과 함께 지난 시절이 오금이 쑤시도록 그리워진다. 그 시절에 좋은 일 궂은 일이 함께 뭉뚱그려져, 지금은 오붓하고 행복하게만 떠오른다.
40여년 전, 교직의 한창 때에 영암초등학교에서 동심에 파묻혀 시간가는 줄 몰랐다. 운동장에서나 교실의 창 너머로 넌지시 바라보이는 산성대는 나의 하염없는 열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가정도 일구었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고, 교동리 널찍한 집 마당에서 고개만 들면 산성대는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축복하듯 내려다보았다.
아이들은 밝은 얼굴로 구김 없이 잘 자랐다. 스캔하는 사진 속에 마당가 내가 꾸며놓은 꽃밭에는 수국과 다알리아도 보이고, 한 그루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오지게 달려있다. 그 속에 우리 애들이 세발자전거를 에워싸고 함박웃음을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위로는 산성대와 맞닿은 산자락과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너무나 산뜻하다. 예전에는 예사롭게 대하던 임의로운 자연풍경이었을 뿐인데, 지금 다시 보는 산성대는 내 마음의 우상처럼 거룩해 뵌다.
산성대는 그전에도 내게는 신비의 대상이었다. 60년 대 초였던가. 광주고등법원에 계시는 사촌매형께서 어느 일요일 날 등산복 차림으로 내려와서 나를 부르셨다. 등산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엉겁결에 따라 나섰는데, 교동리 서운 뒤로 올라가는 산성대 코스였다. 그 전에는 언감생심 범접하지 못했던 바위골짜기를 한 발짝 씩 딛고 올라설 때 마치 신선들의 영역에 들어선 듯 황홀했다.
온몸에 땀이 배이고 골짜기가 슬며시 사라지면서, 억새풀이 우거진 반반한 초원이 나타났는데, 거기도 내게는 별천지였다. 매형이 풀 섶에서 기와조각을 하나 주워들고 이리저리 살피시는 것이, 옛 절터나 아니었을까 가늠해보는 것 같았다. 억새풀의 바람결에 머리칼을 날리며 기왓장에 새겨진 옛 흔적을, 가을 햇살 속에 비추어 보는 그 분의 탐구적 호기심도 내게는 너무나 고결한 멋으로 남아있다.
산성대는 내가 마냥 우러르고 살았는데, 그에 보답하듯 산성대는 나의 월출산 첫 등정을 축하하듯 마지해 주었다. 그날 산성대를 휘돌아 천황봉에 오르고 어찌어찌해서 남풍리 쪽으로 내려왔는데, 그 뒤로 더는 산성대 코스를 가보지 못했다. 다만 그날의 산길은 아득한 전설처럼 신비화되어서 한 평생 내 머리에 아련히 남아있을 뿐이다.
언젠가부터 내게는 ‘대한민국 큰바위얼굴’이라는 한 장의 포토그래프가 있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장군바위’로 불려온 구정봉이, 근엄한 사람의 모습으로 이 포토그래프의 핵심으로 나타나 있다. ‘큰바위얼굴’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어라 간절하게 일러주고 있는 듯한 거룩한 표정이다. 또, 구정봉의 하늘에는 두 줄기 무지개가 광채나는 눈을 형성하고, 조각구름들이 머리와 코 입을 나타내서, 또 하나의 신령스러운 사람의 모습으로 구정봉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는 하늘의 문이 열리는 시간에 일어났다는데 지상의 인물을 하늘이 지켜주는 상서로운 징조란다. 지금 구정봉을 ‘큰바위얼굴’로 스토리텔링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의견들이 월출산의 영감(靈感)을 전제하고 있어 신비감을 더 한다.
내가 최근에 옛 사진을 들추면서 산성대를 신비로운 정감(情感)으로 바라보게 되고, 때마침 구정봉이 ‘큰바위얼굴’이라는 표상(表象)으로 떠오르게 되자, 옛날 학창시절의 독일어교재에 있던 전설이 불현듯 생각났다.
독일에 심성이 곧은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사는 고장에는 ‘거룩한 사람’의 얼굴을 닮은 산봉우리가 있었단다. 그 사람은 산봉우리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거룩한 사람’이 언젠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더욱 성실하게 이웃과 어울리며 살았다.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다. 어느 날 해질 녁에 노인은 여늬 때처럼 그 바위를 우러르고 있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와, 이 분이 바로 ‘거룩한 사람’이다”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황혼에 불그스름하게 물든 노인의 얼굴은 그 바위의 뜻대로 바르고 높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온 ‘거룩한 사람’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영암사람들은 월출산을 바라보며 살았고, 살아가는 동안 어디서나 월출산을 마음에 간직한다. 추억과 낭만과 꿈이 월출산에서 비롯되어야 진정한 영암사람이라 할 만하다. 내가 산성대에 마음을 의지했던 것처럼 어느 누구도 월출산의 어느 봉우리 어느 자락에 얽힌 사연들이 있으리라.
우리는 월출산을 신비의 영산(靈山)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태어나고 자라면서 받은 월출산의 정기를 듬뿍 살려보자. 그러면 구정봉의 ‘큰바위얼굴’이 영암사람의 랜드마크로 떠오르지 않을까. 월출산이 우리에게 주었던 정감과 함께 무언(無言)의 가르침이 분명코 우리 가슴 속에 스며들 것 같다. 그러면 항상 바른 마음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나와 이웃을 위하는 길인가를 생각하며 사는 영암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역사 속에 영암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큰바위얼굴’을 마음에 새기는 더욱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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