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겨울의 산길에서

申祉浩 전 영암초등학교 교사 경기도 율동초등학교장 퇴임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3년 03월 15일(금) 11:19
어제 먼 남녘 끝에 있는 고향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찬 바람속의 강행군이었지만 별로 고단한 줄은 모르겠다. 그 동안의 마음 조렸던 일이 어느 정도 가닥 잡혔다는 성취감 때문인지 오히려 새로운 힘이 솟는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오늘은 친구들과 주말 산행을 한다. 아침 기온이 영하라지만 개의치 않는다. 겨울 속에서도 우리를 맞아 줄 맑은 하늘과 햇빛, 산의 청량한 공기, 골짜기에서 얼음장 밑으로 졸졸거리는 물소리, 그리고 활짝 핀 얼굴로 산길을 메우는 등산객들의 밝은 모습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관악산입구에서 친구들과 산 오르기 전의 숨고르기를 하려고 단골집에 먼저 들른다. 따끈한 커피를 시켰는데, 웬걸 보름날의 나물접시와 해물전이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오늘이 음력 정월 대보름인가. 옛날 명절날의 따뜻했던 우리네 인심이 떠올라 가슴이 훈훈해진다. 우리는 뜻밖의 진찬(珍饌) 앞에 어울리는 이야기들이 술술 나온다. 양로당에서 봉사활동 했던 일, 친구들과 모처럼 가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을 한 일, 설 명절에 친척들과 어울렸던 일 등. 아무리 꽁꽁 얼어붙은 속에서도 사람 사는 부드럽고 따뜻한 일들은 우리 곁에 다 있었구나 싶다.
나는 올 겨울도 제법 알뜰하게 보내고 있다. 겨울 창밖에 덜컹거리는 찬 바람소리를 들으며 밀처 두었던 책들을 읽었고, 흩으러지는 마음을 달래려고 원고지와 씨름도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추세에 톡톡 발맞추려고도 했다. 밖으로 나대고 싶은 욕구를 자제하고 내면으로 침잠(沈潛)해보는 절호의 순간들이었다. 가끔은 고개를 들어 눈 덮인 산 언저리에서 자연의 호흡을 잃지 안했고, 내가 고안한 나름대로의 ‘행복여행’을 통해 혼자만의 사유(思惟)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엄동설한에도 ‘살아있음’의 균형을 이어가는 것은 나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제(快제)였다.
휴게소에서 몸과 마음을 한껏 풀고 나서, 우리는 산뜻하게 가벼워진 마음으로 산길에 오른다. 그러나 역시 겨울 산행은 만만찮을 것 같다. 산의 초입부터 겨우내 쌓인 눈이 아직도 두툼하게 다져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건 겨울의 고집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따른 겨울의 의젓한 몸가짐이라고. 사람의 허황된 기대나 욕심을 견제하는 은근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자연은 사람에게 시련은 주어도 결코 실망은 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산에서나 인생행로에서 배우고 있다. 그래서 미끄러운 길을 당황하지 않고 겸손하게 조심하며 걷고 있다.
햇볕이 넉넉하게 비춰주는 언덕바지 산비탈은 눈이 녹고 있다. 녹은 눈에 흙길은 질퍽거린다. 봄이 가까운가 보다. 겨울과 봄이 서로 순리에 어긋남이 없이 ‘가고 옴’을 타협하고 있는 모양이다. 겨울은 버티지도 않고 봄은 밀치지도 않으며 가고 옴의 예의를 지키고 있다. 아름다운 순간이다.
봄이 되면 모든 생물들은 기지개를 켠다. 식물들은 물기가 차오르고 동물들은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봄은 희망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봄을 찬미하는 소리에 덩달아 흥겨워하고 산과 들에서 일어나는 봄의 몸짓들에 같이 들뜨곤 했다. 나도 그랬다. 봄이 되면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이루어질 것처럼 괜히 설쳐대곤 했다. 나도 누구보다 봄을 기다렸다.
그러나 살아오는 연륜이 거듭될수록, 그때그때의 시간이 갖는 의미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 어느 순간마다의 삶은 그 나름의 고유성이 있고, 그 순간의 가치가 있었다.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는 몇몇 짐승들이나 성장을 잠시 지체하는 겨울나무처럼, 사람에게도 겨울은 다음의 활발한 도약을 위한 내면의 재점검과 충전의 기회가 되어주었다. 우주의 시간들은 매듭이란 것이 없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이다. 겨울은 겨울대로 봄은 봄대로 멈춤이 없이 삶의 의미를 가치있게 창출하고 있다.
나는 교직에 있을 때부터 시간의 귀중함을 강조해왔다. 지금도 시간들이 넘쳐나는 것 같이 흥청망청 낭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톨스토이는 ‘인간에게 허락된 시간은 바로 이 순간 뿐’이라고 했다. 현재 살아있는 이 순간의 귀중함을 알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결심을 할 때, ‘새해부터’ 혹은 ‘다음 달부터’ 어찌어찌 하겠노라고 어떤 시점을 내세우기를 잘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어쩐지 믿음이 덜 간다. 그런 결연한 의지가 있다면 당장 이 순간부터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봄이 되면---’ 하고 막연한 기대를 하는 것도 덜 마땅하다. 나약한 의지나 불확실한 기대를 ‘새 봄’이라는 좋은 이미지에다 떠넘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지금 산자락에 눈이 녹고 얼음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소리가 제법 똘똘하게 들린다.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는 겨울을 아쉬움으로 보내고 오는 봄을 내 삶의 또 한 차례 새로움으로 맞이하자. 추운 겨울의 순간들을 정성스럽게 보냈던 마음이면, 봄의 햇살은 나를 다독이며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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