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를 가져보자

이원형 본지 객원논설위원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3년 04월 26일(금) 10:06
당대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항상 각박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솔직한 감정일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살면서 생활의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경제는 여전히 불황속에서 다만 극히 일부의 부자를 제외하고는 서민의 생활은 날로 힘들어지고 있다. 특히 바닥을 모르는 부동산 경기의 하락은 하우스 푸어란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또한 미래를 짊어진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 이태백이란 자조 섞인 단어가 인구에 회자 된지도 오래되었다. 글로벌 시대의 국제정세는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지도 않고, 지구상에 하나 남은 분단의 한반도에는 통일은커녕 전쟁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혁신을 외치던 정치권은 개혁은 고사하고 기득권을 지키는데 여념이 없어 보인다.
소통과 통합을 주창하며 새롭게 출발한 박근혜 정부는 국민 대다수의 소박한 바람을 무시하고 소통 대신에 마이웨이를, 통합 대신에 호남 소외를 더욱 고착화 시키고 있다. 달리 생각하면 우리가 지지하지 않았으니 기대도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우리 호남인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일진데 서운한 마음을 어찌 하랴? 이러한 오늘날의 암담한 상황에 우리 호남인들의 상실감과 박탈감은 필자만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 새옹지마 일진데 오늘의 상황이 우리를 고달프게 하더라도 유머감각을 잃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보자.
중국의 은 나라를 멸망시키고 주 나라의 건국에 크게 기여한 강태공(姜太公)은 오래 동안 가난하게 살았다. 그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아내 마(馬)씨는 강태공을 떠나고 말았다. 후에 강태공이 성공하자 부인이 옛날로 되돌아가자고 울면서 애원했다. 이에 강태공은 한 대야의 물을 땅에 쏟으며 ‘이 물을 주워 담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여기서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란 고사가 나왔다.
전국시대 합종이란 외교정책으로 6국의 공동재상이 된 소진은 출세하기 전 무위도식하여 형수에게 심한 구박을 받았다. 소진이 출세하여 금의환향하니 형수는 소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소진이 예전에는 그리 오만하더니 지금을 왜 비굴하게 굽실거리느냐고 묻자 형수는 지금은 ‘도련님의 지위가 높고 재물도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뭐 세상인심이 다 그런 것 아니냐는 형수의 씁쓸한 유머감각에 소진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춘추시대의 명재상으로 공자도 높이 평가하고 귤화위지(橘化爲枳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의 고사로도 유명한 안자(晏子)가 경공을 48년간 보필하여 약소국인 제나라를 강국으로 변모시켰다. 어느 추운 겨울날 황금과 옥 그리고 은으로 온갖 장식을 한 무거운 신발을 신고 경공이 조회에 들어와 “날씨가 춥지요” 하고 물었다. 이에 안자가 “아니 무슨 까닭으로 날씨가 추우냐고 물으십니까? 옛 성인들은 겨울에는 가볍고 따뜻하게, 여름에는 가볍고 시원하게 복제를 제정했습니다. 지금 주군께서는 한겨울에 금과 옥으로 만든 신을 신고 계시니 추울 밖에요” 한 겨울에 무겁고 차가운 신발을 신고와 춥지 않느냐는 물음에 안자는 그런 신발을 신었으니 당연히 춥지 않겠느냐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먼저 왜 날씨를 묻는지를 반문하여 경공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고 잘못을 적절하게 지적한 여유를 보였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황실의 동물원과 식물원을 크게 넓히려 하였다. 이에 궁정 광대인 난쟁이 우전(優?)이 “잘 하셨습니다. 이제 그 안에 온갖 짐승들을 풀어놓은 뒤 도적이 쳐 들어오면 사슴의 뿔로 막게 하면 될 것입니다”라고 빈정거렸다. 이에 진시황은 그 일을 중지하였다.
진시황의 둘째 아들인 호해는 어리석고 못난 황제의 대명사로 꼽히며 환관 조고의 농간에 놀아나 진나라를 망국으로 이끈 군주이다. 이런 호해가 즉위하여 성벽에 옻칠을 하게 하였다. 이에 우전은 “잘 하셨습니다. 백성의 부담이 걱정되기는 하나 옻칠한 성벽으로는 도적도 기어오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옻을 말리는 건조실은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그건 어떻게 하시렵니까?”라는 우전의 유머러스한 충고에 호해는 웃었고 그 일은 중지되었다.
한을 건국한 유방은 뒷골목 출신으로 무식한 황제였다. 그런 유방에게 육고(陸賈)는 늘 시경이나 상서 같은 경전의 구절을 인용하곤 했다. 무식한 유방은 이런 경전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날 육고가 또 경전을 운운하며 유방에게 말하자 “나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 그까짓 경전 따위가 뭐란 말이냐”며 버럭 소리 지르며 나무랐다. 그러자 육고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을지라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마상득지, 마상치지(馬上得之 馬上治之)란 고사성어가 나왔다.
한 나라 선제 때 장창(張敞)이란 벼슬아치가 집에 있을 때는 아내의 눈썹을 즐겨 그려주었는데, 이 말이 선제의 귀에 들어갔고 선제가 그 말이 사실이냐고 묻자 정창이 “여자들 방 안에서 일어난 일이나, 부부 사이의 사사로운 일이 어디 눈썹 그려주는 것 만이겠습니까”라고 말하자 선제는 허허 웃으며 더 말하지 않았다. 격의 없고 억지 위엄을 부리려 하지 않는 장창과 선제의 너그러운 유머감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순우곤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머러스한 사람인데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고 위 왕이 묻자 “왕을 옆에 모시고 마시면 분위기가 굳어져 몇 잔 마시지 못하지만, 저고리 옷섶이 풀리고 향기로운 냄새가 솔솔 나면 마음이 즐거워 한 섬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했다. 분위기에 따라 주량이 달라짐을 유머를 곁들여 격조 있게 대답한 것이다.
이 같은 수준의 유머나 비유가 통하는 사회나 정치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리라 유머를 통한 소통은 뒤끝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이 각박하지만 그래도 웃어보자며 두서없는 글을 적어 보았다. 잠시나마 독자 여러분의 여유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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