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3년 07월 05일(금) 11:33
본지 객원논설위원
亂世의 奸雄 조조(曹操)
조조는 삼국지에서는 난세의 영웅으로, 소설 연의에서는 전형적인 악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간웅이란 악인의 요소를 지닌 영웅이란 의미이다. 중국 역사상 조조만큼 이중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조조를 새롭게 평가하며 조조의 리더십을 배우자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부정적 이미지가 워낙 오래되고 강력하여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속담이 중국에서는 ‘조조 설(曹操設). 조조 도(曹操到)’로 쓰이는 것만 보아도, 조조에 대한 중국인의 불신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알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조조는 임자 없는 농지를 둔전으로 하고 유민들에게 나누어 준 둔전책(屯田策)을 실시하여 경제와 사회 안정을 이룩하여 위의 삼국통일의 기반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정사(正史)인 삼국지에서는 오히려 조조가 정통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의 손권(孫權)
삼국시대 오의 개국 황제이다. 208년 손권과 유비가 동맹을 맺고 적벽대전에서 승리하여 천하삼분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유비가 형주반환을 미루자 관우가 형주를 비운 틈을 노려 형주를 탈환하고 관우를 생포하여 죽였다. 이에 오와 촉의 동맹이 깨지고 이릉대전이 일어났으나 육손의 활약으로 승리하였다. 손권은 229년 황제를 칭하고 오나라를 건국하였다.
촉의 유비(劉備)
촉한의 소열제 자는 현덕이다. 탁군 사람으로 한의 중산정왕 유승의 후예라란 명분으로 후세에 촉한이 정통으로 삼은 사가(史家)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후한 말 황건적의 난으로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관우. 장비와 그 유명한 도원결의로 봉기하였으나 큰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후에 제갈량을 삼고초려로 얻고, 손권과 연합하여 적벽대전에서 승리하여 익주를 차지하고 천하삼분의 기반을 닦았다. 221년 한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국호를 한(蜀漢)이라 하고 제위에 올랐다.
사마의(司馬懿)
위나라의 중신으로 자는 중달이다. 사마사의 아버지이자, 진의 건국한 사마염의 조부이다. 형주의 관우가 양양을 공격하자 손권과 동맹하여 관우를 공략하자는 책략을 건의하여 조비의 신임을 받았다. 그 후 유주. 양주의 군사를 통할했으나 제갈량의 계략으로 모반을 의심받아 해직당하기도 하였다. 제갈량의 북벌 시 오장원 등에서 제갈량의 촉군 공격을 다 막아내고 실질적인 위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진정한 라이벌이었고, 그의 후손이 삼국을 통일하여 진을 건국하여 삼국시대의 실질적 승리자였다.
주유(周瑜)
오의 장수로 자는 공근이다. 손권의 형인 손책의 친구로 여러 전공을 세우고, 손권이 정권을 잡자 대를 이어 충성을 다했다. 조조가 강남을 침공하자 노숙과 항전을 주장하여 제갈량과 손잡고 그 유명한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오나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우리는 적벽대전이 제갈량의 신기한 책략이라 알고 있으나 적벽대전의 실질적 주역은 주유였다. 적벽대전은 전진과 동진의 비수대전과 함께 중국 역사상, 이길 수 없는 전쟁이자, 질수 없는 전쟁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전쟁이다. 그럼에도 주유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매우 인색한 편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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