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북면 간은정마을의 두 중학생 김점자·덕자씨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2013년 08월 02일(금) 11:43
신북면 월평리 1구 간은정마을 주민들은 중학교에 다니는 부녀회장과 마을이장의 여름방학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간은정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70세가 넘었다. 90세를 넘긴 이들도 많다. 30여명이 모두 홀로 사는 노인들이다.
이들이 부녀회장 김점자(68)씨와 이장 김덕자(65)씨를 기다리는 이유는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 두 사람이야말로 간은정마을의 일꾼들이자 주민들의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점자씨와 덕자씨는 자매다. 어르신들이 배움의 한풀이를 하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교장 김광복) 중3과정에 재학 중이다.
이 둘은 학기 중이기 때문에 월요일이면 마을회관에 어르신들을 위한 점심식사를 차려드린 뒤 등교해 야간반 수업을 받는다. 수업 후에는 학교 가까이 얻어 놓은 목포 자취집에서 한 주일을 보내고 토요일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간은정마을 주민들이 점자씨와 덕자씨의 여름방학을 기다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서 여름방학이 되어야 따뜻한 점심을 먹을 수 있고 목욕봉사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장인 동생 덕자씨는 면사무소 전달사항이나 공문이 있으면 언제라도 마을에 다녀오곤 한다. 직접 가기도 하고 목포에서 마을 어르신들을 만난다. “월평1구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되는 덕자씨의 마을 방송은 마을에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목포에 있는 학교에서도 핸드폰으로 번호만 누르면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가서도, 천안에 가서도 마을 스피커를 통해 주민들과 만날 수 있다. 낯익은 덕자씨의 목소리가 마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누구보다 마을 어르신들이 반긴다.
“오메, 저것들 핵교 갔다더니 방송하는 것 보니 왔는갑네!”
언니 점자씨는 마을 부녀회장을 벌써 11년째 맡고 있다. 워낙 싹싹하고 음식 솜씨가 좋아 다른 사람들은 명함도 못 내밀 형편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연신 “우리 부녀회장이 하니까 맛납네, 잘 먹었네.”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혹시 다른 이가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면 싱겁다느니 짜다느니 하면서 꼭 트집을 잡는 모양새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점자씨와 덕자씨는 목욕봉사를 하는 날에는 꼭 새 속옷을 선물한다. 며칠 전에는 중복을 맞아 1박2일간 효도관광을 시켜드렸다. 관광차를 빌려 완도 명사십리에서 모래찜질을 하고 돌아와서는 닭죽을 맛나게 끓여 드렸다. 새벽부터 장을 봐서 배추김치, 열무김치, 계란, 새우젓, 장조림 등을 맛나게 준비하자니 땀이 비 오듯 하지만 점자씨와 덕자씨는 즐겁기만 하다.
두 사람은 학교에서는 아직 중학생과정을 밟고 있지만 마을에서는 한글 선생님이다. 3년 전 동생 덕자씨가 간은정마을의 이장이 되면서 군에 신청해 학력인정문해교육지정기관이 됐다. 일주일에 세 번 수업한다. 한글을 잘 모르는 어르신들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한 번 출석할 때마다 과자 값 1천원을 정부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한 달 공부하면 1만3천원의 용돈이 생기는 것에 재미를 붙인 어르신들의 한글실력이 그 때마다 쑥쑥 는다.
“욕쟁이 이소녀(83) 할머니는 욕을 빼면 말을 못할 정도였어요. 자기 이름도 못썼는데 공부방에서 3년 공부하고 있는 지금 ‘이소녀’라는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잘도 쓰셔요. 참 뿌듯한 일이죠.” 덕자씨의 설명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안식처인 마을회관은 언제나 내 집처럼 정리해둔다. 엊그제는 마을회관 냉장고가 10년이 넘은데다 너무 작고 냉장이 잘 안 돼 550ℓ짜리로 바꿔 들여놓았다. 25만원짜리 장롱을 구입해 이불과 베개를 정리해 넣었다. 이를 본 어르신들은 “호텔 같다”며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점자씨와 덕자씨가 마을일에 항상 열심인 이유는 바로 어르신들의 이런 즐거움에 있다.
뒤늦게 어른들이 공부하는 학교인 목포제일정보중학교에 다니며 목포에서 자취생활까지 하고 있는 두 사람의 노트는 여느 어린 중학생들의 그것처럼 알록달록 예술품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컴퓨터 문서장성법도 배웠다. 배우는 기쁨은 아직도 흘러넘친다.
드디어 7월31일 여름방학을 했다. 마을로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얼굴이 벌써 어른거린다. 짐을 정리하는 두 사람의 손길이 그래서 더욱 빨라진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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