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초(史草)와 세초(洗草)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3년 08월 16일(금) 10:34
사초(史草)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사관들이 그날그날의 시정(時政) 등을 기록한 것으로, 실록편찬의 자료를 말한다. 모아진 사초는 매달 책으로 묶어졌는데 이를 시정기(時政記)라 한다. 임금에게는 책이 몇 권인지만 보고하고 춘추관에 보관한다. 실록 편찬 때 이용하기 위해서다.
삼국시대에도 국가 역사가 편찬되었으니 사초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사초가 제도화된 것은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다. 조선시대 사초를 담당하던 춘추관(春秋館)의 관원은 모두 겸직으로, 예문관의 봉교(奉敎) 이하 8명의 사관이 교대로 궁중에 숙직하면서 조정의 모든 행사와 회의에 참여했다. 정사의 잘잘못, 국왕의 언동, 인물의 선악 등을 일정한 형식을 따라 기록했다. 2부를 작성해 1부는 춘추관에 제출하고, 1부는 개별 보관했다고 한다.
새 임금이 즉위하면 선대 왕조의 실록이 편찬된다. 이 때 사초를 활용했고, 실록 편찬 작업이 끝나면 실록 초고와 함께 물에 풀었다. 기록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종이는 재생해 다시 썼다. 이를 세초(洗草)라 한다. 그만큼 사초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져 임금이라도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실례로 현종은 언관과 벌인 극단적인 대립상황을 기록하지 말 것을 명령했으나 예문관 검열은 즉석에서 왕명의 부당함을 밝히고 그 명령을 둘러싼 논란까지 모두 기록했다. 폭군 연산군 역시 사초를 빌미로 무오사화를 일으켰으나 문제되는 부분만을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때 아닌 사초 실종 사태가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느 누구도 공개하거나 열람해서는 안 될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아무렇지 않게 법을 어겨가며 공개하더니 이번엔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다던 대화록이 없어졌다며 난리들이다. 그러는 사이 국기를 뒤흔든 중대한 범죄행위는 국민들의 뇌리 뿐 아니라 주요 언론에서도 잊혀져간다. 바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이다. 그래서 올여름은 지독하게 덥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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