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새겨진 고향 이미지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3년 08월 30일(금) 12:07
申祉浩
전 영암초등학교 교사
경기도 율동초등학교장 퇴임
현 한국문인협회 회원
나이가 들어갈 수록 마음 한 구석에는 고향이라는 이미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른다. 살아가다가 간혹 외로울 때나 고단할 때도 순진하던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가 있다. 부모형제가 함께 살고 정다운 이웃들이 있던 고향의 모습이다.
고향은 사전적 의미로는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누구에게나 태어난 곳은 있다. 성장한 곳도 있다. 그런데 그 곳들이 얼마나 내 마음 속에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지가 문제다. 요즘같이 병원에서 태어나고 바람처럼 주거지를 옮겨 다니면 그런 살뜰한 고향 이미지가 새겨져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해본다.
고향은 영원한 모성과 같은 곳이어야 한다. 사는 동안 가슴 속에 남아서 항상 그립고 찾아가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 오순도순 가족들이 생각나고, 아기자기한 추억들이 주렁주렁 떠올라야 한다. 예전의 배고프고 서러운 기억들이라도 그저 그립기만 하고, 지금의 온갖 근심과 고난들을 감싸줄 든든한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예전 사람들은 고향을 평생의 보금자리로 삼고 살았다.
나이가 좀 지긋한 사람들이 초면 인사를 나눌 때면 곧잘 고향이 어디냐고 화두를 연다. 고향을 근거로 해서 덕담들이 이어진다. 서로 가까운 고향이거나 아예 동향이라면 오랜 인연인 것처럼 정겨움을 더 한다. 거 어디로 난 길, 어떤 쪽에 무슨 볼거리, 그 쪽의 산물과 별미 등. 그러다가 토박이 성 씨, 아무개 인물 등 모두 한 마음이 된다. 나는 이런 모습들이 정말 우리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 5-60대 이상인 사람들에게나 어울릴 듯한 이야기가 아닐까.
지금 고향을 한 번이라도 찾는 사람들은 고향에서 학교를 다녔거나 노부모가 계신 사람들, 물려받은 재산이나 조상의 묘가 고향에 있는 사람들이다.
고향이라는 개념은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 더욱 간절한 의미가 있다. 우리의 그리 넓지않은 국토에서도 명절이면 온 나라가 귀성객으로 어수선하다. 나는 명절이면 집에 앉아서도 고향을 향하는 어수선함 속에서 활기를 느끼고 아름다운 정서에 안도한다. 그리고 고향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주위에서 고향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선 마음이 정화된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부럽다. 내겐 고향 이야기꺼리가 없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 직장 임지 따라 옮겨 다녔기 때문에 뇌리에 박힌 고향이미지가 없다. 고향은 있지만 호적상의 고향일 뿐이고, 초등학교 마칠 때까지 여섯 곳을 옮겨 살았다. 그러나 마음 속에 새겨진 고향이미지는 갖고 싶었다.
소나무 그림자가 드리우던 마루, 그 배경으로 산과 들, 돌담과 텃밭이 보이는 고샅길, 그늘 아래 작은 평상을 품고 있던 고목나무 한 그루, 물장구 치며 멱감고 물고기 잡던 널찍한 개울까지 올망졸망 그려본다. 환상이 아니다. 어렸을 적 살았던 곳을 몇 가지 짚어본 것이다.
언제든지 찾아갈 고향이 있는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이야 말할 것 없고, 외국으로 이민해서 사는 사람들, 사업상 외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람들,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 모두 고향생각에 잠 못 이룰 사람들이다.
어제 어느 조간에 ‘고향마을 추억을 되살린 사진 2만장’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13년 전 용담댐 건설로 수몰된 전북 진안군 68개 마을의 이야기다. 그 터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 12000명이 물에 잠긴 고향을 떠나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이번에 ‘용담호문화관’ 개관으로 오랜만에 한 곳에 모인단다. 옛날의 고향모습을 이 문화관에서 전시하기 때문이다. 사진엔 용담호가 생기기 전의 마을과 산천, 주민들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단다. 빨래터 아낙들, 줄넘기하는 아이들, 밭가는 농부, 나물 캐는 할머니 등, 그 때 고향의 모습들이다.
그 당시 사라지는 이 마을의 안타까움을 놓지지 않으려고 사진작가는 댐 착공 직전부터 준공까지 6년여 동안 사라지기 전의 마을 모습을 오롯이 담았다. 굴착기로 헐리는 집을 바라보다가 넋을 놓은 할아버지, 눈물 속에 치러진 초 중학교의 마지막 졸업식 등 애처러운 사연들이 주류를 이룬단다. 이들은 다시는 찾아갈 수 없는 고향의 이미지를 사진에서나마 되새겨보고 있다.
여우는 죽을 때가 되면 머리를 고향 쪽으로 두른다고 한다. 연어도 바다에서 자라지만 다 자라면 원래 알로 태어났던 개천으로 수천만리를 헤엄처 찾아온다고 한다. 사람들이 평생 고향을 생각하며 사는 것을, 그래서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한다.
사는 동안 많은 모임이 있지만, 나는 향우회 모임이 제일 좋아보인다. 여기에 가면 세파 속의 날카롭고 거친 것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이기성과 경쟁심이 없는, 그저 정겨움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향우회는 추억을 더듬고 향수를 달래는 모임이다. 좋은 추억이나 아린 기억도 있겠지만 어떤 것도 모두 아름답게 다듬어진다. 추억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향우회는 늘 발전할 것이다. 스스럼없는 만남에서 아픔과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은, 서로의 마음에 고향의 이미지가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처서가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닿는다. 삭막한 도시의 어느 빈 터의 코스모스의 가녀린 모습이 고향의 정분으로 가슴을 적신다. 고향을 마음으로만 그리고 사는 내가 이렇게 고향의 정서에 젖어있는 것은 아무래도 나이 탓인가 싶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이 기사는 영암군민신문 홈페이지(yanews.net)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yanews.net/article.php?aid=1192648862
프린트 시간 : 2024년 10월 19일 23:3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