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틀림 그리고 톨레랑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3년 11월 29일(금) 13:48
이원형
전라남도 명예감사관
민주사회는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의견과 견해가 존재함을 인정하며, 이로 인해 사회가 분열과 대립으로 사회통합을 저해할 때에도, 서로 다른 이견(異見)을 인정하며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며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민주사회라 한다.
그리하여 민주사회는 사회 통합을 위한 합의를 필요로 하기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매우 비효율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민주사회란 체제를 선택한 이유는 민주사회가 그래도 최대 다수의 행복을 실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턴가 나와 다른 의견과 견해를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어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NLL 포기 주장에 관한 여.야의 공방을 보노라면 본질은 실종되고 지엽적인 문제로 격한 대립을 벌리는 촌극을 연출하고 있어 양식 있는 국민들로 외면을 받고 있다. 이에 관하여 한마디 촌평을 하자면 예로부터 사초에 있어서는 정본이 완성되면 초본을 세초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국정원의 댓글이란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중차대하고도 엄청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종북 몰이로 본질을 호도하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런 민생을 외면한 정치권의 공방을 보노라면 아직도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는 생각에 우울해지는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민주사회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와 다름을 틀림이란 선악으로 규정하고 적대시 한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민주주의와 멀어지게 된다.
조선시대 주자학이 예학과 보학이란 형식만을 맹신하는 기성세대에 과감히 맞서 주자학과 다름을 주장했던 윤휴가 주류세력으로부터 사문난적으로 몰려 ‘천하의 도리를 어찌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른단 말인가? 주자가 살아오면 내 학설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만약 공자가 살아온다면 내 학설을 지지할 것이다’ 고 다름을 주장하였지만 결국에는 죽임을 당하는 화를 입었다. 다름에 대한 관용을 보이지 못한 조선 사회가 점차 활기를 잃고 결국에는 멸망에 이른 역사적 사실을 오늘의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중세 프랑스에서는 신. 구교간의 격심한 대립으로 사회가 혼란해지고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앙리 4세가 1598년 낭트 칙령을 발표하여 신.구교 간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였다. 이때부터 프랑스에서는 타인의 의견이나 주장. 취향이나 선택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톨레랑스라 한다. 톨레랑스는 인간이 항상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이성적 인식에 기초하여, 자신의 종교. 사상. 신념등과 다른 종교. 사상. 신념 등을 용인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사람은 나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관용이 핵심이다. 이러한 톨레랑스의 관용의 정신은 사상의 자유로 발전하여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으로 정립되어 오늘의 민주사회를 통합하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영암에서도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하여 입지자들이 뜨거운 경쟁을 벌여 벌써부터 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어 선거 후유증이 걱정된다.
아무쪼록 상대를 인정하는 톨레랑스의 관용의 정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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