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
2014년 01월 17일(금) 13:15 |
민주당 김기식 국회의원 보좌관
“안녕들 하십니까?”
지난 연말 한 대학생이 대자보를 통해 국민들에게 물었던 말이다. 이에 화답하는 대자보는 전국 대학가로 번졌고, 교수와 정치인, 청소노동자와 고등학생까지 대자보에 동참하고 화답하고 있다. 안녕하지 못한 이유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민영화, 비정규직, 취업경쟁과 등록금, 안녕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어 미안함 등으로 다양하다.
“안녕들 하십니까?”에는 80~90년대 대자보의 선동도 없었고, 분노와 투쟁 같은 단어도 없었다. 누가 쓰라고 한 것도 아니고, 특정단체가 일부러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철도민영화 반대 이유로 수 천명이 일자리를 잃는 지금이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이라며, 여러분은 별 탈 없이 살고 계신지 다만 묻고 싶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우리들”이라는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상대방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안녕들 하십니까?” 우리 모두 즉, “여러분, 우리 정말 안녕한가요? 라고 물은 것이다. 평소 국민들이 마음속으로 느껴왔던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게 했기 때문이다. 정말 안녕하신가요? 라고 사람들의 내면과 감성을 건드린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서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자연스럽게 말하고, 서로 공감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등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에 담담함을 느끼면서도 소통할 공간이 없었던 것이 인터넷과 SNS 등 사회적 여건에 힘입어 확산된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할 수 있다고 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담벼락에 욕하는 대신 대자보를 붙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녕들 하십니까?”에는 우리, 마을, 일터, 고향, 국가에 대한 추억과 미래에 대한 진정성이 담겨있다. 최근 ‘응답하라 1994’ 드라마가 인기였던 것은 그 속에서 과거 추억을 회상하며 따뜻함과 행복감을 찾았던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의 대자보와 손글씨는 방황하고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화려했던 청춘시절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걱정스러운 것이다. 반칙과 특권 없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아니라, 불통과 편가르기로 법과 원칙이 공권력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도구로만 사용되었던 과거가 회상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나라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있는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가 그냥 현상으로, 한때 유행으로 지나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집회 등을 통한 정치적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국민으로서 존중받는다면, 군민이 군수고, 주민이 이장인 것이다. 대통령이 군림하는 것은 아닌지, 모두가 존중받고 있는지 아주 작은 것부터 곰곰이 생각해보고 살펴보자는 것이다.
글을 읽는 지금 당장 생각나는 한 가지씩 자신과 주위에 묻고 실천해 볼 수도 있다. 우리 부모님은, 옆집 할머니는 안녕하신가? 우리 마을 영감님은 서울 아들네 갔다 돌아오셨나? 하는 작은 일부터 철도 파업에 동참했던 내 친구는 잘 있는지, 우리 고장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 등 관심을 가져보자. 전화를 걸어볼 수도 있다. 바로 공동체, 화합과 소통, 그것이 “안녕들 하십니까?”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다.
60~7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로 농촌을 지켰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다. 농사일로 하루하루 힘들고 가난했지만 그때는 행복했다. 돈 보다는 정이 있었고 사람이 먼저였다. 어려움이 닥쳐도 함께 이겨내고 서로 도움도 주었다. 그렇다면 자식들을 다 키운 지금은 행복한가? 국민으로서 존중 받고 계신지 곰곰이 생각해 볼 차례다.
곧 설 명절이다. 예전엔 동네마다 노래자랑이 있어 귀향한 마을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연스럽게 안녕을 묻기도 했다. 동네어른 모두 찾아 세배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이번 설에는 그 때의 따뜻함을 다시 느끼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고향의 발전과 군민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 드리며, 갑오년은 ‘안녕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안녕할 수 있는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묻고 싶다. “군민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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