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산조 기념관 개관 의미와 전망 <상>

가야금산조 테마 최초 음악기념관 탄생 ‘本鄕’ 이미지 구축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4년 03월 14일(금) 12:38
양승희 명인 결정적 기여, 군 10년 동안 155억 투입 명소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등재 땐 세계적 음악시설 기대
대한민국 최초의 음악기념관인 가야금산조 기념관이 드디어 문을 연다. 영암읍 회문리에 자리한 가야금산조테마공원의 핵심시설인 기념관에는 전수관과 함께 가야금산조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악자료들이 보관된 전시관도 갖춰져 있다. 앞으로 가야금산조의 전승과 연구의 센터역할을 하게 된다. 가야금산조테마공원 조성사업의 마무리와 함께 개관한 가야금산조 기념관의 의미와 과제를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註>
가야금산조테마공원 조성사업 마무리와 가야금산조 기념관 개관은 영암군이 명실 공히 가야금산조의 본향임을 만방에 과시하는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전통국악의 한 장르인 가야금산조를 테마로 한 공원과 기념관은 사상 최초의 일이기도 하다.
특히 문화재청은 지난 2011년 가야금산조와 거문고산조, 대금산조를 유네스코(UNESCO)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번 가야금산조테마공원 조성사업의 마무리와 가야금산조 기념과 개관은 우리 민족의 빛나는 유산인 산조의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앞당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인 가야금산조 기능보유자인 양승희 명인은 이번 가야금산조 기념관 개관을 기념해 열리는 자신과 제자들의 특별공연 의미를 “산조의 유네스코 등재를 기원하는 헌정성격을 갖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 가야금산조테마공원 어떻게 시작됐나?
가야금산조테마공원과 가야금산조 기념관은 대한민국 최초로 국악기와 산조만을 테마로 조성된 공원이자 음악기념관이다.
가야금산조테마공원 조성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양승희 명인의 공이 컸다.
양승희 명인은 북한에서 50년간 저술된 조선예술, 조선음악, 문화유산 등 350여권의 문헌과 북한의 전통예술분야 968편의 논문 등 김창조 선생에 관한 모든 자료를 바탕으로 ‘김창조 가야금산조’를 복원해 초연했다. 또 악보와 CD를 출반해 김창조 선생이 가야금산조음악의 창시자임을 세상에 알렸다.
2000년에는 영암에 가야금현창사업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영암군과 함께 서울과 영암에서 산조축제 및 학술대회를 계속 개최하기도 했다.
2004년 문화관광부가 가야금산조의 창시자 김창조 선생을 ‘8월의 문화인물’로 추대한 것은 그 첫 번째 성과였다.
영암군도 적극 나섰다. 가야금산조테마공원 조성사업에 대한 타당성조사와 기본계획을 마련해 지방재정투융자심사를 통과, 국비(광특회계)를 확보함으로써 2007년 1단계 사업에 들어갔다.
가야금산조테마공원은 앞으로 가야금산조 체험장 역할은 물론 학술세미나와 교육, 연구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등 가야금산조음악을 널리 알리는 다양한 공간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문화재청이 지난 2011년 가야금산조를 포함한 우리 전통의 산조음악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 조만간 최종 결정될 예정이어서 가야금산조테마공원은 세계인이 찾는 명소로도 돋음 할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가야금산조 기념관이 세워진 영암은 세계적 명소가 될 것이며 2011년 문화재청에서는 가야금산조, 거문고산조, 대금산조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결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 가야금산조의 창시자 김창조 선생은?
영암 태생인 김창조 선생은 1890년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의 틀을 갖춘 가야금 산조를 연주함으로써 산조의 음악형식을 완성했다. 이로써 그는 모든 산조음악의 효시가 됐다. 김창조 선생의 산조 창작은 한국음악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이었음은 물론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는 계기이기도 했다.
김창조 선생의 가야금산조의 음악적 기초는 판소리 음조에 확고하게 의지하고 판소리 장단 특성과 결합해 음조적 성격을 나타냈다. 초기 산조장단 구성은 다스름 가락, 진양조 5장, 중모리 5장, 중중모리 3장, 자진모리 5장으로 짜 넣었고, 3기법 즉 만기, 중기, 삭기를 도입했다. 후기의 산조계승자들은 엇중중모리, 휘중중모리, 엇모리, 굿거리, 휘모리, 단모리 및 늦은 중모리 등 다양한 형태의 중모리 등 여러 장단을 첨가했다.
조의 구성으로 진양조에는 우조, 돌장, 평조, 편조계면조, 계면조, 변청조로 구성되며, 중모리는 경드름, 우조, 평조, 계년조, 강산제, 중중모리에는 강산제계면조, 평조계면조, 우조계면조, 자진모리에는 계멵, 우조강산제, 계면조강산제, 평조, 변청조로 구성되어 있다. 또 전체 가락수는 459가락과 무장단 5마루로 짜여있으며, 연주시간은 약 40분이다.
양승희 명인은 김창조 가야금산조의 특징에 대해 “세계 최초로 미분음 마이크로톤을 사용해 산조의 가락 속에서 민족의 혼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설명한다. 즉, 전조 되는 방식이 매우 특이하고 격조 있는 짜임새는 완벽하며, 음색깔 변화의 극치와 함께 긴장과 이완의 미, 엇박의 미가 출중한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산조가락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는 앞에 나온 가락들을 덜어내고 가장 순수한 기본음들만을 장단 틀에 얹어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긴장과 이완의 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설명한다. 또 산조 속에 수많은 엇박의 장단의 묘를 통해 규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정신을 추구하는 것도 김창조 산조의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김창조 선생은 수제자 안기옥에게 10년 동안 가야금을 가르쳤다. 안기옥은 함께 월북한 정남희와 1955년 평양음악대학 민족음악학부에서 5년간 유학한 연변교포 김진에게 이를 전수했다. 김진은 1999년 양승희 선생에게 김창조 가락원형과 악보를 전해준 인물이다.
김창조 선생은 한편으로 한성기, 강태홍, 최옥삼 등에게 산조를 가르쳤다. 특히 한성기 선생의 가락은 김창조의 손녀이자 제자인 김죽파(1911-1989) 선생에게 이어졌다.
■ 김죽파 가야금산조와 양승희 명인
김창조 가야금산조를 직접 계승한 김죽파 선생은 본관은 김해(金海), 본명은 김난초(金蘭草), 예명은 운선(雲仙)으로 역시 영암 출생이다. 처음으로 가야금산조의 틀을 짠 김창조 선생의 손녀이다.
김죽파 선생은 8세부터 할아버지 김창조 선생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할아버지가 별세하자 11세부터 13세까지 한성기 선생으로부터 산조와 풍류, 가야금병창을 배웠다. 협률사(協律社)에 참가해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926년 16세에 상경해 여류 가야금연주자로 최고의 명성을 떨쳤던 김죽파 선생은 이때 조선권번에 적을 두고 있었고, 가야금 외에도 김봉이, 임방울, 김정문 등으로부터 판소리를, 한성준으로부터 승무를, 오태석, 심상건, 박동준 등으로부터는 병창을 배웠다.
김죽파 선생은 1931년 한성준의 반주로 산조와 병창을 SP판으로 오케이레코드사에서 취입, 출반했다. 1932년 22세에 혼인, 모든 연주활동을 중단했으나 6·25전쟁이 끝난 뒤인 1955년부터 일반인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쳤다.
김죽파 선생은 당시 널리 연주되던 산조에 단모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할아버지와 한성기로부터 배운 산조에 176장단과 무장단의 세산조시를 작곡,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세산조시의 틀을 완성했다. 1956년 김창조계와 다른 산조인 심상건류를 배웠고, 1963년 아쟁산조를 한일섭에게 배웠다.
1978년 67세에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김죽파 선생은 가야금을 배운지 60년 만에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처음으로 공개연주를 가졌다. 그는 1979년 김창조 가락에 진양조 7장단 중모리 4장단 자진모리 4장단 휘모리 51장단과 무장단의 일부분, 세산조시 7장단 등 많은 가락을 추가해 약 55분에 이르는 김죽파 산조를 완성했다.
제자로는 양승희 명인과 황병기, 이재숙, 김정자 교수, 인간문화재 이영희, 문재숙, 박현숙, 서원숙, 민미란, 이재경, 이미경, 윤소희, 성심원 교수 등 13명의 이수자와 많은 연주자들이 있다.
양승희 명인이 유일무이하게 잇고 있는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는 김창조의 산조에 뿌리를 두고, 그 제자 한성기 가락에 죽파 자신의 독자적인 가락을 넣어 높은 수준의 예술세계로 승화시킨 정통산조다. 죽파산조에는 김창조 산조 459가락 중 112가락이 원형그대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 양승희 명인의 설명이다.
죽파 산조의 짜임새는 다스름,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세산조시의 장단배열을 갖추고, 우조, 평조, 계면조, 강산제, 돌장, 경드름, 우조계면조, 우조강산제, 진계면조, 평조계면, 강산제계면조, 변청계면조, 본청계면조의 선법적 짜임새를 장단과 함께 다양하게 변형시켜 산조의 극치미를 이루고 있다.
특히 죽파가 짜 넣은 진양조의 변청계면조, 본청계면조와 중모리우조, 휘모리, 세산조시는 죽파산조의 특징을 이룬다. 또 이중 휘모리 36가락은 죽파가 8세 때 김창조로부터 전해진 김창조 가락들이다. 죽파의 가락들은 음색깔 변화의 극치미와 긴장과 이완의 미, 엇박의 미를 통해 끊임없이 생명력을 지니고 뛰어난 형식미와 함께 정통성을 자랑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병창 및 가야금산조 보유자(인간문화재)인 양승희 명인은 1948년 생으로 서울대음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를 받았았다. 러시아 국립대에서 명예음악학박사를 받기도 한 그는 현재 (사)산조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양승희 명인 서울대시절 인연을 맺은 김죽파의 무릎제자로, 특히 7,80년대에는 창작가야금곡을 그가 타지 않으면 연주가 되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인 실력을 인정받았다. 20년간 황병기 작품을 모두 위촉 초연하기도 했고, 미국 카네기홀 등 세계 각국에서 가야금산조 독주회를 가졌다. 스승인 죽파 선생이 인정한 유일무이한 제자인 그는 1988년 가야금산조 준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았고, 2006년 가야금산조 보유자가 됐다.
철현금, 아쟁, 판소리, 병창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고, 2004년 안기옥, 정남희 두 명인의 산조를 악보화하고 이를 책으로 발간, 국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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