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4년 05월 09일(금) 11:43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변론을 맡았던 「부림사건」을 배경으로한 영화「변호인」이 관객 1천133만명을 동원하는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영화 「변호인」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바로 국밥이다. 가난한 사법고시 준비생의 한 끼를 든든하게 채워주었던 음식, 국밥 한 그릇 사 먹을 돈조차 없어 밥값을 내지 않고 달아나버린 손님을 탓하지 않고, 몇 년 뒤 성공해 나타나 밥값을 치르려고 하자 “돈이 아닌 사람으로 갚는거다”며 돈을 받지 않는 주인 아주머니의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는 음식, 빽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는 서민들이 뜨끈한 국밥 국물에 막걸리 한잔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음식이 국밥이다. 어쩌면 국밥은 가난에서 태어나 가난을 끌어안은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이처럼 서민과 애환을 같이해온 국밥은 어디에서부터 유래되었을까? 국밥의 어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몇가지 설중 가장 유력한 설로 꼽히는 것은 설렁탕의 어원으로 조선시대에 임금이 직접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제사를 지냈던 「선농단」에서 제사를 마치고 잔치를 열었을 때 농민들을 위해 고기국을 내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국밥의 유래로 보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조선시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보부상들이 시간을 아끼려고 주막에서 빠른 식사를 하기 위해 간단하게 먹기 쉽도록 고안해 낸 음식이 국밥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가장 최근 설로는 한국전쟁당시 돼지뼈로 우려낸 육수에 밥과 고기를 말아 먹는 음식문화가 시작되었는데 이를 국밥의 유래로 보는 설도 있다. 즉 말해서 돼지국밥은 난리통에 비싼 쇠고기 대신 값싼 양질의 동물성 단백질인 돼지고기로 배를 채우고 영양을 보충해야 했던 가난했던 시절에 만들어낸 최상의 음식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가난속에서 태어난 국밥은 지금도 여전히 한 그릇에 5천∼6천원하는 저렴한 가격으로 1만원이면 막걸리 1통과 더불어 서민들의 배를 든든히 채울수 있는 서민들의 다정한 벗이 되고 있다. 필자도 퇴직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이곳 저곳 5일장터를 찾아 뜨끈 뜨끈한 국밥 한그릇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담소를 나누는 것을 생활의 큰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국밥은 지역마다 조리방법이 다르고 종류도 다양하다. 서울이나 경기도에서는 국밥을 주문하면 순대국밥이나 소머리국밥을 내놓는다. 제주도도 순대국밥을 내놓는데 서울이나 경기도와 다르게 콩나물 등 야채가 듬뿍 올라간다. 경상남도 및 부산지방에서는 국밥을 이야기하면 돼지국밥을 내놓고 경상북도 및 대구지방의 국밥은 파를 가득넣은 소고기나 선지를 이용한 소고기 국밥이 일반적이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콩나물 국밥을 내놓고 평안도에서는 고기국물에 녹두전과 두부전을 올린 온반이 유명하다. 국밥은 원래 국과 밥의 구분이 없이 말아서 나오는데 국과 밥을 따로 내놓아 먹는 사람이 말아 먹도록 하는 것을 따로 국밥이라고 한다. 따로 국밥의 유래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 몰려드는 대구에서 양반들이 하인들이나 먹는 국밥을 같이 못 먹겠다면서 국 따로 밥 따로 달라고 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따사로운 봄날 시골장터 국밥집을 찾아 다니며 봄의 정취도 느끼고 화사한 봄꽃도 구경하면서 장터 국밥집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김치 깍두기를 곁들인 뜨끈 뜨끈한 국밥에 밥 한그릇 말아 다정한 친구들과 한잔의 막걸리를 걸치면서 가는 봄의 아쉬움을 달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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