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4년 07월 14일(월) 14:27
이진
전)영암군 신북면장
전)전라남도 노인복지과장
전)완도부군수
우리나라 국민들이 즐기는 운동경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종목은 야구가 아닌가 생각한다. 야구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것은 1905년 미국인 질레트(P.Gillett)에 의해서였다.
당시 선교사로 한국에 온 질레트(P.Gillett)가 황성기독청년회(현재의 YMCA)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게된 것이 우리나라 야구의 효시가 되었다. 우리나라 야구 초창기 눈길을 끄는 것은 1922년 12월 8일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단을 초청하여 철도구장에서 전 조선군과 경기를 가졌는데 결과는 21:3으로 크게 패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야구가 국민스포츠로 자리잡게 된 원동력은 고교야구라고 생각한다. 프로야구가 탄생하기 이전 고등학교 야구는 국민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그 이유는 첫째는 젊은 학생들이 승리를 향해 펼치는 불타는 투지, 둘째는 아직 기량이 성숙되지 않은 플레이에서 나오는 실수가 승리의 향방을 바꾸는 의외성, 그리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고등학교팀이 출전한다는 로칼리즘이었다고 한다.
당시 고등학교 야구대회에서는 패자 부활전이라는 것이 있었다. 예선에서 탈락한 팀들끼리 다시 한판 더 붙어서 결승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였는데 이 제도가 만들어진 배경은 고등학교 야구 인기가 높아 관중이 몰리자 게임수를 늘리려는 주최측의 의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고등학교 야구의 인기를 바탕으로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1982년에 프로야구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탄생 배경을 군사 쿠데타로 정치적 정통성을 갖지 못한 전두환 정권이 5.18광주학살을 덮고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리기 위해 채택한 3S정책(Sports, Screen, Sex)의 결과라고도 하지만 어찌 되었건 모두가 숨죽이던 절대권력의 시절, 최고 통치자가 관심을 갖고 프로야구를 출범시켰기 때문에 오늘날 프로야구가 크게 성장했다고 본다면 전두환 대통령은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초석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야구경기는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다. 야구경기는 9회말 2아웃 2스트라익 상황이라도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을때까지는 승패를 알 수 없다. 언제 굿바이 홈런을 때릴지 아니면 불규칙 바운드로 에러가 나와 승부가 뒤집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절망과 좌절에 빠져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라도 마지막 한방으로 인생이 역전될 수 있는가 하면 잘나가는 인생도 언제 예기치 못한 일로 판세가 뒤집어져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될지 모른다.
프로야구 V10에 도전하는 기아팀이 지난 2009년 한국씨리즈 SK와 마지막 7차전을 치르면서 초반 1:5로 뒤져 패색이 짙었으나 나지완 선수의 9회말 마지막 한방 끝내기 홈런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어 V10의 영광을 달성한 기억을 우리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날의 가을야구 승리에 선수는 물론 우리 남도민 모두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금년도 우리 기아팀은 초반 선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전력에 큰 차질이 발생하여 어려움을 겪었으나 최근 선발 투수진들의 마운드가 안정을 되찾고 타자들의 타격 감각이 최고조로 올라 지금은 팀순위 6위이지만 5위 두산, 4위 롯데에 근소한 차이로 따라붙고 있어 4위권에 진입하는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시즌이 끝날 때 까지 승승장구하여 가을야구에 초대받아 다시한번 짜릿한 승리의 감격을 맛보면서 V11의 영광을 달성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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