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종연횡(合從連衡)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4년 07월 18일(금) 13:21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사람 귀곡자(鬼谷子)는 이합집산(離合集散)과 권모술수(權謀術數)의 외교를 우자(優者)의 도라 주장했다. 이른바 종횡론(縱橫論)이다.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귀곡자의 제자들로, ‘합종연횡(合從連衡)’은 바로 이들에게서 유래한다. 「사기(史記)」의 소진장의열전(蘇秦張儀列傳)에 나오는 합종연횡은 전국시대 합종가와 연횡가들에 의해 주장된 외교술을 말한다. 소진은 합종가였고, 장의는 연횡가였다. 합종의 ‘종’은 縱(종)의 뜻으로 南北(남북)을 뜻하고, 연횡의 ‘횡’은 橫(횡)의 뜻으로 東西(동서)를 말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대였던 전국시대 할거하던 군웅들 가운데 진(秦), 조(趙), 위(魏), 한(韓), 제(齊), 연(燕), 초(楚)를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부른다. 소진은 전국칠웅 가운데 가장 강대국인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연나라를 비롯한 6국에 “진나라 밑에서 쇠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고 제안한다. 남북으로 6국이 합작해 방위동맹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 공존공영의 길이라는 주장이었다. 바로 ‘합종책’이다.
합종책은 소진에 앞서 위(魏)의 공손연(公孫衍)이 처음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6국을 순회유세하며 합종에 성공했으나 각국의 이해가 충돌하고, 진의 위협과 이간책까지 겹쳐 별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진나라의 국력이 강성해진 상황에서 나온 소진의 합종책은 반대로 6국의 호응이 컸다. 연합군을 조직해 진나라를 공격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진나라는 점령하고 있던 각국의 땅을 되돌려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6국의 군사동맹을 성공시킨 소진은 그 공으로 육국의 재상직을 겸하며, 종약장(從約長)이 되어 6국 왕들의 회의에 의장 역할까지 한다.
이 합종책을 깨뜨리기 위해 각국을 순회하며 진나라와의 연합만이 안전한 길이라고 설득한 인물이 귀곡자의 또 다른 제자 장의다. 공손연이 합종책으로 6국을 묶어놓자 진나라는 장의를 초나라에 보내 제나라와의 연맹 관계를 끊고 진나라와 연합하게 만드는데 성공함으로써 합종책을 무력화시켰다. 훗날 진나라는 이 연횡책을 통해 합종을 타파하고 6국을 차례로 멸망시킴으로써 중국대륙을 최초로 통일하는 국가가 된다.
합종은 ‘약한 다수가 강한 하나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강국의 겸병(兼倂, 둘 이상의 것을 하나로 합하여 가진다는 뜻)을 막자는데 목적을 뒀다. 반면에 연횡은 강국이 약국을 도와 그 나라로 하여금 겸병을 진행시키는 책략이다. 전국시대 6국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합종에도 가입하고, 연횡에도 가입해야 했다. 이 때문에 ‘조진모초(朝秦暮楚)’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아침에는 진나라에서, 저녁에는 초나라에서 지낸다’는 뜻으로, 이쪽에 붙었다 저 쪽에 붙었다 하는 행위를 말한다.
중국 최악의 난세에 횡횡했던 이합집산과 권모술수의 대명사인 합종연횡은 우리나라에서도 선거철 만 되면 어김없이 되풀이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영암지역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 실시된 제7대 영암군의회 의장선거에서는 소진과 장의가 다시 살아난 듯 합종과 연횡의 진수(眞髓)를 선보였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군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등은 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논리만 가득한 살벌한 세 싸움이 한바탕 벌어졌다. 기대가 많았던 제7대 의회에서도 어김없이 재연됨으로써 벌써 열두 차례다. 군민들의 허탈감은 그만큼 더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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