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풀린 쌀시장 파장과 전망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4년 07월 28일(월) 17:11
마침내 쌀시장이 내년 1월1일부터 전면개방 되게 됐다. 1993년12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위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에 따라 새로운 국제무역질서에 동참하기 위해 서둘러 UR 참여를 선언한 우리정부가 그로부터 20년 동안 고심해온 숙제를 전면개방으로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농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쌀시장 개방은 곧 국내 쌀 산업을 죽이는 길”이라며 강력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시장개방과 함께 ‘쌀산업발전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농민들의 격한 반응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부, MMA 더 이상 감당 불가 판단 고율관세·SSG로 방어막
농민단체, ‘不通농정’ 선언이자 한국농정의 慘事 강력 투쟁
고율관세 유지여부 놓고 정부 불신 팽배 쌀종합대책도 관심
■ 쌀시장 전면개방 왜?
각국이 UR 참여를 위해서는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국제가격과 국내가격의 차이만큼 관세를 부과하는 ‘예외 없는 관세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우리 정부 역시 이 의무를 이행해왔으나 쌀 시장만은 예외였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시장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매년 일정량을 의무 수입하기로 약속했던 것. 또 2004년 10년간의 유예기간이 종료되면서 개방 문제가 다시 제기됐으나 여전히 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 시장개방을 10년 더 미루는 대신 의무수입물량을 늘리기로 했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전면개방을 택한 것은 쌀 소비 감소에 따라 의무수입물량(MMA)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정부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1994년 이후 20년 동안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했지만, 의무수입 물량은 매년 늘어났다. 그 결과 올해 쌀 의무수입량은 지난해 국내 쌀 생산량 423만t의 9.7%에 해당하는 40만8천700t까지 불어났다.
이 상황에서 다시 쌀 시장 개방을 미룬다면 의무수입물량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실제로 우리처럼 쌀 개방을 미뤄온 필리핀은 2012년부터 2년간 WTO와 협상을 벌인 끝에 2017년까지 쌀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의무수입물량을 연간 35만t에서 80만5천t으로 2.3배 늘리기로 했다. 우리가 필리핀과 같은 조건으로 쌀 개방을 연기한다면 의무수입물량은 국내 쌀 생산량의 약 22%에 달하는 94만t에 육박하게 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이처럼 의무수입물량을 더 늘렸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부나 정치권, 농업계 모두 이견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 ‘고(高) 관세율’ 안전핀 될까?
“관세결정방식은 이미 WTO 농업협정상에 나와 있으며, 협상대상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300∼500%를 얘기하는데 정부안도 그 범위 내에 있다. 관세화 돼도 고율관세를 매기면 수입이 많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수입쌀이 6만5천∼7만원선일 때 관세 300%만 부과해도 24만∼25만원이 된다. 우리 쌀이 17만원이면 외국쌀을 사먹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1 관세화가 되더라도, 실제로 고율 관세를 부담하면서 외국 쌀을 수입하는 예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만과 일본 등은 검증과정에서 관세율 변동은 없었다. 관세화 후 외국 쌀 수입이 급격히 늘어나면 특별긴급관세(SSG)를 부과하겠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말이다. 이 장관은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TPP) 협상 등에서 쌀을 양허(관세철폐 또는 인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확고한 방침을 갖고 있다며 “정부를 믿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국산 쌀과 국제 쌀의 차이는 2∼3배정도다. 국산 쌀 가격은 한 가마니(80㎏)에 17만원선인데 비해 올해 5월 미국 캘리포니아산 중립종 쌀은 8만∼9만원선, 중국산 단립종 쌀은 8만5천177원선이다. 국제 쌀 가격을 가마니 당 8만원으로 가정하고 300∼500%의 관세율인 400%의 관세율을 적용하면 수입쌀의 국내 도입가는 ‘8만+(8만×400%)’로 40만원이 된다. 국제 쌀 가격이 1t당 700달러까지 떨어지고 관세율을 200%만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수입 쌀 가격은 국산 쌀 가격보다 비싼 18만원이 된다. 이는 정부가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전농 등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수입쌀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FTA나 TPP 협상 등으로 관세율이 낮아지거나 관세가 폐지될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믿어 달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쌀 시장 전면개방을 쌀 산업의 포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농민들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 남은 절차는?
일단 세계무역기구(WTO)와의 후속협의와 검증, 국내에서 관련법안 정비와 국회 논의 등이 필요하다.
정부는 9월 수입쌀에 매길 관세율과 구체적 쌀산업발전대책을 발표하고, WTO에 수정양허표를 제출해 회원국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는 계획이다. 검증기간은 규정상 3개월이다. 그러나 일본과 대만의 경우 각각 23개월, 57개월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과 대만은 규정에 따라 3개월 뒤 일단 자국이 정해 WTO에 통보한 관세율에 따라 쌀 수입을 했다.
일본은 유예기간 종료시점(2001년)보다 2년 앞서 관세화에 나서 1㎏당 341엔의 관세를 매겼다. 평균 관세율 300∼400%에 해당한다.
대만은 2003년 이후 관세화를 더 미룰 수 있었으나, MMA 물량 급증을 우려해 관세화를 선택, 1㎏당 45타이완달러의 관세를 매겼다. 가격기준 관세율 563%다.
정부는 일본과 대만이 자국 쌀 시장을 지킬 수 있을 만한 높은 관세율을 매긴 결과 MMA 물량 외의 수입이 적었고, 관세화를 통해 자국 쌀 산업을 지켰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국내외 가격차가 5배에서 2∼3배 수준으로 줄어드는 점을 감안해 ‘종량세’보다 ‘종가세’를 적용하는 게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향후 일본과 대만의 협상사례를 참고해 관세율을 설정하고 WTO 회원국들과의 검증과정에 나설 방침이다.
국회의 사전 비준동의는 불필요하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다만 WTO와 협상이 완료된 이후 국회의 비준동의는 받을 가능성이 있다. 대신 통상절차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보고하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등과 공식·비공식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 ‘쌀산업발전대책’은?
정부의 쌀시장 전면개방에 따라 고율의 관세와 함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 쌀 농가 보호를 위한 쌀산업발전대책이다.
정부가 밝힌 쌀산업발전대책의 주요 방향은 ▲안정적 생산기반 유지 ▲농가소득 안정 ▲경쟁력 제고 ▲국산 쌀과 수입쌀의 혼합유통 금지 등 부정유통 방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앞으로 국회와 농업계 의견을 수렵해 세부 내용을 확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우선 쌀 산업 기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우량농지를 보전하고 기반시설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생산기반을 유지, 강화하는 동시에 소비와 수출을 촉진하고 가공산업을 육성해 수요기반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쌀값 하락과 농가소득 감소에 대비한 소득안전장치도 보완하기로 했다. 쌀 직불금 제도를 보완하고 쌀 재해보험 보장수준을 현실화하는 등 제도개선과 함께 이모작을 확대해 곡물 및 식량자급률을 제고할 방침이다. 농식품부는 이모작 논이 10만ha 늘어나면 곡물자급률이 2.5%p 상승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수입쌀과의 경쟁에 대비해 국산 쌀의 경쟁력 강화방안도 제시할 방침이다. 쌀 전업농과 경작규모 50ha 이상의 ‘들녘경영체’를 지속적으로 육성해 국내 쌀 산업을 규모화 조직화하는 한편, 쌀 생산비 절감기술을 개발하고 고품종 종자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농민단체가 우려를 반영해 국산쌀과 수입쌀의 혼합판매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부정유통에 따른 제재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또 미곡종합처리장(RPC)의 통합 또는 연합을 유도해 거래교섭력을 강화하고 건조, 저온저장시설 등 RPC 시설 현대화 사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 농민들 반응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지난 7월18일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쌀 관세화 관련 정부 발표는 전농 뿐 아니라 국회, 타 농민단체의 요구를 모두 무시한 채 불통농정을 선언한 것으로 한국농정의 참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전농은 특히 “7·18 선언을 기점으로 대규모 투쟁을 만들어 갈 것”이라며 “정부가 포기한 식량주권은 농민의 힘을 모아 지켜나가겠다”고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도 이에 가세해 7월21일 광주역 광장에서 ‘한·중FTA 중단·쌀포기 정책 규탄’ 농민집회를 열고 박근혜 정부의 쌀 전면 개방 정책을 ‘식량 참사’로 규정하며 전면투쟁에 나서겠다고 선포했다. 이들은 투쟁선포문을 통해 “지난 18일 정부는 협상도 포기하고 쌀 관세화 입장을 발표했다”며 “민족의 주식이자 주권인 쌀을 국민과 협의도 없이, 국회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전면개방 하겠다는 것은 식량주권과 농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또 “쌀 관세화는 전면 개방의 시작점이다”며 “관세를 300~400% 적용할 지라도 한·중FTA 협상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통해 관세감축과 철폐의 압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특히 “정부는 국제적 쌀 협상을 포기하고 자국 농민들과 싸움을 선택했다”며 “농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쌀 전면개방 정책을 ‘식량참사’로 규정하고 이날부터 전면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농민들은 농촌 곳곳에서 논 갈아엎기 등의 투쟁을 펼쳐 9월 대규모 집회로 결집한다는 계획도 아울러 밝혀 쌀시장 전면개방을 둘러싼 농민들의 반발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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