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놓인 저금통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4년 08월 14일(목) 11:28
정찬열
군서면 도장리 출신
미국 영암군 홍보대사
바람이 창문을 흔든다.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읽던 책을 덮어놓고 촛불을 켰다. 촛불에 드러나는 방안 풍경이 좀 생경하다.
거실 한 편에 놓여있는 동전통이 보인다. 퇴근 후에 집에 오면 주머니에 남아 있는 동전을 담아 두는 통이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일 년쯤 지나면 돈이 꽤 모아진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 무렵 동전통을 깨서 녀석들이 갖고 싶은 물건을 사도록 했다. 년 말이 가까워지면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통이 얼마나 무거운지 흔들어보면서 무엇을 살까 들뜨곤 했었다.
딸애가 대학에 간 후 그 통은 아들 차지가 되었다. 그런데 아들 녀석도 대학에 가더니 동전통 돈을 바꾸어다 쓰라고 해도 못들은 척 했다. 작은 돈을 가볍게 아는 성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어른이 되어간다는 징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둥지를 떠나고 이제 우리 부부만 남았다.
촛불이 흔들린다. 바람소리가 무섭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부나비 한 마리가 촛불 주위를 맴돈다. 이상하다. 우리 집 어딘가에 부나비가 숨어 있었다니. 허지만 곰곰 따지고 보니 그렇게만 생각할 일도 아니다. 내 어린 시절 월출산에 나무하러 갔을 때, 배가 아파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았는데 그 깊은 산중 어디선가 금시 파리가 날아오지 않던가. 날벌레란 놈들은 도처에 숨어 있다가 그렇게 허를 찌르고 나타난다.
위태위태하게 촛불을 향해 날아드는 녀석을 보면서, 옛날 시골 처마 끝에 걸어둔 램프등 밑에 수복이 쌓이던 날벌레 모습이 떠올랐다.
몇 번이나 손을 저어 날려 보냈지만 부나비는 끊임없이 촛불을 향해 달겨든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시 한 편을 썼다.
‘고요히 타오르는 촛불로 / 부나비 한 마리 / 날아왔다 // 촛불이 / 나직이 말했다 / 덤비지 마라 / 다친다 // 팔랑거리며 맴도는 녀석에게 / 다시 부탁했다 / 가까이 오지 마라 / 탄다 // 달려드는 부나비를 향해 / 마지막 애원을 했다 / 설치지 마라 / 죽는다 // 촛불이 잠깐 흔들리더니 / 지지직 / 연기 한 자락 피어올랐다.’
제목을 ‘어떤 인생’이라고 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지혜가 늘어가고 욕심도 많아진다. 우리 아이들이 동전통 쯤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은 안목이 넓어졌다는 의미도 되지만 욕심이 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욕심을 탓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본성이고, 개인이나 사회가 발전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혜가 욕심을 조절할 수 없을 때, 문제가 생긴다.
사방이 어둡고 바람소리가 무섭게 들리는 이 밤, 흔들거리는 촛불을 바라보다가, 방금 덮어두었던 어느 잡지의 글을 다시 읽어본다.
‘하루 세끼 걱정하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고, 추위와 더위를 면해줄 옷 몇 벌이면 충분히 행복한 것을. 무엇을 더 바라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감옥에 갇혀있는 어떤 사람이 써 놓은 일기 한 토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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