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않는 사회의 호신술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
2014년 10월 27일(월) 14:09 |
시조시인
예비역 소령
초등학교를 다니던 똘이에게 선생님과 어머니는 "오락실에는 절대가지 마라"며 오늘도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12살 똘이의 왼쪽 귀를 통해 들어간 그 말씀은 결코 머리에 머물지 않고 바로 오른쪽 귀로 흘러가고 말았다.
"수업만 끝나면 오락실 갈 건데. 히히"
요즘 똘이는 오락실 가는 재미로 하루하루가 즐겁다. 오락실에 가면 마징가Z도 독수리 오형제도 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고 100원 한도내에서 지구를 지키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어 정말 정말 재미있는 것이다. '동네 방위도 퇴근한 5시 이후에는 내가 지구를 지킨다'면서 자랑하기도 했다. 게다가 100원으로 게임의 끝까지 가서 엔딩도 본다는 전문용어 '원코인 클리어'도 가능해 300원이면 1시간의 유희는 거뜬했다. 똘이는 점심시간부터 오늘 오락실에 가는 시간 계획을 세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다른 학원수업은 빼먹기가 어려운데 태권도 도장은 조금 늦게 가더라도 인사만 잘 하면 관장님은 무사통과니까 오늘도 속셈학원을 얼른마치고 오락실에 갔다가 도장가면 되겠다. 히히 난 내가 생각해도 참 똑똑해!"
똘이의 이런 계획은 바로 5분 전까지 딱 들어맞는 듯 했다. 바로 오락실에 상주하는 동네 양아치 형에게 걸리기 직전까지 말이다. 양아치 형은 말로만 듣던 멘트를 똘이에게 날렸다. "아가! 형이 유흥비가 모자라니 있는대로 형에게 주라. 만약! 뒤져서 돈이 더 나오면 10원에 한 대씩이다."
똘이는 나름 머리를 굴려 어제 받은 용돈 1천원은 양말에 용케 넣어 둬서 뺏기지는 않았지만 아까 바꿨던 돈 1천원에서 무려 800원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도 더 기분나쁜 것은 그냥 돈을 주면 안 때릴 줄 알았는데… 돈이 적다고 기어이 꿀밤 한 대를 더 때리고 간 일 때문이다. 똘이는 울면서 양아치형을 원망했고 속으로는 부모님과 어머니가 왜 오락실에 가지 말라고 했는지 전두엽의 통증과 함께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오락실의 유혹은 너무도 강렬했다. 똘이는 오락실은 가고 싶었고 돈은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똘이는 먼저 돈을 빼앗기지 않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태권도 학원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소년 똘이가 정열을 불사른 지 어언 2년 드디어 유단자가 됐다. 자신감과 용기로 온몸을 무장한 똘이는 이제 자신만만하게 오락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웬걸? 오락실에 양아치형이 또 나타났다. 심장이 쿵쾅쿵쾅! 6기통 엔진처럼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다리도 떨리고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양아치 형은 순진하게 돈을 뜯기던 불쌍한 양을 발견하고 똑같은 멘트로 유흥비를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의 똘이는 예전의 똘이가 아니었다. 그 양아치 형이 다가오자 그 동안 갈고 닦았던 현란한 발차기로 양아치 형의 급소를 공격하고는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오락실의 주인공이 했던 것처럼 승리포즈도 취해봤다. 그러나 그 즐거움도 '3초 천하'였다. 그 양아치 형과 함께 다니던 또 다른 형들이 소리를 듣고 똘이를 순식간에 포위했던 것이다. 결국 똘이는 또 800원을 빼앗기고 말았다.
두 번의 강렬한 오락실 강탈사건 이후 똘이는 깨달았다. 사회적 약자가 취할 수 있는 훨씬 효과적인 호신술은 '상대방을 제압하는 적극적인 공세'보다는 '애초에 위험한 일을 하지 않는 능동적 방어'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그 사건 이후 똘이는 안전하게 집에서 '단풍잎 이야기'라는 게임을 즐기며 오락실에 가서 개고생하던 시절을 기억속에서 서서히 지워가고 있다.
지난 17일 성남 판교에서 '환풍구 붕괴 참사'가 발생했다. 그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정부탓, 지자체 탓, 행사주최측 탓, 올라간 사람 탓을 하며 서로 책임공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듣고보면 모두다 책임이 있고 모두다 억울하다. 하지만 걸그룹의 멋진 공연을 보겠다는 유혹 때문에 27명이나 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은 이 사건에서 책임자는 보이지 않고 피해자만 보인다. 전 세계 어디를 봐도 그렇지만 피해자는 확실한데 책임자나 가해자가 불분명한 사건이 정말 많다.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아직까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당신은 운이 좋은 것이다. 전자의 똘이가 깨달은 안전의 개념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그대로 적용된다. 세상에 수 많은 유혹이 있다. 그 유혹을 참는 방법이 있고 대체하는 방법도 있으며 안전을 강구한 상태에서 유혹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시행함에 있어서 상식중의 상식은 공중도덕을 지키면 된다는 것이다. 남들이 모두 생각하는 기본만 지켜도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소란 피우는데 공중도덕에 대해 지적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 '기 죽인다'고 화내지 말고 자식 교육 못 시킨 자신을 부끄러워하자. 혹시 아나? 나중에 그 훈계가 아이를 살리는 결정적 한마디가 될지.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