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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31일(금) 13:09 |
60년대 이승만 정권 때 쓰인 글이 아니다. 좀 생뚱맞은 인용 글이다 싶겠지만, 실제로 몇 해 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추모식에서 한 보수단체 대표가 낸 논평이다.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탓도 있겠다. 그러나 '건국대통령' 운운이나 '국방비 지출 및 절감이 경이적 경제성장의 배경'이라는 주장에는 억지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대다수 독자들이 어처구니없을 터이다. 따라서 조금 긴 설명을 붙여야 할 것 같다. 우선 이 보수단체가 속한 소위 '뉴 라이트'의 우리 역사구분은 1948년부터 시작된다. 암울한 일제치하 상해 임시정부 수립이나 기미년 3·1독립운동 등은 역사의 '곁가지'다. 이들에게 1960년까지가 '건국의 시대'다. 이승만이 '건국대통령' 내지는 '건국의 아버지'가 되는 이유다. 이후 '개발의 시대'(1961-1987)와 '민주화의 시대'(1988-2007)를 거쳤다고 본다. 또 지금은 '선진화의 시대'(2008-현재)다. 이 기간 대한민국 국민들이 수세대에 걸쳐 누린 모든 혜택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력과 그로 인한 한미동맹의 결과라는 게 이 보수단체 논평의 요점이다.
역사인식엔 다양한 시각과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 존경심이라면 모를까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공로를 모두 이 전 대통령에 돌리는 시각은 아무리 양보해도 지나치다. 그가 만든 민족분단과 독재의 긴 터널을 어렵게 헤쳐 온 '국민의 힘'이 통째로 무시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뒤틀린 역사인식은 지금도 이른바 '꼴통' 보수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역사인식을 보편화하기 위해 교과서 수정작업까지 시도하는 지경이다.
'국민의 방송'을 자처하는 KBS의 이인호 이사장은 엊그제 백범 김구 선생을 비하했다.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의 수반까지 하면서 독립운동가로 대단히 훌륭했으나 대한민국 독립에는 반대했기 때문에 그 의미에서 대한민국 공로자로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고 독립운동가로 대우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이승만이 주도한 남한만의 단독정부에 반대한 일을 대한민국 독립에 대한 반대로 본 것이다. 뿐만 아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 이사장의 발언에 "소신 있다"며 극구 찬양해댔다.
김대중 정부시절 주 러시아 대사 등을 역임했던 이 이사장은 원래 서울대 교수 시절 진보적 성향의 사학자였다고 한다. 80년대 학생운동이 치열할 당시 러시아혁명과 인텔리겐차의 역할에 대해 강의할 정도였고, 진보적 연구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그가 뉴 라이트로 변신한 것은 2005년 조부 이명세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면서다. 이명세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징병제를 찬양했던 인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이사장은 이를 두고 최근 "(조부는) 유학의 세를 늘려가기 위해 일제 통치 체제하에서 타협하면서 사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친일을 단죄하면 일제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다"고 둘러댔다. 뿐만 아니라 "분단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낙마한 문창극 전 총리지명자의 교회 강연 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추켜올리기도 했다.
잘못된 역사인식이 비단 한 개인의 문제에 그친다면 탓할 일이 없다. 하지만 보수라는 이념의 탈까지 쓰고, 남북분단의 상황으로 부터 추동력을 얻어 우리사회 전반에 퍼져가는 상황은 소름 돋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뒤틀린 역사관을 가진 이들 대다수가 친일 또는 독재에 기생했던 이들이거나 그 후손인 점이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고약스럽고 흉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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