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환. 고행의 수미산(須彌山) 순례길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4년 11월 18일(화) 13:04
수미산(須彌山, Sumeru)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우주의 중심을 이루는 거대한 산을 뜻한다. 정상에는 제석천의 궁전이 있고 중턱에는 사천왕의 거처가 있다. 7개의 향수 바다와 금산이 둘러싸고 있고, 그 바깥 사방에 인간이 사는 4대주가 있다.
불교의 성지 티베트를 순례하는 불자들에게 가장 힘든 여정이 바로 수미산 순례다. 티베트인들은 카일라스를 수미산이라고 믿는다.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출발해 다시 돌아오는데 대략 보름정도 걸리는 수미산 코라를 한 바퀴 돌면 업장이 소멸하고, 다섯 바퀴를 돌면 금생에 성불한다고 할 정도다.
영암 군서면 출신으로 전남과학기술진흥센터 센터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보환씨가 수미산 순례길을 다녀온 뒤 쓴 고행기를 보내왔다. 수회에 걸쳐 이를 연재한다.<편집자註>
"16일 간의 수미산 순례를 마쳤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을까? 금생에 한 번 돌면 업장소멸하고 다섯 번 돌면 성불한다는데 나는 무엇을 참회하고 감사했는가? 절 만 배 수행과 비교가 안 되는 성산 순례의 고행 길을 마치고 나는 무엇을 마음에 남기고 돌아왔는가?"
중국도 넓지만 티베트도 참으로 넓다. 한반도의 6배나 된다. 차창에 비치는 산들은 각양각색이란 말이 어울린다. 붉은색, 파란색, 연두색, 보라색 등등, 딱히 무슨 색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색깔들이다. 3시간쯤 더 가니 미국의 그랜드캐넌처럼 토양의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수많은 조각품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넓이가 광활하다. 붉은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자연이 빚은 작품에 넋이 나갈 지경이다. 어두워질 무렵 구게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저녁식사를 했다. 음식은 괜찮았다.
구게왕국-회향의 길
순례하는 동안 매일 건조한 날씨와 사투를 벌였다. 객실에서는 늘 수건에 물을 적셔 놓았고, 물을 적신 마스크를 코에 댄 채 잠자리에 들었다. 다른 순례자들 역시 거의매일 자고나면 코가 막혀 곤란을 겪었다. 건조한데다 고산병이 겹쳤기 때문이다.
구게왕국은 9세기경 티베트의 토번왕국이 분열된 후 성립된 지방정권으로 세력이 강성했던 나라였다고 한다. 방이 44칸, 보루 58개, 토굴 879개, 비밀통로 4갈래, 불탑 28개 등이 남아있다. 그중 각종 벽화는 너무도 생생히 보존되어 있어 그들의 벽화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짐작할 수가 있다. 또한 당시 수직 2㎞ 가량의 회전식 수도를 만들어 산꼭대기에 물을 끌어올린 것을 보면 당대 건축가들의 기술도 대단했구나 싶었다. 구게왕국은 1635년 캐시미르에서 온 라다크인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마나사로바 호수는 참으로 아름답다. 녹청색이라 할까. 아주 진한 파란색이다. 저녁이 되니 바람이 차가워져 밖에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저녁을 라면으로 대신하고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간단한 아침식사를 끝낸 뒤 12시간 동안 500㎞를 가는 긴 여정 끝에 사가에 도착했다. 이어 다음날에도 시가체 방향으로 460㎞를 가야했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도착했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온 것이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코스를 수정해 항공편을 이용해 인천서 북경으로, 그리고 열차편을 이용해 북경에서 라싸까지 간 뒤, 라싸에서 버스를 타고 수미산을 순례하는 순서를 밟고 싶다. 수미산을 순례한 뒤에는 네팔로 넘어가 카투만두에서 항공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 되는 코스다.
3,750㎞ 칭창열차 44시간
티베트 순례를 마치고 북경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가는 날이다. 그러나 길은 아주 멀다. 중국정부는 북경에서 라싸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지난 2005년 준공했고 매일 2회 정도 왕래한다고 한다. 칭창열차는 장장 3천750㎞를 44시간 동안 달린다. 청해성, 감숙성, 하북성 등 여러 성을 지나며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경치와 유구한 역사의 현장을 지나는 칭창열차는 여행객과 순례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루함 없이 자연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중국 정부가 황사를 막기 위해 만든 돌밭과 그물들이 보인다. 철도 옆으로 수㎞나 설치된 것을 보면 중국정부가 황사를 막기 위해 어지간히 고민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칭창열차는 고도 5천72m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기차 안에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가 되어있고 의료진까지 대기하고 있다. 철로 공사도중 고산병과 큰 일교차로 티베트인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기차 특유의 소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차가 가는 것인지 서있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을 정도였다. 대단히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타보니 참으로 조용하고 편했다.
칭창철도의 티베트 구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 철도' 라는 명성을 보유하고 있다. 최고 지점인 탕굴라 고개(Tanggula Pass)는 해발 5천72m이며, 그 가까이에 있는 탕굴라 역이 해발 5천68m이다. 전 구간의 평균 해발은 약 4천500m이며 해발 4천m 이상 구간도 960㎞나 된다. 이처럼 고지대에 철도가 건설된 것은 다른 나라에도 유례가 없다고 한다. 철도 부설과 병행해 건설된 칭하이-티베트 고속도로의 최고지점인 탕굴라 고개는 해발 5천231m이다. 거얼무-라싸 간 550㎞에는 동토 지대가 펼쳐져 있기 때문에 러시아나 캐나다의 예를 참고하면서 40년 이상 해당 지역에 적합한 공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실제 공사에서 낮은 기압과 산소 결핍, 심한 밤낮의 일교차, 엄동설한과 강풍 등으로 노동자들이 고생했다고 한다.
또 고가구간 부설 때에는 계절마다 결빙과 해빙을 반복하는 지역에 땅 속 깊이 기초 말뚝을 박아 지표에서 고가를 세우는 공법을 선택했고, 선로가 직접 땅 표면에 부설되는 영구토 구간에는 지중 온도의 상승을 막기 위해 냉매로 암모니아를 넣은 금속 방열말뚝이 궤도를 따라서 건설됐다. 향후 지구 온난화에 의해 영구 동토가 녹았을 경우, 추가로 보강 공사가 필요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기후 문제와는 별도로 방열말뚝이나 무인 시설에서 열차 운행을 제어하는 태양전지 패널의 도난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철도가 통과하는 '호후실 자연보호구'에는 특유의 티베트 영양을 비롯해 많은 고산식물이 자라는 희귀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당초 예산 12억위안을 초과한 20억위안을 투입했다고 한다. 보호동물의 서식지를 피하도록 궤도경로를 수정했고, 25개소의 동물용 전용 통로를 마련했다. 또 해당 지역의 석재는 그대로 보존했으며, 50㎞ 정도 떨어진 식생이 없는 토지에 채석장을 만들어 흙을 파헤치지 않고 공사를 진행했다. 잔토를 쌓아 올려 공사로 생긴 지하수를 하천에 흘리는 경우에는 침전 처리를 해 자연보호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중국 정부에 의한 교통 관련 건설공사 중 생태계 보호를 배려한 최초의 사례가 됐다.
무엇이 있었던가.
16일 간의 수미산 순례를 마쳤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을까? 금생에 한 번 돌면 업장소멸하고 다섯 번 돌면 성불한다는데 나는 무엇을 참회하고 감사했는가. 절 만 배 수행과 비교가 안 되는 성산 순례의 고행 길을 마치고 나는 무엇을 마음에 남기고 돌아왔는가? 무엇이 보일 것 같기도 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하여 몽상만 가득하구나. 머릿속의 생각은 아무것도 없고 성산의 강렬한 모습만 가득하구나.
경전에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 如夢幻泡影)이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하라'란 문구가 있다.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이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란 뜻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도 아니 이번 수미산 순례도, 어제도 이순간도, 어쩌면 화녀의 웃음이고 순간이자 찰나이며 번갯불이고 물거품인 것을…. 지금도 그곳에 마음을 두고 있는 내가 참으로 알 수 없구나. 어느 스님이 7년간 수행정진 하면서도 7년을 하루같이 순간같이 수행 정진하더라는 얘기가 있다. 이제 흐르는 시간 속에 마음을 가다듬어 내가 누군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 내 앞에 있는 현실을 순간순간 찰나찰나 선(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사진설명>
1. 다르첸에서 바라본 성산의 모습. 시가지는 마치 시골장날처럼 순례자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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