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공직자 독서경진대회 최우수작

이명환-여덟 단어 그리고 삶의 울림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4년 11월 21일(금) 13:27
영암군은 최근 '책 읽는 영암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실시한 제18회 독서왕 선발대회와 제6회 공직자 독서경진대회 결과 제18대 독서왕에는 영암고 정회엽(17·1년)군, 공직자 독서왕에는 도기박물관 이명환 관장을 선정, 시상했다. 특히 이명환 관장은 광고 카피라이터 박웅현이 쓴 「여덟 단어」를 읽고 쓴 독후감을 통해 "이책이 만약 10년전에만 출간되어 읽었더라면 아들, 딸들의 인생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고 토로할 정도로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관장의 독후감 전문을 소개한다.
"우리말로 '토끼풀'로 불리는 클로버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실 지천에 널려있는 게 그 풀이다. 그 풀들 속에서 사람들은 잎이 네 개인 '네잎클로버'를 찾아 헤매지만 결코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네잎클로버의 상징이 바로 '행운'이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보지만, 우리 삶에 행운이 제 발로 찾아오는 일이 극히 드물듯이, 네잎클로버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 바로 그 많은 세잎클로버들의 상징은 '행복'이라고 한다.
발밑에 깔려있는 행복을 두고 행운만을 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운이 좋게도 책장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광고 카피라이터 박웅현씨가 쓴 두 권의 책,「책은 도끼다」와「여덟 단어」말이다. 독후감을 위한 책 목록에 두 권이나 있었던 것을 보니 참 대단한 작가구나 싶었는데 정작 본업은 광고인인 중년 남성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즐겨 읽는 아내가 벌써 구비해놓은 것을 보니 이 시대에 걸맞은 필독 도서임을 예상했다.
두 책 중에 내가 고른 것은「여덟 단어」이다. 여덟 개의 단어를 키워드로 인문학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 풀어나가는 깔끔하고 직관적인 구성이 썩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훑어볼 필요도 없었고, 목차를 눈짐작으로 읽자마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사실 겨우 237쪽 남짓의 가벼운 이 책을 읽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는 중독성 강한 소설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키워드 한 개로 강의를 하는 형식의 교양도서이므로 그냥 술술 읽혀지지도, 한 귀로 흘리듯이 가볍게 읽을 수도 없는 책이었다.
한 강의에서 제시하는 키워드와 가끔씩 마음을 뜨끔하게 하는 몇 개의 문장들, 삶의 태도에 대한 메시지를 읽고 또 읽으며 내 삶에서 오랫동안 고착화되어 있던 가치들이 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했고,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도 느꼈고, 환갑의 나이지만 자아의 성찰을 돋우는 나보다 어린 작가의 경험과 생각에 겸허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총 여덟 개의 강의를 읽으며 일주일동안 하루하루 여덟 단어의 가치에 대해 공부하고 느끼며 오롯이 내 삶에 들여놓을 수 있었다. 이제 몇 달 뒤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고, 자식들은 훌쩍 커있는 나이지만, 단언컨대, 이 책은 내 삶에 몇 번이고 큰 울림을 주었고 파장을 만들었다. 익숙하고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부터 풀어내는 다양한 인문학적 삶의 태도를 말하는 이야기들은 흥미로웠고 교훈적이었다. 21세기형 인재는 다양한 학문을 배워 응용하는 융합형 인재라고 하는데, 이 책은 융합형 도서였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8가지의 단어 중 특별히 와 닿는 몇 단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첫 강부터 나에게 큰 영감을 안겨준 단어는 바로 ‘자존’이다.
흔히 일상 대화에서 언급되는 '자존심'과 '자존감'은 분명히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다. 자존심의 사전적 정의는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쁘게 말하면 아집을 부리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후회하게 될 결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존심 따위는 개의치 않고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사회생활을 무탈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세우려는 마음은 접어두는 게 지혜로운 태도인 것이 현실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든지 때로는 자존심을 굽히고 물러서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렇다면 자존감은 무엇일까.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이라는 말과 같다. 심리학적 의미는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인 동시에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이는 어떤 기준과 가치로 평가될 수 없으며, 오로지 자신만이 형성하고 판단하는 마음이다. 자존심은 '경쟁 속에서의 긍정'이며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긍정'이라고 한다. 나를 중히 여기고,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의 삶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풍요로울 것이며 어둠보다는 빛에 가까이 있을 것이다. 훌쩍 자라버린 자녀들의 마음속에도 이러한 마음이 견고하게 빚어져있기를 바란다. 어린 시절 이후로는 부모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부딪쳐나가며 지켜가야 하는 것이 자존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스스로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노력하여 얻는 성취감을 경험함으로써 형성해나가길 소망한다.
저자는 자존은 중심점을 안에 찍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임을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의 교육의 문제점을 들었다. 우리나라 교육은 아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에 기준을 두고 끄집어내기보다 기준점을 바깥에 찍는단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자존'을 찾는 일보다는 바깥의 기준점이 되는 명문학교, 높은 연봉의 직장을 따라가기 바쁘고 그 기준에 따라가지 못하면 눈치를 보게 되고, 덩달아 자존까지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부족한 것을 집어넣으려고 애쓰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를 한다.
반면에 미국의 교육은 ‘네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궁금해 하고 뽑아내려고 애쓰며, 가진 것에 대한 칭찬을 강조한다고 한다. 저자가 뉴욕에서 공부할 때, 서른여섯의 직장 생활을 하던 중년 남성이 처음으로 디자인 공부를 하는데 주뼜댈 틈도 없이 교수는 마치 칭찬을 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작품에 대해 좋은 점을 끊임없이 구체적으로 얘기해줬다고 한다. 당연히 학생들은 과제도 즐겁게 했고, 항상 앞자리에 앉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그래서 그렇게도 젊고 재력 있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어린 나이부터 미국에 살게 하고, 미국의 학교를 다니게 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나보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한국의 교육엔 장점도 많을 것이고, 그런 과열된 경쟁 속에서도 자신의 자존감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와 학교의 책임감이 명백히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자라는 아이들, 자라나 사회인이 된 많은 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은 채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외면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현재 사회를 이끌어가는 어른들은 분명히 책임감의 무게를 감지해야한다. 꽃을 피워내지도 못한 채 사라져가는 가여운 봉오리들을 지켜줘야 한다.
그들의 자존감은 견고했을까, 아닐 거라고 추측해본다. 어떤 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컸으나,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많은 벽들에 에워싸여 있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삶의 기로에 자주 놓이는 우리는 ‘Amor Fati’를 기억해야한다.
‘아모르 파티’는 우리말로 하면 '운명애(운명을 사랑하는 마음)'다. 이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운명적인 순간이 연속되는 삶 속에서 어떻게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해 그는 "온몸으로 맞이하고 온몸으로 껴안아라, 긍정의 철학으로 순간을 넘으면 순간이 모여 영원으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답했다. 어쩐지 거창하고 비현실적으로 와 닿지만, 간단하다. "너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 이 한마디면 족하다. 당신이 어떤 위치에 있건, 어떤 운명에 처해있건, 당신의 삶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해왔는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숙연해지는 일종의 일침과 같았다 나에게는, 지속적으로 어떠한 기복도 없이 잔잔한 삶을 영위하길 바라는 것은 철없는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그러한 삶에는 깊이도 없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도 결핍되어 있다. 좋았다가도, 예상치 못하게 나빠지기도 하는 것이 삶의 이치이다. 모든 것들은 우리가 초래한 결과일 수도 있고, 이유 없이 찾아온 불운일 수도 있다. 역경 없이 평온하게 사는 주인공의 드라마는 볼 맛이 안 난다. 단조로운 줄거리의 소설은 책장 넘기는 것이 고역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삶의 주인공이다. 자신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고, 자신의 삶을 사랑으로 껴안을 수 있다면 우리 삶의 결말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또한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너그러운 마음과 따뜻한 시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달 미국의 유명한 배우인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하늘의 별이 되던 날, 세계는 만인의 캡틴이자 진정한 삶을 가치를 연기한 배우 하나를 잃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 두 편을 봤고, 아직까지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학문과 인생을 멋지게 즐기는 법을 가르친 <죽은 시인의 사회>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를 준 <굿윌헌팅>이다. 그의 표정, 대사, 몸짓에는 혼이 담겨있고 매 장면마다 가슴에 와 닿는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Carpe diem, seize the day,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이라는 말을 한다. "현재를 즐겨라, 오늘을 잡아라, 독특한 인생을 살라"라는 뜻이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만의 흥이 넘치는 삶을 추구하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곧 ‘Amor fati’가 갖고 있는 메시지와도 상응한다. 나또한 여생을 당장 내일 떠난다고 해도 후회 없을 만큼 하루하루 보람 있고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갖는다면 아내의 잔소리, 자식들의 투정, 그리고 몇 년 전 가족이 된 작은 고양이의 방울 소리, 털 뭉치 하나마저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삶에 대해 얘기하자니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릴 수가 없다. 저자는 내겐 익숙해진 말을 또 한 가지 언급했다. 바로 ‘Memento mori’, 즉 ‘네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이다. 자꾸 곱씹어 볼수록 그윽한 향이 올라오는 말이다.
"언젠가는 마지막이 올 것을 잊지 말고, 현재를 향유하라" 요지는 죽음이 아니라 삶의 의지를 강조하는 말이다. 반백년이 넘게 살았지만, 죽음이라는 단어는 늘 아득하고 무겁게만 느껴졌었다.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다보면, 결국은 집착하고 원했던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초연해지기 마련이다.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가 가끔은 찾아오질 않는가. 그리고 한편으로는 허망한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동 시대에 존재하는 사람들, 곁에 있는 가족들 모두가 언젠간 영원히 잠들게 된다는 생각에 인간으로써의 유한함과 삶의 고독함에 무릎을 꿇게 되고야 만다.
그만큼 모든 이들에게 죽음이란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기억해야한다. 누구도 비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살아가야만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초연함을 뛰어 넘어 운명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으로 현재를 살아야한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을 계속 걷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지만, 기준점을 내 안에 찍고 자신이 잘하는 점들을 연결해 하나의 별을 만들어내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 내 안의 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찍어야 할 점들도 더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감사하며 내일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다.
저자는 직업 특성상 견문이 넓었던 것이 독창적인 광고를 제작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중반부에서 ‘견’이란 단어에도 무게를 두었다. 앙드레 지드가 말하길, "온 세상이 태어나는 것처럼 일출을 보고, 온 세상이 무너지듯 일몰을 봐라!" 즉, 그냥 보지 말고 깊숙이 느끼고 감동하라는 것이다. 무엇이 됐든 간에. 그런 사람은 더 창의적이고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 크고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수시로 보이던 감수성 깊은 아내와 딸아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들은 운치가 있고, 풍경이 있고, 흥이 있는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거창한 말을 바꾸어 저자는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여행하듯이 생활하고, 생활하듯이 여행해라."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단 3일밖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지나가는 사람들, 지천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더욱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도시에 오래 머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파리가 유난히 아름다운 도시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리고 그 파리에서 명소만 찾지 말고, 동네 카페에서 현지인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벼룩시장도 구경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마냥 생활하듯이 여행하라는 말이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살면, 현재 우리가 속한 세상이 천국이나 다름없다.
‘호학심사’, 즐거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라. 많이 보는 것보다는 깊이 보는 것. 마음을 비우고, 보고 배운 것들을 천천히 소화시키는 것이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사는 데에 기여를 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다소 급한 성격과 ‘빨리 빨리’를 강조하는 사회풍토 탓에 소중한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고 있지 않나 싶다. 피천득 선생이 딸에게 이른 말처럼 "천천히 먹고,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걷는 삶", 그런 삶의 위대한 가치를 많은 청년들이 가슴에 품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깊게 들여다 본 순간들이 모인다면 비로소 '제대로'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로 '토끼풀'로 불리는 클로버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실 지천에 널려있는 게 그 풀이다. 그 풀들 속에서 사람들은 잎이 네 개인 '네잎클로버'를 찾아 헤매지만 결코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네잎클로버의 상징이 바로 '행운'이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보지만, 우리 삶에 행운이 제 발로 찾아오는 일이 극히 드물듯이, 네잎클로버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 바로 그 많은 세잎클로버들의 상징은 '행복'이라고 한다.
발밑에 깔려있는 행복을 두고 행운만을 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우리는 인생에서 행운이 아닌 행복을 추구해야한다. 하지만 행복은 늘 곁에 있다.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 자리를 행복의 공간으로 바꾸고, 사소한 일상에서도 감사하며 행복해하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다. 겨우 두 가지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도 굉장히 철학적인 독후감이 쓰인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이 내 삶의 가치관과 방향에 크고 중요한 울림을 주었다. 자녀의 교육과 삶에 대한 생각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나름대로의 성찰과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될 수록 젊은 나이에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방향과 깊이를 터득하는 데에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모두들 자신의 운명을 껴안고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깊고 즐거이 보내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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