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島라 쓰고 독도로 읽는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
2014년 11월 21일(금) 14:13 |
정부는 어정쩡한 독도 정책으로 일본에게 반격할 빌미를 주고 있다. 국무총리와 외교부장관은 빙빙 말을 돌릴 것이 아니라 국민들 앞에 솔직하게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입도시설을 취소한다고 밝히고 양해를 구함이 마땅하다. “공사 취소가 아니라 보류이며 안전관리, 환경문제, 문화재 경관 등등 추가 검토가 필요해서 취한 조치”라고 변명한다. 그냥 3년을 흘려보내고 추가 검토 운운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며 무능하고 소신이 없는 눈치 보기다.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조하면서 한 해에 25만 명이 찾는 독도에 입도시설 하나 갖추지 못한 채 갑자기 공사 입찰을 취소한 것은 잘못이다. 독도에 건설하기로 한 ‘독도과학기지’와 ‘방파제 공사’마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가늠키 어렵게 됐다. 입도시설 공사는 외교부장관이 강력히 반대하여 취소 됐다고 한다. 입도시설 공사를 할 경우 일본이 분쟁지역으로 삼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이라는 대단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밀어붙인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것은 궁색한 변명으로 박근혜 정부가 갖고 있는 대일외교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용한 외교’는 이미 실패했고 용도 폐기된 외교정책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일 굴욕 외교 이후 역대 정권이 내세운 일관된 기조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4월 25일 “국민 여러분!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동안의 역사가 뚜렷이 새겨진 역사의 땅입니다.”라고 일갈한 바가 있다. 아쉬운 점은 40년 역사가 아니라 1600년(신라 지증왕 13년, 512년 이래) 역사라고 못 박지 못한 것이다.
조선 숙종 때 안용복 선생이 있었다면 6.25 이후엔 홍순칠 대장이 있었다. 안용복 선생은 일본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정받았다. 또 일본 어민들의 도해(渡海)와 어업활동 금지를 확약 받았다. 도쿠가와 막부에서도 1618년에 죽도(울릉도)와 1656년에 송도(독도) 도해면허를 발급했었다. 일본은 이것이 독도가 일본영토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가당착이다. 도해면허는 출국 허가증이다. 오늘날 비자이다. 자기 나라를 가면서 출국 비자를 받는다? 이는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는 근거 가운데 하나다.
일본이 6.25를 틈타 두세 차례 독도 점거를 하자 1953년 4월 20일 6.25 참전을 경험한 홍순칠 대장 등 33명이 모여 순수 민간조직인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여 희생과 피나는 노력으로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켜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독도 동도(東島)에 ‘한국령(韓國領)’을 큰 돌에 새겨 세우기도 했다.
일본은 물론 우리도 잘 모르는 한 가지가 있다. 우리말에서 사투리로 돌을 독이라고 하는 것은 알아도 독도가 신라 때 쓴 이두식 표기인 줄은 모른다. 1882년 조선 정부는 섬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 시키는 쇄한정책을 폐기했다. 1883년부터 독도 이주민을 모집하여 이주시켰다. 이때 이주한 다수가 호남 어민이었다. 호남 사람들은 돌을 독이라 부른다.
독(돌, 石)은 훈(뜻)을 따서 썼고, 도(島)는 음을 따서 ‘독도’라 한 것인데 구한말 이후에 독도(獨島)로 음을 따서 한자표기가 바뀐 것이다. 이런 예가 대전(大田)이다. 이두로 읽으면 大田으로 쓰고 한밭으로 읽어야 맞는데 대전으로 읽는다. 영암 월출산은 본 이름이 ‘달나산(月那山)’이다. 월나산이 아니라 달나산이다. 이를 달리 월출산(月出山)이라 쓰고 읽지만 이두로는 ‘달(月)+나(날, 出)+산(山)’이다. 달나산으로 쓰든 월출산으로 쓰든 이두로는 달나산이다.
독(돌)에 대한 다른 이야기로 모 방송국에서 진도 조도 편을 방송한 적이 있었다. 이때 진행자가 해초를 뜯는 아주머니에게 뜯고 있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독옷’이라고 대답했다. 자막에는 ‘도곳’으로 나왔다. 바위에 붙어 있는 해초이므로 독(돌)옷이라 한 것인데 들리는 대로 ‘도곳’으로 자막 처리를 한 것이다. 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는 학자나 지식인이나 보통사람들이나 차이가 없다.
독도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정부는 떳떳하지 못한 정부다. ‘조용한 외교’는 ‘저자세 외교’ 또는 ‘굴욕 외교’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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