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이 물으먼 여롸서 말 안허요"

영암읍 망호리 이오님씨(92세)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2008년 05월 01일(목) 23:01
“누가 몇살 자셨냐고 물어보먼 나 말 안허요. 여롸서(부끄러워서)… 나이만 묵고 여롭소 여롸”

영암읍 망호리 망호정마을의 이오님(92) 할머니. 할머니는 위로 오빠가 넷이고 자신이 다섯째 막내딸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오님’이란다.

고향이 어디시냐고 묻자 “여가기여 여그”라고 한다. 이 할머니는 망호리가 친정이고 여기서 낳고 자랐다.
망호정댁 이 할머니는 열 아홉살때 금정면 연소리 산골짜기로 시집을 갔다.

“하늘만 뺀헌디로 갔제. 하늘만 뺀혔어. 질도 없는디로 가매타고 갔어” “우리 엄니 아부지 딸 놔두고 감서 우시더라고… 돌아봉께…” “살기는 괜찮혔제”

할아버지는 당시 열 아홉살 동갑내기 최씨 양반. “혼례때 얼굴을 봉께 이삣어 검나 이삣어 산중에서 어찌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제”


농사 열 마지기 짓는 집이었건만 할아버지는 농사도 안짓고 일도 안허고 ‘백구 한량’이었더란다.

“그 양반 일은 안혔는디 용혔어. 이곳 저곳 출입도 많이 허고 이마을 저마을 가서 글 써주고 한 일년썩 살다오곤 했제”

찬찬히 여쭤보니 할아버지는 일정때 고등학교를 나온 지식인 이셨나보다.

“그때 고등핵교 나왔제. 농사일은 못혔어…”

이 할머니는 아들 형제와 딸 셋을 낳았다. 해방 후 쯤 망호리 친정으로 나와 살았다.

“인공때(6.25때) 쫌 앞에 여그(망호리)로 나와서 살았제” “오죽허먼 친정살이 혔것소. 껏보리 서말이먼 처가살이 안헌다고 헌디 오죽허먼 혔겄소”

할아버지는 나이 쉰 둘(52)에 물혹(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친정에 살면서 여기저기 쫓아가 품팔이를 하며 살았다. 아들 형제가 이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딸들 다 출가하고 혼자 사시는 이 할머니. 외롭지만 한편 외롭지않다. 이 할머니의 방이 마을회관이자 사랑방이기 때문이다. 이웃 할머니들이 마실나와 하나 둘 모여들었다.

며느리와 딸들이 가끔 들여다 본다. “어머니 무병하신 것이 지 복이라고 혀” “모다 생각들 혀주고 산께 이러고 살제. 다 허지 말란디 이라고 우두거니 못 앉졌고 깔짝깔짝 일허제. 콩도 숨고 깨도 숨고 밭에서 일혀”
이 할머니는 얼굴 혈색이 좋으시고 나이 못지않게 건강하시다. 젊어서 일을 많이 해서인지 요즘 허리와 다리가 아프신것 말고는.

건강하신 비결을 묻자 특별한 건 없다 하시는 말끝에 “열 다섯살 때부텀 담배를 피웠는디 담배 피워가꼬 어디 아픈디는 없어”라고 하신다.

예? 열 다섯 살에 담배를 피우셨어요? 얼추 계산해보니 1920년대였다. 사연인즉 이랬다.

동네 처녀들이 밤에 한데모여 몰래 담배를 피우며 놀았단다. 그 처녀들 모아오는데 이 할머니가 ‘선발대’ 노릇을 했단다.

“모다 모여서 담뱃닙 몰아 피우고 감잎싹도 몰아 피우고 혔제.”

어느 시대나 불량(?) 청소년들은 있었나 보다.

“빨리 가는 것이 소원이제 뭐것소”

“할머니 그건 3대 거짓말 중에 하나…”

“아녀, 인제 허리 다리가 아퍼서 일하기도 심들어”

이 할머니는 마당 양지바른 곳 쬐끄마한 텃밭에 토란을 심었다고 자랑하신다. “물은 하나님이 주시겄제. 토란 크먼 줄탱께 그때 오소”

“할머니 오래 건강하세요~”
/변중섭 기자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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