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오류'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
2015년 03월 13일(금) 10:55 |
토머스 키다는 경험이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례로 생의 대부분을 눈이 먼 상태로 지내다가 시력을 회복한 사람을 든다. 이 사람은 시력이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물을 손으로 먼저 만져보아야 인식할 수 있다. 과거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사물을 접하면 먼저 손으로 만져본 뒤에야 비로소 이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직선만 보이는 환경에서 자란 고양이가 수평의 사물을 인식하지 못한다거나, 새끼 때 수직선만 보고 자란 고양이를 나중에 보통의 환경 속에 데려다 놓으면 탁자의 평평한 가장자리를 볼 수 없어 탁자 끝에서 떨어진다는 실험결과도 같은 예다.
'후광효과'도 기대가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다. 「스텝스(Steps)」라는 책을 써 소설부문 '내셔널 북 어워드'상을 수상하기도 한 저지 코진스키(Jerzy Kosinski)의 원고를 누군가 베껴서 출판사 14곳과 문학에이전시 13곳에 보냈다. 출판사 가운데는 코진스키의 책을 출간한 랜덤하우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책이 이미 출간된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뿐더러 27곳 모두 원고를 거절했다고 한다. 후광효과를 불러일으킬 코진스키의 이름이 없어 모두 이 원고를 평범한 이류소설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어떻든 토머스 키다에 따르면 우리의 인식은 이처럼 실제와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보고 싶거나 보리라 기대하던 것만을 보며, 이로 인해 때로는 생생한 환각을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지난 대선 때 참패한 야당 내에서 나온 말이었다. 요약하자면 한국사회가 너무 보수적이어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진보세력에 의한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이는 지난 대선 결과를 보며 많은 이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반박하는 보고서를 냈다. 성공회대 김정훈 교수는 '새로운 대중의 출현과 진보의 대응 - 기울어진 운동장은 없다'에서 "문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정치적 리더쉽"이라며, "1990년대 이후 새로운 가치 및 정체성을 가진 대중들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변화 및 대중의 요구를 따라잡지 못하는 정치적 리더쉽으로 인해 진보정치세력의 집권이 좌절되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고통이 개인화하고, 정체성이 다원화된 시대에는 공감의 정치가 필요하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외로워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통과 기쁨을 함께하는 '공감의 정치'는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진보는 대중들의 생활에 공감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생활정치'의 의미를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생활정치는 복지국가와 같은 경제적 진보, 직접 참여의 확대와 같은 정치적 진보, 창조적 삶과 같은 문화적 진보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진보는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경제적 고통없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어하는 새로운 세대들의 생활의 요구에 공감할 때 보수와 진보간의 파국적 균형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민주정책연구원의 지적에 의하면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대선에서 범국민적인 열망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에 실패한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이 아니라 점점 개인화하고 다원화된 새로운 대중을 이끌어갈 리더십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의 오류는 비단 경험에서 오는 기대와 열망 때문에만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냉철한 자기반성의 부재(不在)야말로 생각 뿐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까지 큰 오류로 이어지게 만드는 더욱 큰 원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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