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법관 김홍섭 선생 50주기 추모행사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5년 03월 20일(금) 10:24
낭산 김준연 선생 셋째사위…법조계 업적 기려
낭산 김준연 선생의 셋째사위인 사도법관 김홍섭(1915~1965) 선생 50주기 추모행사가 지난 3월16일 서울 법원종합청사 1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과 검찰의 양심으로 불린 화강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 등과 함께 법조의 초석을 마련한 '법조 3성(聖)'으로 꼽히는 인물인 김홍섭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이날 행사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해 심상철 서울고등법원장,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미망인 김자선 여사와 차남 김계춘 서울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날 추모행사에서는 김홍섭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어느 법관의 삶-사도가 된 법관 김홍섭'을 상영했으며, 최종고 서울대 명예교수의 '우리 시대의 사도법관 김홍섭과 한국사회'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는 재판을 행하는 법관의 인품과 도덕성에 대한 믿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며, "김홍섭 선생의 거룩한 삶의 태도와 자세를 통해 사법부 모두가 법관으로서 절제와 윤리의식을 가슴깊이 새겨야한다"고 강조했다.
김홍섭 선생은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출신으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전주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독학으로 법률공부를 시작, 1939년 일본 니혼대학에 입학해 2년 만에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귀국해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을 도와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 광복이 되자 서울지검 검사로 임용되어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담당하는 등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그해 9월 검사직에 대한 회의를 느껴 사임하고 한강 뚝섬에서 농사를 지었다.
대법원장이었던 김병로 선생의 간청으로 법조계에 다시 복귀해 서울지방법원판사, 고등법원판사, 지방법원장, 대법원판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953년 9월 가족과 함께 천주교에 입교했다.
세례명이 '바오로'인 그는 언제나 겸허한 자세로 인간의 기본적 인권과 양심을 중시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인권과 양심에 맞춰 판결을 내린 거승로 유명하다. 또 장인인 낭산 김준연 선생으로부터 물려받은 양복저고리를 입고 옆구리에 사건기록과 단무지 도시락을 든 채 매일 집에서 법원까지 걸어 다닐 정도로 청렴한 삶을 살았다. 또 수많은 사형수를 찾아다니며 절망을 어루만져 '수인(囚人)의 아버지', '법의(法衣) 속에 성의(聖衣)를 입은 사람', '사도법관(使徒法官)'등의 칭호를 얻기도 했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이 기사는 영암군민신문 홈페이지(yanews.net)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yanews.net/article.php?aid=1479791479
프린트 시간 : 2024년 10월 19일 19:2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