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 토벌할 적 임꺽정이 싸운 성, 영암읍성

조영욱 시인 사람희망신문 논설위원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5년 05월 15일(금) 10:54
영암읍성은 역사가 오랜 고려 말에 쌓은 성으로 둘레가 2100m로 읍성 가운데 가장 크다. 낙안읍성은 둘레가 1,410m로 민속촌이 있는 읍성이다. 해미읍성은 천주교 박해 당시 3,000여명이 순교한 천주교 성지로 둘레가 1,800m이다. 고창읍성은 모양성이라고도 하고, 윤달이면 답성놀이(성 밟기)를 한다.
홍명희 <임꺽정>은 영암읍성을 이렇게 묘사했다. "영암군은 소읍이 아니요, 요해처이므로 성이 토성이 아니고 당당한 석축이다. 장흥부의 장녕성은 주(둘레)가 천척 안에 드는 작은 성이이니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좌정하고 있는 곳인 병영성이 삼천척이 못되고, 광나주목사라고 광주와 아울러 치는 목사 치하의 나주성이 삼천척에 얼마 넘지 못하는데, 영암성은 주가 사천삼백육십구척이고, 전라도내에서 대성으로 제일 제이를 치는 광주성과 전주성이 고(높이)가 모두 팔척에 지나지 못하는데 영암성은 고가 십오척이다“
기록에 따라 높이가 12척이나 15척이다. 이는 둘 다 옳다.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여장 또는 치첩이라 하는데 이 높이가 3척이므로 빼면 12척이고 더하면 15척이다. 영암읍성은 외벽은 돌, 내벽은 흙으로 쌓은 내탁식(內托式) 성이다. 처음에는 성 안에 샘이 2개였으나, 나중에 4개로 늘어났다.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인 '장독샘'이 있었다.
장독샘은 도포면 봉호정 출신인 양달사(梁達四) 장군 유적지다. 양 장군은 해남현감을 지내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1555년(중종 10년) 봉호정에 돌아와 시묘살이를 하고 있었다. 이해 을묘년 5월 왜선 60척이 쳐들어와 영암 달량진(해남 남창)을 점령했다. 전라도병사 원적, 영암군수 이덕견, 장흥부사 한온이 달양성을 지키다 원적은 죽고, 이덕견은 항복했다. 양 장군은 상중이었으나 형 달수, 동생 달해, 달초와 함께 의병을 모집해 왜구와 3일 간 싸워 읍성을 지켜냈다. 이때 양 장군이 호령하며 군령기를 꽂은 곳에 샘이 생겼다. 이를 '장독샘'이라 부른다. 서남리 삼거리에 있었다.
'장독샘'은 본디 '장둑샘'이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지명이 서울 '뚝섬'이다. 뚝섬은 치우천황을 모시는 사당 둑신사가 있어 '둑섬'이라고 불렀다. '둑(纛)'은 군영을 대표하는 대장기로서 치우천황을 상징하는 깃발인 '둑(纛)'을 일컫는다. 둑을 독으로 발음하기도 하므로 둑샘이나 독샘이나 같지만 본 뜻을 담으려면 '둑샘'이 더 어울린다.
조정에서는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김경석과 남치근을 좌우방어사로, 이준경(이윤경의 아우)을 도순사로, 전주부윤 이윤경을 가수성장으로 삼았다. 이윤경은 양달사 장군과 함께 읍성을 사수해내어 이후 전라감사와 병조판서를 지냈다.
남치근이 성 밖에서 왜구에게 포위되자 "이윤경과 김경석이 구원을 나왔으나 왜에게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북문 밖에서 둔전을 끼고 진을 쳤다.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거의 낙심이 되었을 때, 왜들의 에워싼 것이 한구석이 갑자기 헐리기 시작하였다. 오육십 명 사람이 일시에 헐리는 구석을 바라보니 그곳에 이수성장 김 방어사의 군마는 나타나지 아니하고 몸에 갑주를 갖추 지 아니한 말 탄 군관 한 사람이 왜진을 젖혀 들어오는데, 그 군관 수중에 있는 칼이 번개같이 놀아서 왜들이 그 앞에 수가 없이 쓰러졌다"고 <임꺽정>에서 임꺽정의 영암읍성 활약상을 묘사했다.
영암읍성 동문은 시장입구에, 서문은 옛 영암중학교 터에, 남문은 영암경찰서 부근, 북문은 역리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1830년대 영암군지에는 동서남 3문만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샘 4개 외에도 연지(蓮池), 덕곡지(德谷池), 적후지(赤後池) 등 연못이 3개나 있었다. 영암읍성은 해자가 있는 성이다. 교동리 KT 부근에 석축이 일부만 남아 있지만 동무리~서남리~교동리에 이르는 성터가 확인 되어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영암읍성은 반드시 복원 보전되어야 한다. 왜구를 물리친 역사 현장으로써 뿐만 아니라 관광자원으로도 뒤지지 않는다. 낙안읍성과 해미읍성, 고창읍성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손색이 없는 남도 제일 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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