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양반 자상혔어그심 믿고 살았제 "

군서면 남송정 박 점 례씨(92세)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2008년 05월 15일(목) 20:14
“아들 하나 갖는 것이 소원이여”
예? 설마 지금 아들 낳고 싶다는 말은 아닐 터…. 올해 아흔 두살 드신 할머니의 평생 소원은 아들 하나 갖는 것이었다. 아들 하나 못 낳은 것이 평생 한(恨)이 됐으리라.

군서면 남송정마을 박점례 할머니는 열 여덟에 시집와서 딸 하나 겨우 낳았다.
월산리 월곡마을이 친정인 월산댁 박 할머니. 남송정 창녕조씨 집안, 옛날에 떵떵 거리던 부잣집으로 시집왔다.

“시집올때? 할아버지 얼굴? 여롸서 쳐다보도 못혔제” “그 양반 자상허고 잘해주셨어. 그 심(힘) 믿고 살았제” “딴 양반 같으먼 아들 볼란다고 바람도 피었겄제만 그 양반은 바람도 안피고, 바깥으로 먼소리 안나가게 했제”

“시아부지가 나를 겁나 안쓰럽게 생각허고 잘해주셨어. 시집살이는 안혔어”


네살 더 많이 잡수신 할아버지는 십 수년전 돌아가셨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할아버지 함자는 조희일. 군서 사거리에서 가게집을 하셨고 광천여객 버스표도 팔았다. 이쯤 말하면 지역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단다.

연세에 비해 무척 건강하시고 깔끔하신 박 할머니. 자활센터에서 봉사자로 나온 아주머니가 한 말 보탠다. “나 어렸을 적에 아짐을 보고 컸는디, 정말 이쁘고 고우셨지라. 사람들이 ‘가게집 꽃띠 아짐’이라고 불렀어라”

시집 온지 얼마 안돼 할아버지는 공부하러 일본으로 떠나셨다. 그때 할머니는 “여롸서 따라갈란다고 말도 못허고” 냉가슴만 앓았다고 한다. 1년 뒤 할머니는 시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할아버지랑 6년간 살다 함께 돌아왔다.

“그때 딸 하나 낳았제… 일본서 나서 데리고 왔어” “일본 간지 2년쯤 지나 시아버지가 돌아가자고 헌디 안오고 잡데 안오고 자퍼” “안 갈란다고 했더니 시아버지가 외면해 불드만… 내가 미웠는지…”


할아버지는 공부를 마치고 일본 동경에서 구두 공장을 경영하셨고 돈을 많이 버셨단다. 고향에 돌아와 논도 사고, 밭도 사고, 말 일곱 필을 사셨단다.

젊었을 적 친구들 하나 둘 다 떠나고 적적한 건 어쩔수 없다. “날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는 순서가 없는 거라 다 떠나 불고…”

이웃한 조씨 일가붙이 왕래하며 적적함 달랜다. 또 목포 사는 딸 조익자(67)씨와 질부, 외손자들이 자주 찾아오니 손자들 보는 재미로 산다. “손주들이 뼈도 사다 고와주고 잘혀” “손주가 나 먹으라고 수박, 참외, 우유 꽉꽉 사다 냉장고에 쟁여”

할머니 심심풀이는 “테레비!”다.

“테레비가 영감보다는 나서(더 좋아) 저거보고 혼자 헤헤헤 웃기도 혀”
그토록 건강하신 비결은요? “소 잡아 묵고 커서”란다.
“? ? ?”

돌아서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소는 우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고, 검소하고, 순박하고, 여유롭고, 낙천적인 것을….

“할머니, 오래 건강하세요~”
/변중섭 기자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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