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의 저급성과 해명의 진정성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
2015년 07월 03일(금) 12:55 |
궁극적으로 드는 질문은 이거다. 신경숙 작가는 왜 우리를 그렇게 쉽게 생각했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왜 독자와 평단과 시장과 국민을 그렇게 얕잡아 봤을까? 대체 우리를 뭘로 보았더란 말이냐? "억울하다, 믿어 달라"고 지침을 내리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했더란 말인가? 우리를 그처럼 얕잡아 보았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기분 상한다. 그녀는 우리를 꽤 어리석은 자기 팬들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녀가 참 어리석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기시감이랄까, 신경숙 소설가의 해명들을 보면서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어쩜 이리 닮았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세월호 참극과 이번 메르스 파동 과정에서 보여준 박대통령의 입장과 언행과 대응과 대처는 '무개념'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청와대와 시정 사이의 거리감이 이처럼 아득했던 건 이승만 대통령의 경무대 시절 이래의 초유의 일인 듯하다. 개인적으로 대통령제를 지지하지 않는 편이지만,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지휘력과 설명력과 수습력은 이 나라가 어떤 점에서 대통령 중심제인지를 의심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대통령 중심은커녕 대통령은 국정의 어디에도 부재한 가운데 미루고, 모면하고, 전가하는 모습으로만 국민의 눈에 비쳐졌다. 그래서 지금 국민은 외롭고 허무한 것이다.
문재인 대표, 참 안타깝고 참 대단한 분이다. 지금 당이 뒤숭숭한 건 지난 4·29 재보선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다. 참담한 결과의 4월29일 밤부터 그 이튿날 오전까지 가까운 동료 의원들과 삼삼오오 의견을 나누었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문 대표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은 없었다! 바로 엊그제(두 달 전) 전당대회를 열어 당 대표로 뽑았는데 벌써 불신임을 얘기할 순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전원일치된 의견들이었다. 갈등의 화염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문 대표 그 자신이었다. 그 자신이 화를 키웠다. 만약 문 대표가 '책임을 통감한다, 대표직을 내려놓는다, 재신임 여부를 여러분에게 맡기겠다'고 했더라면 지금 당은 문 대표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일치단결해있을 것이다.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문 대표는 참패 다음날(4월30일) 스스로 자청한 기자회견을 통해 "참으로 송구스럽다, 그렇지만 절체절명의 각오로 다시 시작하겠다, 이 시련을 약으로 삼겠다, 박근혜 정권에게 경고한다, 이번 선거 결과에 굴하지 않고 더욱 단호하게 싸울 것이다"라고 전격 선언을 했다. 사퇴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는 사전 지침(청와대가 가끔 사용하는 가이드라인 제시와 비슷한…)이랄 수 밖에 없었다. 대단한 기싸움 걸기였다.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이럴 순 없는 거다…"는 생각과 생각들이 이심전심으로 급속히 전파돼갔다. 여기저기서 문 대표에 대한 비판과 성토 그리고 책임추궁이 이어졌다.
그러자 문 대표는 5월13일 비공개 성명, 미필적 고의(?)에 의한 발표 성명을 통해 아연실색했던 비판자들을 또 한 번 경악하게 한다. 비판자들의 공세를 내년 총선 공천 지분 싸움과 구태정치와 역패권주의로 규정하며 일거에 도덕적 처단을 내려버리는 거였다. 당에 돌이키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내고 말았다. 굴욕적이었다.
그러면서 여론의 역풍에 흔들리던 문 대표가 내놓은 카드가 지금의 김상곤·조국 표 혁신위원회다. 느닷없는 방향 전환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지금 문재인 대표와 그 주변 분들의 인식은 4·29 재보궐선거 등에서의 연전연패와 유례없는 완패, 참패의 원인이 진보 과잉, 투쟁 과잉, 선명 과잉, 패권 과잉에 있지 않고, 야당성 부족한 비노들의 발목잡기에 있다는 위험한 착각과 거대한 오진에 기반하고 있다. 집단 지성의 역설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외롭고 허무하고 허탈한 것이다.
신경숙 작가와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표는 독자와 평단과 시장과 유권자와 국민과 당원을 과소평가하고 그저 아전인수한다는 점에서 별반 다를 게 없다. 왜 그리도 자기 책임감을 못 느끼는 것일까. 왜 진실하지 못할까. 왜 솔직하지 못할까. 왜 책임을 전가하려 하는가. 문학이건 정치건 그저 기교나 기예의 수준일 순 없다고 믿는다. 가장 강한 힘은 여전히 진실이라고 믿는다.
지금 국면이 모면되고 위기가 수습되기는커녕 축적되고 증폭된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신뢰의 틈바구니에서 불신의 거대한 싱크홀이 생기고 있는 것을 이다지도 모르더란 말인가. 아니면 짐짓 외면하는 것인가. 자신의 인기와 힘과 위세로 거뜬히 진압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보기엔, 오히려 조금씩 조금씩 화를 키워가고 있는 것 같은데…그렇게해서 거덜나는 것이 한국 문학과 대한민국과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가. 아아, 지도자들은 벌써 절망을 주는 몸이 되었다.(2015년6월23일)
정당공천제는 지방발전의 족쇄>
지금은 지방화의 시대이자 세계화의 시대다. 거스를 수 없는 거대 추세다. 국내적으로는 지방의 자치 확장이, 국제적으로는 글로벌 표준 아래 국경과 주권이 약화되는 세계 ‘단일국가’가 큰 흐름인 거다. 그리고 정당공천제 폐지는 이 지방화의 추세에 부응하는 제일 과제다.
한국의 지방화가 성공하려면 두 개의 ‘중앙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필수적이다. 중앙정부와 중앙당이 그것이다. 한국의 중앙정부는 규제의 암 덩어리다. 중앙청의 규제를 풀어야 지방이 숨 쉴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중앙당이 지방정치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한다. 한국의 중앙당은 애물단지다. 미국 같은 정치 선진국에는 없는 중앙당의 존재 때문에 한국정치가 매양 요모양인 것이다. 박대통령과 유승민대표의 살얼음 대치, 새정치연합 친노·비노의 갈등은 결국 중앙정치 과잉의 산물이다.
두 개의 중앙권력, 즉 중앙정부와 중앙정당으로부터의 분권과 독립은 이 나라 (지방)발전의 대전제다. 지방이 살고,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글로벌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현행 정당공천제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돈과 시간과 충성심의 왜곡 문제다. 첫째, 돈의 문제다. 공천을 받기 위해 발생되는 불필요하고 불투명한 비용의 문제다. 당 행사와 당 조직 관리 및 당에 내야 할 돈도 적지 않다. 둘째, 시간의 문제다. 시장ㆍ군수ㆍ구청장, 시의원ㆍ군의원ㆍ구의원들의 공적 시간이 지자체 본연의 일이 아닌 당과 공천권자들의 일에 사용되고 있다. 세 번째, 충성심의 문제다. 지역 주민들에게 모두 바쳐져야 하는 충성심이 사실상 그 당과 공천권자들에게 바쳐지고 있다. 가장 큰 폐악이다.
돈과 시간과 충성심이 바른 방향으로 선순환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대한민국 최우선 국책 과제라고 단언한다. 긴 말 필요 없다. 정당공천제는 지방자치발전을 위해, 나라의 정상 성장을 위해 백해무익하다. 벌써 오래 전에 폐기처분 되었어야 했다.
지난해 필자는 정당설립 요건을 완화하는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방 정당의 다양한 설립을 통해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발의 취지였다. 중앙정치 예속화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지방이 살아야 중앙이 산다. 그 역(逆)이 아니다. 정말이다. 중앙은 있는 둥 마는 둥하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가 살아있는 증거다.<2015년7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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