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대흥사 주지 취임하는 월우 스님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
2015년 07월 16일(목) 19:54 |
월우 스님 : 홀쭉해졌다고들 합디다. 살이 찌면 수행하거나 참선하는데 방해가 돼요. 잠이 오고 게을러지거든요.
문 대표 : 그동안 4년 가까이 선방에서 정진하신 소식은 들었습니다. 오대산을 비롯해 여러 곳을 옮겨 다니셨을 텐데 깨달음을 얻으셨는지요?
월우 스님 : 오늘 이렇게 문 사장을 다시 만난 것이 바로 깨달음 아니겠어요?
문 대표 : 지금 스님 모습을 뵈니 처음 도갑사 주지로 부임하셨을 때가 생각납니다. 섬 아이들을 위한 숲속학교를 운영하시겠다며 정말 열정적으로 뛰셨지요?
월우 스님 : 대흥사에 있을 때 몇 번 해보려했는데 잘 안됩디다. 도갑사 주지가 되자마자 단단히 맘먹고 시작한 일이었지요.
문 대표 : 섬 학교를 찾아가 부탁하고, 학부모들을 직접 만나 대화도 하고 설득하셨다지요?
월우 스님 : 정말 힘들었어요. 서울 등지에서 낙도아이들을 초청한답시고 불러놓고 엉뚱한 목적에 이용한 사람들 때문에 아이들 가슴은 멍들고, 학교나 교육당국은 말도 꺼내지 말라며 손사래 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래 저는 대안을 갖고 갔어요. 명심보감을 통해 한자 300자 이상을 가르치겠다. 사찰이지만 꼭 불교식이 아니다. 섬에서만 산 아이들에게 산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이런 내용으로 직접 교사와 학부모들을 ‘맨투맨’으로 만나 설명하고, 목포교육청까지 찾아가 설득했어요. 영암아이들도 100여명씩 모아서 똑 같이 명심보감도 가르치고 氣찬랜드도 가고, 야간에 담력도 키워주고 했지요.
문 대표 : 오늘날 도갑사 템플스테이가 만들어진 계기 아닙니까?
월우 스님 : 그렇지요. 서울에서 유명 레크레이션 강사들을 많이 초청해올 정도로 많은 정성을 들였어요. 너무 호응이 좋아 보람도 컸지요.
문 대표 : 도선국사 문화예술제도 스님이 만드신 행사지요?
월우 스님 : 도선국사는 우리 국토를 정말 사랑하신 분이예요. 이른바 비보(裨補)사상을 몸소 실천한 분이지요. 비보는 ‘도와서 모자람을 채움’이라는 뜻이지요. 땅에 좋고 나쁨이 있겠어요? 국사께서는 아무리 나쁜 땅이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생각을 바꾸면 그 땅은 좋은 땅이 되고, 반대로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긍정적이고 옳지 못한 생각을 갖는다면 좋지 않은 땅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또 국사께서는 사찰 건립을 남발하지 말라 하셨어요. 사찰이 많이 지어지면 백성들이 가난해지기 때문이지요. 대신 한쪽의 기운이 약해지면 탑을 세우고 마음을 넉넉하게 하라고 가르쳤어요. 도선국사 문화예술제를 개최한 뜻은 바로 이런 도선국사의 가르침을 지금 다시 되새겨보자는 취지였어요.
문 대표 : 도선국사 문화예술제에 초청된 명사들도 쟁쟁했지요?
월우 스님 : 이 나라의 최고의 철학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도올 김용옥 선생, 시인 김지하 선생, 소설가이자 「태백산맥」의 저자인 조정래 선생 등등. 이들의 수준 높은 강연을 통해 영암군민들이 많은 마음의 양식을 얻었으리라 생각해요. 깊어가는 가을밤 웅장한 대웅보전을 배경으로 펼쳐진 음악회도 도선국사 문화예술제의 잊지 못 할 하이라이트지요.
문 대표 : 저도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보현거사회도 스님께서 만드셨지요?
월우 스님 : 보현이란 ‘넓게 행하라’는 뜻입니다. 보현보살은 ‘석가여래를 오른편에서 모시고 있는,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아보는 보살’을 말하지요. 보현거사회는 곧 문수의 지혜와 보현의 행원을 바탕으로 한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는 단체입니다. 창립과 함께 지역의 포교 활동과 청소년 선도활동, 불우이웃돕기, 장학사업 등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문 대표 : 보현거사회를 만드신 또 다른 배경도 있지요?
월우 스님 : 그 얘기는 회원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일인데…. 도갑사 주지로 부임해서 연등축제를 개최하려다 보니 부족한 것이 한둘이 아니더군요. 코끼리, 용, 탑, 토끼, 물고기 등 형형색색 화려한 장엄등과 정성으로 만든 1천여개의 작은 등불이 함께 행진해야 하는데 동네에는 전부 노인들뿐인 거야. 특히 무거운 장엄등을 들고 행진할 사람이 없어요. 사실은 그래서 보현거사회 조직을 서둘렀어요. 초창기 보현거사회를 이끈 임형철 회장님이나 이종곤 회장님 정말 고생 많으셨지요.
문 대표 :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열린 연등축제는 영암군민들이 평생 처음 보는 장관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월우 스님 : 연등축제는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문화의 향연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축제이자, 사회적인 고통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자비의 축제지요. 소통과 나눔을 함께 하고자 만든 행사이기도 합니다. 대도시에서 열리는 연등축제를 보세요. 장엄하지요. 이런 축제를 영암에서도 개최하기 위해 코끼리, 호랑이, 사슴, 물고기 등을 서울 등지에서 가져왔어요. 영암군민들이 처음 접하는 장엄하고 화려한 축제를 만든 것이지요. 축제 때 이 대형등을 우리 보현거사회와 불교대학생, 영암청년회와 군서청년회 회원들이 함께 들고 행진했어요. 생각해보면 모두가 눈물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문 대표 : 불교대학 만드신 얘기도 해주십시오.
월우 스님 : 불교대학은 요즘 말하는 그냥 대학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special) 대학이지요. 불교를 떠나 지역사회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려는 학교이기 때문이지요. 내가 바뀌어야 타인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자기로부터 벗어나야 비로소 타인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불교대학은 부처님 가르침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명사초청 강의와 봉사활동을 통해 배움과 깨달음을 얻고 이를 통해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배려하며, 화합과 소통하자는 뜻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불교대학 운영으로 도량의 자체역량이 강화되어 매년 도갑사를 찾는 사부대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큰 효과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제 후임인 도갑사 주지 설도 스님이 불교대학을 잘 이끌고 있다는 소식 듣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젊은 스님이 도갑사를 훌륭하게 이끌 수 있도록 많은 성원 바랍니다.
문 대표 : 불교대학생들에게 특히 스님 강의는 유난히 유머가 넘쳐났다지요? 서울에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호텔얘기는 뭔가요?
월우 스님 : 서울에 메리어트호텔이라고 있는데, 특히 강남의 버스터미널 인근이라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호텔로 소문났다고 합니다. 맞선도 보고, 상견례도 하고, 숙박도 하고. 그런데 하루는 전라도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맞선을 위해 메리어트호텔을 방문할 일이 생겼답니다. ‘메리어트호텔’을 잊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머릿속에 되뇌며 상경한 할아버지는 호텔로 가기위해 택시를 탔는데, 아뿔싸! 도무지 호텔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겁니다. 고민 끝에 호텔이름이 ‘메리야쓰’와 비슷했다는 생각이 떠오른 할아버지는 운전기사에게 “난닝구 호텔로 갑시다”고 한 거예요. 그러자 운전기사는 “네! 알겠습니다.”고 말하더니 할아버지를 ‘메리어트호텔’에 내려주더랍니다. 뒤늦게 호텔이름이 ‘난닝구’가 아니라 ‘메리어트’임을 깨달은 할아버지가 하도 신통해 “아니! 어떻게 난닝구를 메리어트로 알아들었느냐”고 묻자 운전기사는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할아버지는 약과예요. 저는 오늘 ‘전설의 고향’에도 갔다 왔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전설의 고향’이 어딘 줄 아세요? 바로 ‘예술의 전당’입니다. 하하하. 제가 이 유머를 말한 까닭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뜻에서였습니다. 여유를 갖고 사는 것이 중요해요.
문 대표 : 도갑사 주지를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건국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으셨지요? 그때 저도 축하해드리기 위해 상경했습니다만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셨더군요.
월우 스님 : 뭐 대단할 것까지야 있겠어요. 행정학은 조직, 재정, 문화 등 모든 부문에 기본이 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학문인 것 같아 공부했을 뿐입니다.
문 대표 : 그 때도 스님의 근황을 들어보려 했습니다만 뿌리치셨지요?
월우 스님 : 허허! 원망이 많이 쌓인 것 같네요. 이제 대흥사 주지로 부임하게 됐으나 밥도 ‘주지’, 재워 ‘주지’, 다 해줄게요. 참, 그날 문 대표뿐만 아니라 여러 불자들과 군민들, 향우들이 함께 오셨지요. 학위수여식이 끝난 뒤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50여명이 넘는 분들과 점심을 같이했는데, 김방진 회장님께서는 점심값을 내주셨어요. 도갑사 신도들과 향우회원 등 모든 분들께 정말 고마운 마음 한량없습니다.
문 대표 : 그날 점심 드시면서 하셨던 말씀 지금도 생생하네요.
월우 스님 : 여러분들은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시고, 나는 저 한강 물줄기의 시원지를 따라 오대산의 선방으로 ‘참 나’를 찾기 위해 떠나겠다고 했지요. 여러 신도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만 그런 인연으로 이렇게 다시 만나는 것 같습니다.
문 대표 : 스님과 나눌 얘기가 많습니다만 대웅전 복원불사는 빼놓을 수가 없지요. 에피소드가 많았다면서요?
월우 스님 : 말도마세요. 그 얘기하려면 길어져요. 잘 아시다시피 도갑사는 880년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지요. 조선 초기인 1456년에는 전각과 요사채가 966칸에 이르는 대가람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정유재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됐고, 1977년에는 참배객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해 대웅보전마저 전소됐었습니다. 제가 도갑사 주지로 부임해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치르고 둘러보니 도량정비가 너무 안 되어 있었고, 특히 대웅전을 그대로 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해탈문이 국보(제50호)여서 그 500m 내에서는 신축 등이 불가능한 일이기는 했지만 일단 유구 조사부터 해 보아야겠다 싶어 목포대 박물관 이영무 교수님께 대웅전 일대 땅을 파보자고 했어요. 발굴조사를 해보자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학생들과 함께 땅을 파다보니 계단석이 나와요. 그 길로 당시 김철호 군수님께 대웅전을 새로 짓자고 했어요. 깜짝 놀라더군요.
문 대표 :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면서요?
월우 스님 : 그랬지요. 도갑사에 새로운 역사가 써지는 일이 벌어져요. 도갑사에는 예부터 ‘부연(婦椽)’이라는 불교설화가 전하는 곳으로도 유명해요. 도갑사 대웅보전을 신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건립하라는 왕명을 받은 대목(大木)이 이를 필생의 작업으로 삼아 온 정성을 다해 나무를 깎고 다듬었답니다. 젊은 목수들의 도움도 마다하고 직접 500개의 서까래를 다 깎은 대목은 이를 낱낱이 자로 재던 중 깊은 시름에 빠졌다고 해요. 재고 또 재보았으나 깎은 서까래가 도면보다 짧게 끊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망한 노인은 자리에 눕고 말았는데, 이를 지켜본 며느리가 하는 말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답니다. “짧은 서까래에 다른 서까래를 겹치면 더 웅장하고 튼튼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며느리의 지혜로 세워진 도갑사 대웅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부연식(附延式) 지붕 건물이 되었고, 부연된 서까래는 며느리가 도와서 선 서까래라는 뜻으로 부연(婦延)이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주지로 부임해 대웅전을 복원하기로 하고 우여곡절 끝에 1층 허가는 떨어졌는데, 영남대학교 교수 한분이 이런 얘기를 해요. 고려시대 때 ‘중층’으로 된 법당도 있었다고 말입니다. 부연식 지붕인 대웅보전은 중층이 더 어울리겠다 싶었고, 따라서 이왕이면 중층으로 복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지요.
문 대표 : 문화재위원들이 쉽게 받아 들였을 리는 만무했겠군요?
월우 스님 : 그럼요. 난리가 났어요. 이왕 다시 짓기로 했으니 2층으로 가야 한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고 우겼지요. 김철호 군수님은 한 층도 어려운데 한 층을 더 올리자는 것이냐며 호탕하게 웃으셨어요. 하지만 정반대로 이때까지 15차례 넘게 열린 회의에 참석한 문화재위원들은 그야말로 결사반대였어요. 옛것이 제대로 보존된 것이 하나 없다면서 말도 못 꺼내게 해요. 이 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가 현재 군청 기획감사실장을 맡고 있는 박태홍 문화관광과장이었어요. 문화재위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면서 고성을 높이고 나선 것이지요. 그래도 별 소용없더군요. 이번에는 제가 하도 화가 나서 중층 복원이 아니면 다 때려치우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 때 박 과장이 “스님! 밖에 손님 오셨습니다.”라고 말하며 따라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니! 스님, 그런다고 그렇게 화를 내시면 어떻게 합니까? 중층으로 복원을 하시자는 거예요 말자는 거예요”이러는 겁니다. 정작 자기는 문화재위원들에게 화를 내놓고 나더러는 화내지 말라는 겁니다. 박 과장은 더 나아가 자기가 들어가 회의를 계속할 테니 저한테는 “나가계시라”며 바지가랑이를 붙잡더군요. 한참 실랑이 끝에 걱정 말고 함께 들어가자고 해 회의가 계속됐고, 간신히 중층 복원을 검토하기로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이로써 역사적인 도량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문 대표 : 도갑사 대웅보전이 지금의 웅장한 모습으로 복원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군요.
월우 스님 : 그럼요. 공교롭게도 모두 고인이 되신 김철호 군수님과 김일태 군수님의 공로가 컸어요. 김철호 군수님은 문화재위원회에서 한바탕 난리가 난 다음날 제게 이러더군요. “스님! 어제 난리가 났다면서요?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 공무원들을 자주 무시한단 말입니다. 잘하셨습니다.” 특히 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열심히 일하신 김일태 군수님, 4년 동안 문화관광과장을 맡아 대역사를 함께 이뤄주신 이정훈 과장님의 행정지원과 도움을 잊을 수가 없지요. 이정훈 과장님은 현재 군청 내 여성공무원이 가장 많은 여성가족과 과장을 맡고 있다지요. 아마 대웅전 복원불사에 기여한 공이 많아 그 복으로 지금 꽃밭에서 근무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을 겁니다. 하하하. 또 40년 동안 영암군 도갑사 신도회 회장을 맡아 애써주신 하대주 회장님, 법당을 아름답게 꾸미는데 협찬해주신 영암군 홍보대사인 재일교포 하정웅 선생님과 이종대 향우회장님, 영암군청 공무원 여러분, 그리고 영암군민 여러분께도 지면을 빌어 따뜻한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문 대표 :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님도 각별하셨지요?
월우 스님 : 인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해요. 도갑사 주지로 부임해 있는데 미륵전을 찾아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 때는 도지사 신분이 아니었어요. 저와 마주친 박 지사님은 “어디서 많이 뵌 것 같습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1998년 일을 대흥사의 성보를 찾았을 때 협조해준 일을 말씀드렸지요. 당시 서초경찰서의 도움을 받아 대흥사의 성보를 찾게 되어 그 답례로 특진을 하도록 해야겠는데 요건이 안 된다는 거예요. 총무원장 스님과 당시 대흥사 주지스님이셨고 현재 대흥사 회주이신 보선 스님 등과 함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박 지사님을 찾아갔지요. 바로 대통령께 건의하셔서 성사시켜주더군요. 그런 인연으로 대웅전 중층복원도 말씀드렸더니 바로 검토하자고 하셨고, 영암군이 앞장서서 대 역사가 시작된 것이지요.
문 대표 : 얘기를 나누다보니 광주에 다 와가는 것 같습니다. 목포시를 비롯한 7개 시군을 관장하는 대흥사 주지로 부임하시게 되어 감회가 깊으실 텐데요. 비록 영암을 떠나시기는 했지만 지금도 스님을 ‘영암사람’으로 알고 있는 군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월우 스님 : 뭔 소리요, 실제로 난 영암사람이야. 퇴거를 안했어. 잘 아시다시피 영암은 향교정신이 살아있고, 유생문화가 넘쳐나며, 온순하고 평온한 고장이지요. 바다 가깝고, 산세 좋고, 물 좋은 고장이지요. 그러나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고 선거 때문에 편이 갈라져 정신까지 황폐해져가고 있어 걱정입니다. 다행히 새로 당선된 전동평 군수가 화합을 기치로 내걸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 듣고 있어요. 전동평 군수와도 인연이 있어요. 제 속가의 친척이 도갑사 주지로 부임했다는 말을 듣고 연락이 왔어요. 전국 최연소 도의원에 당선된 전 군수가 영암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축하해주기도 했지요. 농민운동도 했고, 제가 직접 방문하기도 했습니다만 삼호 알파중공업의 성공한 CEO출신 군수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메르켈 독일총리가 남북관계 얘기를 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통일을 위해 남쪽에서는 북쪽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지역도 똑같습니다. 서로 인정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늘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전동평 군수가 특히 해야 할 일은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을 찾으시고 중용하셔서 옛날처럼 흥이 나는 고장을 만들어가기 바랍니다.
문 대표 : 스님, 이제 헤어져야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재밌는 유머 하나 더 들려주시죠?
월우 스님 : 어허 참! 12간지(干支)에 왜 고양이 띠가 없는 줄 아세요? 옛날 옛적에 산신령께서 쥐에게 심부름을 시켰답니다. 온갖 동물들에게 7월 보름날 월출산 구정봉에 오는 순서대로 띠를 정해주겠다고 말이죠. 이에 쥐는 동물들에게 이를 일일이 전하는데, 고양이에게 갔더니 뺨을 때리고 물고 굴리고 하며 괴롭히는 겁니다.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 쥐는 구정봉에 도착해야 하는 날짜를 하루 뒷날로 알려줬습니다. 7월 보름이 되자 걸음이 늦은 소가 밤중에 준비를 끝내고 컴컴한 새벽에 출발했고, 외양간 천정에서 이를 지켜본 쥐는 몰래 소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가 제일먼저 도착했는데, 소 등짝에 있던 쥐가 폴짝 뛰어내려 일등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소는 두 번째가 되고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의 순서로 도착해 12지가 정해졌어요. 하루 늦게 간 고양이는 당연히 여기에 끼지 못했지요. 그래서 12간지에 고양이 띠가 없답니다. 하하하.
얘기는 여기서 안 끝나요. 화가 난 고양이가 가만히 있었겠어요. 산신령께 쥐와 경주를 시켜달라고 졸랐습니다. 산신령의 허락을 받은 고양이와 쥐가 경주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쥐가 경주하는 도중 자꾸 구멍 속으로 도망가는 겁니다. 애가 탄 고양이는 작은 구멍 앞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한참을 기다리다 갑자기 깨달았다는 듯 “멍! 멍! 멍!”하고 짖어댔어요. 그때 밖의 상황이 궁금해진 쥐가 구멍에서 쑥 나왔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쥐를 낚아챈 고양이가 의기양양해 하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요즈음 먹고 살려면 2개 국어는 해야 해!” 하하하.
☞월우 스님은
1978년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같은 해 쌍계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80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83년 해인사 승가대학, 1987년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했으며, 경희대학교에서 행정학석사, 건국대학교에서 행정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계종 중앙종회 12,13,14,16대 의원을 지낸 스님은 지난 2004년 도갑사 주지로 부임해 대웅보전 중층복원 등 수많은 불사를 진행해 천년고찰 도갑사의 옛 위용을 되찾았다. 스님은 문화로부터 소외된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낙도어린이 여름 숲속학교, 일반인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참된 나’를 찾는 템플스테이와 불교대학, 보현거사회, 도선국사 문화예술제, 연등축제 등을 창설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영암군민들을 새로운 문화와 예술에 눈뜨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지구촌공생회 감사,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 이사, 인천국제공항 경찰대 경승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