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상(斷想)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5년 10월 16일(금) 15:56
월출산 천황봉이 가까이 바라보이는 청명한 하늘, 뙤약볕 속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벼 이삭의 황금빛 들판, 그리고 주렁주렁 나뭇가지에 열린 열매들, 그리고 무화과…. 평화롭고 풍요로운 전형적인 영암의 농촌 풍경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축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영암에서 맞이하는 40번째 가을이다. 얼마 전에는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월출산 천황봉을 올라갔다가 내려 온 적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꿈과 희망을 안겨 주는 산, 월출산. 바로 1975년9월25일, 젊은 한 청년이었던 나는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낮선 영암의 땅을 처음 밟았다. '보은(報恩)'을 건학이념으로 1971년 영암여자중학교를 설립하고, 1975년에는 영암여자고등학교를 개교하여 오늘날 명실상부한 명문 사학으로 만들기까지 척박한 이 지역에 교육의 기틀을 다지는데 평생을 헌신하신 민당선생, 그 분과 인연이 되어 오늘까지 영암에 머물게 되었다.
이제는 이순(耳順)을 거쳐 고희(古稀)을 바라보는 나이에 생각해보면 내 삶의 가치관, 교육관, 인생관은 민당 선생의 영향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분은 "실천(實踐) 없는 이론(理論)은 공론(空論)에 불과한 것"이라며 몸소 생활 속에서 실천하셨다. 늘 교육자로서의 검소함과 단정함을 보이셨고, 우수한 영재를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농촌지역을 구석구석 찾아 다니셨던 모습, 해가 월출산을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다니시다가 어두운 밤이 되거든 빵 하나로 주린 배를 달래신 채 비좁은 봉고차 안에서 움츠리고 잠을 청하시던 그 때의 모습, 무엇이 가르침이고, 무엇이 배움이며, 무엇이 은혜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인가를 많이 가르쳐 주셨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지혜로움과 슬기를 주셨던, 그 인자하고 자애로운 말씀은 이제는 실천해야만 되는 젊었던 나의 교육철학이 되고 말았다.
특히 '농촌이 잘 살아야 되고, 농촌에서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나의 사명감은 이 때쯤이면 학생을 모집해야만하는 분주한 계절의 시간이었다. 결코 학생이 없으면 교사는 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나 언제부터인가 학생수 감소로 인하여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칠 수 없는 내 고장 영암 학교 현장이 되고 말았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에 뜻있는 분들과 함께 영암교육공동체기구를 출범시켰다. '내고장 학교 보내기'를 슬로건으로 걸고 10월 20일 장만채 전라남도교육감 그리고 전동평 영암군수와 함께 영암교육의 희망을 찾고자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왜 농촌의 교육은 떠나는 자는 늘어나도 들어오는 자는 없는가?. 우리 모두에게 묻고 싶다.'줄탁동시'라 하였던가? 지역사회가 '어미닭' 역할을 하고 학교가 '병아리' 역할로 영암 교육현장의 무관심에서 꿈과 희망이 살아나야 하는데….
지난 10월3일은 1535년 조선 중종 30년에 창건되어 480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 지역의 유서 깊은 활쏘는 곳으로, 선조들이 무예를 연마하고 왜인들이 연해안으로 침략시에 호국의 보장처로 사용하기 위해 창건 된 사정(射亭), 또한 지방의 수령과 향민들이 모여 향사례 의식을 거행하였던 열무정,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하여 제1회 영암군수기 궁도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누구에게나 꿈과 희망을 안겨 주었던 월출산. 그 아래 살기좋은 영암, 물 좋고 산 좋고, 공기 좋은 영암, 유서 깊은 역사의 고장은 많은 젊은이들을 머물게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나의 젊은 시절 멘토었던 민당선생, 그리고 인생의 교훈을 주셨던 어르신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이 가을에 그 분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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