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6기 1년6개월 '일하는 분위기' 실종

自嘲섞인 태평성세 끝내려면 인사혁신해야"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2015년 12월 11일(금) 10:14
민선6기 1년6개월을 달리 표현하는 말이 있다. '태평성세(太平聖歲)'다. 본래의 뜻풀이처럼 '나라에 혼란 따위가 없어 백성들이 편안히 지내는 시대'가 영암군에 도래했기 때문은 결단코 아니다. 차라리 '영암군정에 특별한 일이 없어 공직자들이 편안히 지내는 시대'라고 자조(自嘲)를 섞어야 한다. 공직자들이 '할 일'이 없으니 군민들이 '이의제기할 일'도 없다. 불과 몇 년 전 걸핏하면 들렸던 시위대의 스피커 소음이나 1인 시위는 당연히 자취를 감췄다. 대신 군청 안팎이 그야말로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가끔 들리는 색소폰 연주는 태평성세를 상징하는 격양가(擊壤歌) 같지만 늘 씁쓸하다. 많은 공직자들은 "요즘처럼 하는 일 없이 마음 편하게 근무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뜻있는 공직자들은 "요즘처럼 월급 받는 것이 부끄러운 적이 없다"고 토로한다.
군청 하위직들은 일부 간부들을 '엔터 팀장', '엔터 과장'으로 부른다. 온라인 결제망을 통해 밑에서 올라오는 공문서에 사인하기 위해 컴퓨터 자판의 엔터(Enter)만 누르는 일이 하루 일과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군정발전을 위해 제안서를 내거나 업무 외의 일에 관심을 두었다가 문제의 엔터 팀장, 엔터 과장에게 걸리면 "왜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 "나중에 네가 책임질 거냐?"는 핀잔과 면박 때문에 견디기 어렵다. 팀장, 과장이 복지부동(伏地不動)인데 하위직들이 움직일 이유 없다. 그렇지 않아도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그래도 공직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마음 다잡아 보지만 거듭되는 핀잔과 면박은 "그래 차라리 조용하게 보내자"로 고쳐먹게 만든다. 군청 안팎이 쥐 죽은 듯 고요한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엉뚱하게 떠넘겨진다. 무화과산업특구는 최근일로 대표적이다. 군청 건물 앞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이면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숨어있다. 무화과산업특구는 당연히 친환경농업과가 추진해야할 업무였다. 벅차다면 다른 부서의 협조를 받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엉뚱하게 기획감사실 기획팀이 전담했다. 계획서 만들고, 공청회 열고, 중소기업청의 심사를 받는 일을 팀장과 팀원 포함 3명뿐인 기획팀이 맡았다. 특구 지정에 따라 기획팀은 관련 업무 일체를 친환경농업과에 이관할 계획이다. 국내 어느 지자체가 이런 행정행위를 또 하는지 궁금하다. 전동평 군수는 특구 지정을 자랑하기에 앞서 왜 이런 행정행위가 일어났는지 되짚는 일이 급하다. 사업성패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편 조용하던 군청 안팎에 요즘 부산함이 감지된다. 이 땅의 모든 공직자들이 숙명적으로 집착할 수밖에 없는, 연말로 예정된 인사 때문이다. 내년 1월1일자로 예정된 정기인사는 지난 7월1일자 인사에서 5급 승진의결 받은 5명이 이동하면서 생길 감사팀장, 행정팀장, 토목팀장 등 이른바 요직에 대한 충원 인사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은다. 박태홍 기획감사실장이 내년 7월 공로연수에 들어감에 따라 5급 승진요인은 한 자리에 불과한 반면, 이들 주요보직을 포함한 6급 승진요인은 7∼8자리나 되는 것도 주목된다. 천성주 종합민원과장, 한영준 도포면장, 조영율 안전건설과장, 유종수 문화시설사업소장, 박준규 수도사업소장 등 5명이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실·과·소장 자리이동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공직자들이 움직일 때가 된 것이다.
민선6기 영암군수 취임 후 세 번의 인사에서 전 군수는 '합격점'을 받았다. '탕평'이니 '군민 공감 인사'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공무원들을 자조하게 만든 '태평성세'를 안겨주었을 뿐이라는 점에서 한계는 분명해졌다. 세 번의 인사에서처럼 "무난하다"는 인사평을 듣고 싶다면 서열 따지고 서운한 사람 없게 자리를 옮겨주면 될 일이다. 하지만 제2, 제3의 무화과산업특구 사태를 감수해야 한다. 더 많은 엔터 팀장과 엔터 과장을 보아야 한다. 군민들에게 진정한 태평성세를 안겨주려면 전환이 필요하다. 인사혁신이다. 일 하려는 공직자를 이제 승진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업소 등을 전전하게 할 일이 아니라 과감하게 본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하위직은 일 잘하는 공직자들을 과감하게 발탁해 본청에서 일하게 해야 한다.
영암군 공직자들이 복지부동을 습관처럼 여기게 한 책임은 역대 영암군수들에게 있다. 전 군수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선거 때 도왔다는 이유로, 또는 다른 편에 섰다는 이유로 능력 불문 우대하거나 홀대하는 관행을 끊을 책무 역시 전 군수에게 있다. 비록 선거 때 나를 돕지는 않았지만 능력이 출중하다고 판단된다면 중용해보라. 그러면 역대 영암군수들이 만든 못된 관행은 금방 사라질 것이다. 무화과산업특구에 대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되짚지 않으면 사업실패는 불 보듯 빤하다. 특구는 예산지원이 아니라 각종 규제에 대한 특례적용을 통한 투자유치가 핵심이고, 얼마나 많은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고, 국·도비를 따내오느냐에 사업성패가 달렸기 때문이다. 진정한 태평성세를 만들려면 네 번째로 단행할 이번 인사가 절호의 기회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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