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용무도(昏庸無道)>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
2015년 12월 24일(목) 14:07 |
혼용무도를 추천한 고려대 이승환 교수는 "혼용은 고사에서 흔히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지칭하는 昏君과 庸君을 함께 일컫고, 무도는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 「論語」의 '天下無道'에서 유래했다"면서, "한자문화권에서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성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에 의하면 한문에서 昏은 해가 져서 사방이 어두워진 상태를 뜻하는 글자로, 사리분별에 어둡고 품성이 포악한 군주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던 말이다. 庸은 보통사람의 평범함에 겨우 미칠까말까 한 용렬한 인품을 뜻하는 글자로, 식견이 없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無道란 사람이 걸어야할 정상적인 궤도가 붕괴되어버린 야만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 네 글자가 합해진 '혼용무도'는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失政)으로 인해 나라 전체의 예법과 도의가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상태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혼용무도'의 표본은 진(秦)의 2세 황제 호해(胡亥)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지방순행을 나갔다가 갑자기 병사하자, 환관 조고(趙高)는 유서를 조작해 적장자가 아닌 호해를 후계자로 옹립하고 국정을 농단했다. 호해는 조고의 농간에 귀가 멀어 실정과 폭정을 거듭하다 즉위 4년 만에 반란군의 겁박에 자결했고 진은 멸망했다.
진시황은 비록 폭군이라는 비난을 듣기는 하지만, 최초로 거대한 통일 제국을 이룬 그의 웅대한 포부와 비범한 판단력 그리고 과감한 추진력은 후대 사가들에 의해 새로운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2세 황제 호해는 부친의 비범하고도 웅대한 식견과는 거리가 먼 용렬한 인물로, 포악하고 잔혹한 통치술만 따라서 흉내 내다가 결국은 나라를 망하게 만든 무능한 군주로 평가된다. 창업과 수성의 도는 다른 법이다.
이 교수는 결국 "한 해를 보내면서 새삼 느끼는 일이지만, 제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라면서, 이는 "제도를 만드는 자도 사람이고 제도를 운용하는 주체도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플라톤은 일찍이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저질스런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일이라고 말했다"면서, "플라톤이 말한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모두가 소중한 주권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수신문>은 혼용무도 외에도 후보에 올랐던 사자성어로 ▲사시이비(似是而非 14.3%) ▲갈택이어(竭澤而漁 13.6%) ▲위여누란(危如累卵 6.5%) ▲각주구검(刻舟求劍 6.4%) 등을 꼽았다. '사시이비'는 겉은 옳은 것 같으나 속은 다르다는 뜻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하나 사실은 틀린 경우 쓰는 말이다. '갈택이어'는 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는다는 뜻이다.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해 미래의 생산적 기회를 상실하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위여누란'은 달걀을 쌓은 것 같이 위태로운 형태라는 말로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뜻이다. '각주구검'은 판단력이 둔해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다는 의미로 쓰인다. 모두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2015년 한국사회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어들이다.
이밖에도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내려 한다는 뜻으로 사회적 약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분위기를 꼬집은 '건목수생(乾木水生)'과 목이 마르고서야 우물을 판다는 뜻으로, 일을 당하고 나서야 황급히 서두른다는 풀이의 '임갈굴정(臨渴掘井)'도 후보로 추천됐다. 또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해 자유로운 역사연구를 제한한다며 이를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대우탄금(對牛彈琴, 소에게 거문고를 탄다) ▲은감불원(殷鑑不遠, 멸망한 은나라의 전철을 밟고 있다) ▲인누수구(因陋守舊, 고루하고 불합리한 옛 제도와 정책을 인습해 고수한다) 등 비판적인 사자성어들이 2015년의 어지러운 단상을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한편 박근혜 정부 들어 올해의 사자성어는 1년 차인 2013년은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도행역시(倒行逆施)였고, 2년 차인 2014년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였으며, 3년 차인 올해는 '나라가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의 혼용무도(昏庸無道)였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꼴이 점점 말이 아닌 것 같아 암울하던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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