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암군홍보대사 정찬열과 떠나는 북한여행

북한방문 8일째 이야기<10>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6년 03월 04일(금) 12:50
마침 호텔에서 김세을 신부님을 만나 함께 시내 산책을 나갔다. 어디선가 경쾌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발길을 옮겨 가보니 중앙국립극장 앞 광장에서 수많은 젊은 남녀가 어울려 춤을 추고 있다. 몇 명쯤이나 될까. 3,400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당 창건일 경축 프로그램의 일환인 모양이다.
여자는 한복을 차려입고 남자는 검정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었고 빨강색 넥타이를 맸다. 춤 솜씨들이 좋다. 어릴 때부터 배워온 춤 솜씨인 듯하다. 묵고 있는 호텔 종업원들이 매일 뒤뜰에서 춤 연습을 하더니 그분들도 여기에 나와 어울려 추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오늘 저녁 식사를 김 신부님이 사시겠단다. 해방산 호텔 구내식당 양꼬치 구이가 맛있다며 그쪽으로 가자신다. 여러 번 다녀가신 분이라 어느 식당에 무슨 음식이 맛있는지 빠삭하다. 종업원들이 신부님을 알아보고 반긴다. 양꼬치구이는 긴 막대기에 잘게 썬 양고기를 끼워 숯불에 구워먹는 요리다. 워낙 기름기가 많은 음식이라 소주 한 잔 곁들여 몇 점 먹고 나니 그만이다.
대동강 맥주 이야기<
김참사와 함께 대동강변에 나갔다. 찰랑거리는 물결 위에 달빛이 일렁인다. 왼쪽으로 주체탑이 멀리 보이고, 강 건너 오른쪽은 깜깜하다.
강변에 떠있는 뱃집에 들렀다. “내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구호가 붙어있는 배다. 손님들이 많지 않다. 대동강 맥주, 통맥주(생맥주)를 주문했다. 병맥주 보다 통맥주가 더 인기가 있다고 김 참사가 얘기한다. 평양맥주, 용성맥주, 낙원맥주 등이 있지만 대동강 맥주의 인기가 으뜸이란다.
대동강 달빛 아래 맥주 한 잔 마시는 정취가 그만이다. 대동강맥주공장은 2002년에 생산을 시작했다. 180년 전통의 영국 어셔즈 양조장이 문을 닫자 인수한 뒤 공장시설을 해체에 평양으로 가져와 대동강맥주공장을 세웠다고 한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다니엘 튜터 기자가 북한 대동강 맥주가 한국 맥주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한국의 맥주업계가 긴장했다고 한다. 미국의 맥주 애호가 조지 토마스라는 사람도 대동강 맥주를 극찬 했다는 얘기가 ‘미국의 소리(VOA)’에 보도된 적이 있단다. 실제로 마셔보니 대동강 맥주 맛이 좋다. 한국산 맥주나 미국 맥주, 그리고 다른 나라 맥주 못지않게 좋다.
그동안 필자도 여러 나라의 맥주를 골고루 마셔보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각 나라마다 맥주의 종류가 많고 특색이 각각 다르니, 꼭 찝어서 어느 맥주가 맛이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맥주도 취향과 상황에 따라, 각자의 입맛에 따라, 누구와 언제 마시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맥주라도 목마를 때 마시는 맥주 한 잔과 보통 때 마시는 맥주가 맛이 다르지 않던가.
한때 한국에서도 대동강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입이 중단된 상태다. 미국에서도 대동강 맥주가 수입된다는 보도를 보았었는데 최종 단계에서 미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해 결국 무산됐다는 말을 들었다. 깜깜한 강변 뒤쪽으로 창전거리의 아파트 불빛이 화려하다
평양의 종로통, 창전거리
북한방문 8일째. 아침 6시 기상. 창전거리 쪽으로 아침 산보를 나갔다. 산책이나 산보라는 말이 원래는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라는 개념으로 남북에서 누구나 편하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 북한에서는 ‘산보’라는 말이 ‘데이트 신청’의 의미로도 쓰인다고 한다. 북한에서 이성에게 별 생각 없이 “산보나 하실까요” 제안했다가는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할지도 모른단다.
창전거리는 새로 지은 아파트 지역답게 산뜻하다. 약국 간판이 걸려있는데 이름이 없다. 의약품, 보약, 의료기구라고 되어있다. 약국에서 의료기구까지 취급하는가 싶다. 종로양복점, 종로과일 남새상점도 보인다. 평양의 종로통이라는 의미일까. 종로 빨래집도 있다. 세탁소인 모양이다. 조선옷집도 있다. 사회주의국가라서 정부에서 기본적인 의식주를 배급으로 해결해주고 있지만, 저런 상점들은 특별히 필요한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3명이 팔짱을 끼고 뭐라 재잘거리며 걸어간다. 학교에 가는 모양이다. 평양꽃상점을 지나자 ‘금성제1중학교’가 나타난다. 4층 높은 곳에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라는 글씨가 크게 붙어있다. 저 말은 어느 학교에나 붙이도록 되어있는 구호인 모양이다. 학교 벽에 “미래는 우리의 것이다.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자” “달려가자 미래로!” 라는 포스터가 보인다.
호텔의 아침 식사는 늘 비슷하다. 빵 한 조각, 그리고 밥과 국을 가져왔는데 먹다 보니 조금 많다. 한 숟갈 정도 남기면 딱 좋겠는데 미국이나 한국의 음식점이 아닌 이곳에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성 싶다. 남기기가 어려워 다 먹으면서 아직도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는가 싶어, 미련 곰탱이 같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아침을 먹고 잠깐 방에 올라왔는데 밖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니 종업원 40여 명이 체조인 성 싶기도 하고 춤 같기도 한 율동을 배우고 있다. 가르치는 여성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데 조금만 잘못해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그친다.
알자지라 방송기자를 만나다
알자지라 티비 방송기자를 만나다.
오늘 일정은 단군능을 방문하고 오는 길에 민속 박물관을 구경하는 일이다. 숙소에서 조금 일찍 내려왔는데 저만치 로동신문사 앞쪽에서 TV방송기자가 취재를 하고 있다. 기자 두 명이 평양시민들의 출퇴근 하는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다가, 내가 가까이 가니 말을 건넨다. 알자지라 방송 기자라고 한다. 미국에 사는데 북한 여행 중이라 했더니 반갑다면서 명함을 건네준다.
알다시피 알자지라(Aljazeera)는 미국 CNN에 대항해 1996년 개국한 카타르의 위성 텔레비전 상업 방송이다. 아랍어로 '섬' 또는 '반도'라는 뜻을 가진 알자지라는 반 미국적, 범 이슬람적 시각에서 아랍인의 목소리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북한에서 시청할 수 있는 채널에 중국이나 러시아 방송, 그리고 알자지라 방송이 들어있는 것을 보면 알자지라 방송과 북한의 관계가 좋은 것 같다.
평양에 온 후로 알자지라 방송을 매일 보고 있다고 얘기를 했더니 기자가 환하게 웃으며, 내용이 어떻더냐고 묻는다. 시청자로서 방송 내용에 대한 내 의견을 말했더니 자기네는 세계 곳곳에 특파원을 보내고 있으며,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글로벌 방송으로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관심이 많으며 오늘도 평양 시민들의 일상을 취재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기자 두 명 중 한 명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남한은 관심이 없는가 물었다. 왜 관심이 없겠느냐며 때가 되면 취재를 위해 서울을 방문할 수 있을 거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사진4>
김 참사가 출발할 시간이라고 손짓을 한다. 운전사 방동무가 어느새 왔는가 보다. 교통이 막히지 않아 평양 시내를 벗어나자 금방 교외로 나온다. 과일나무가 줄을 맞춰 잘 심어져있다. 산 밑에 농장을 돌보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다. 평양과수농장이라고 한다.
김 참사가 과수농장에 대해 소개를 시작한다. 전체 넓이가 1천정보라고 한다. 3천만평으로 여의도 면적의 34배 정도란다. 과수농원 울타리 길이만도 100여㎞에 이른단다. 과수농장은 단순한 농장이 아니라, 과수와 축산, 축산과 과수의 순환식 생산체계를 세워 운영되고 있으며, 식음료, 화장품 가공생산, 물류와 유통은 물론 양식장도 함께 있다고 한다. 새떼로부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농장에 씌울 그물을 생산하는 공장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만큼 규모가 큰 과수농장이라는 얘기일 터이다.
검문소가 나타난다. 평양시 외각으로 나가는 경계인 모양이다. 군인 두 명이 차 안을 들여다본다. 김 참사가 나가서 신분증을 제시하며 설명을 하니 통과 시킨다.

단군능을 방문하다
단군능에 도착했다.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기슭의 능선마루에 위치해 있는 단군시조의 무덤이다. 유흥준 선생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4> 서문에서 “현재와 같은 분단시대의 상황에서 남한 독자들을 상대로 북한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글로 되고 마는 것이다…. 단군능 같은 미묘한 대상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주위의 충고와 염려를 무릅쓰고 양측의 주장을 아우르는 글을 썼다….”고 밝혀놓았다.
나는 유흥준이 했던 말, “현재와 같은 분단시대의 상황에서 남한독자들을 상대로 북한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글이 되고 만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을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북의 이야기를 남에 전하고, 또 남의 이야기를 북에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통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단군능은 해방 후 북한 고고학계가 내세우는 최대의 업적이며. 여러 가지 학술조사와 고증을 통해 능을 건설했다고 한다. 부근에 있던 단군무덤에서 발굴된 뼈를 최신 과학기법을 이용하여 조사한 결과 단군과 그 아내의 뼈임이 확인됐고, 1993년 당시를 기준으로 ‘5,011(±)267년’ 값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남한에서는 이러한 발표에 대해 여전히 이견을 제시하는 학자들이 있다고 했다.
입구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 높은 곳에 아스라이 능이 보인다. 입구에서 능까지 279단의 화강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단다. 대단한 규모다. 유흥준은 이 모습을 “그 장대함이란 거의 무지막지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표현했다.
안내원을 따라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단군능은 한 변이 50m, 높이 22m로 축조되었고, 화강암 돌은 1994년에 개건되었음을 기념하여 1천994개로 짜 맞추었다고 설명해준다. 돌계단 중간 넒은 단에 돌기둥 조각을 세웠고 단군의 네 아들과 여덟 신하들로 호위하게 했단다.
270계단을 올라 능 앞에 섰다. 네 모서리에 우람한 돌호랑이를 수호상으로 세워놓았다. 호랑이가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를 것만 같다. 명작이다.
거대한 석조기념물 단군능 앞에 서서 질펀하게 펼쳐진 들판을 내려다본다. 가을걷이를 끝낸 논밭 그 끝에 산산이 파도가 되어 늠실거리며 아스라이 멀어져가고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 개천절 행사를 가진다고 한다. 올해도 천도교 대종교를 비롯한 남측 대표 36명이 다녀갔다고 안내원이 설명을 덧붙인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이 기사는 영암군민신문 홈페이지(yanews.net)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yanews.net/article.php?aid=1657737194
프린트 시간 : 2024년 10월 19일 16:2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