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열과 떠나는 북한여행

북한 방문 13일째 이야기<22>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6년 07월 22일(금) 14:24
"지붕위 드문드문 노랗게 옥수수 말리고…사람들이 그렇게 한 시절을 살아간다"
성산고급중고등학교 방문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16명 책상이 놓여있는데 오늘 출석학생은 13명이다. 모두들 교복을 입었고, 겉옷은 뒤쪽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있다. 교실 뒤쪽에 현황판이 붙어있다. 큰 글씨로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을 위하여 항상 준비하자!”라는 구호 아래 충실성, 학습, 조직생활, 좋은 일, 상식, 등으로 구분하여 그 아래 잘한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1등은 우리의 것- 학교적인 국어학과 경연에서 김룡심, 리설경, 홍령도, 최윤설, 남선경, 김현일 동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 ‘5점’의 성적을 쟁취하였습니다.” 5점이 최고점수로 남쪽의 수우미양가 ‘수’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나도 한몫-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축산기지건설구상을 충성으로 받들어갈 애국의 한마음으로 풀씨채집에서 남보다 2배,3배 수행한 김송, 김룡선 동무들을 높이 자랑합니다.”는 내용도 보인다.
교실 바닥 한쪽에 밥통이 보인다. 전기코드가 연결되어 있다. 학교에서 점심밥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먹이는지 모르겠다. 건축 중이라 아직 식당이 마련되지 못한 모양이다.
환영하는 의미로 음악 한곡 선사하겠다며 선생님이 풍금을 치면서 아이들과 합창을 한다. 미국에서 왔다며 소개를 한 다음, 아이들에게 인사를 겸한 간단한 얘기를 했다. 바라보는 눈망울들이 또릿또릿하다.
교장선생님이 컴퓨터 교실을 비롯해, 어학실습실, 각종 학습 자료실을 차례로 안내한다.
컴퓨터실에는 컴퓨터 구성 원리, 컴퓨터 문제해결 과정을 해설해놓은 자세한 그림과 표가 벽에 붙어있다. 자료실에는 ‘함수의 그라프 변환 설명기구’, ‘전자석의 세기와 리용’, ‘편의회로’, 등 각종 자료가 빼곡히 들어차있다. ‘국어 문학’ 교과서가 보인다. 고급중학교 1학년 용이다. ‘학업성적평가종합표’가 자료실 한 편에 놓여있다. 어느 담임교사가 작성한 표인 모양이다. 국어, 수학, 자연, 체육 등 과목별로 5점 만점을 기준으로 작성해 놓았다.
학교 방문을 마쳤다. 교장선생님이 밖에까지 나와 배웅해준다.
고산 과수농장 가는 길
축산기지 본부가 언덕 높은 곳에 지어져있다. “세포등판을 세계 제일 축산기지로!”라는 큰 사인판이 보인다. 풍력발전기 모델이 세워져 있다. 바람이 센 곳이라니 풍력발전기를 잘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젊어지라 복 받은 대지여”라는 글이 멀리서도 보인다. 비스듬한 언덕 파란 잔디 위에 돌멩이를 박아 만들어 놓았다.
세포등판을 출발하여 고산 과수농장을 들려 원산을 향해 가는 길이다. 올 때도 이 길을 왔을 터인데 가는 길이 더 가파르다. 내리막길이라 더 위태로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언덕 길을 내려가는데 길 가운데 트럭 한 대가 서있다. 목탄차다. 길이 좁아 차가 옆으로 비켜갈 수가 없다. 차가 멈췄다. 트럭이 고장을 고치는 동안 기다려야 한다.
“기런 건 왜 찍으려 하십네까”
목탄차 모습을 사진 찍으려 하자 김 참사가 퉁명스럽게 한 마디 한다. 잠깐, 어색한 순간이 흘렀다.
“리용 당할까 렴려 되어 하는 말입네다”
미안 했던지 설명을 덧붙인다. 불편한 침묵이 이어진다. 때로 침묵이 말보다 강하다. 순간,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떠오르고 어릴 적 일이 또 생각났다. 눈바람 속에 젊은 어머니가 작업장에 나가 돌을 이어 나르던 모습.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시리다. 가난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숨겨야 할 일도, 숨기려 해서 숨겨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날이 가고 해가 가고…,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우리집 지붕위에도 밝고 따뜻한 해가 떠있었다. “죽으면 썩을 삭신, 애껴서 뭐 한다냐”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어머님 덕택이었다.
의외였다. 김 참사의 얘기도 수긍 되는 부분이 있긴 하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이렇게 말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우리 공화국이 국내외적인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기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하여 이 난관을 극복하고 있다. 보라, 저렇게 나무를 태워 차를 운행하지 않고 있느냐. 언젠가는 이 시대를 추억으로 얘기할 때가 반드시 올 테니 두고 보십시오.” 이 정도의 얘기라면 훨씬 당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좀 전에도 세포등판을 지나오면서 수십 명 사람들이 어울려 집을 짓는 모습을 보았다. 곡괭이로 땅을 파고, 등에 벽돌을 져 나르고, 한쪽에선 시멘트를 섞으며 공사를 하고 있었다. 순안 비행장 활주로 공사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자신들의 방법으로 현실을 극복해가는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 몇 백만 명이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가슴 아팠던 기억을 반추해보면서, 아 이제 어두운 질곡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용트림치고 있구나 하는 반가운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목탄차는 비밀스런 얘기가 아니다. 인공위성으로 자동차 번호판까지도 식별할 수 있다는 시대다. 숨겨야 할 일도, 숨길 수 있는 사안도 아니고, 부끄러워 할 일은 더욱 아니다.
내 형편을 극복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데 그게 무슨 흉인가. 왜 당당하지 못한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김종삼 시인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 청계천변 10전 균일 밥상집 문턱엔 /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 이끌고 와 서 있었다 /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 태연하였다 /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장편(掌篇)2>전문이다.
고산 과수농장을 둘러보다
다시 출발. 운전사 방동무의 운전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군복무 중에도 최고의 운전사였다고 한다. 그런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해외 손님을 모시는 게 아니냐고, 김 참사가 은근히 치켜세운다.
길은 여전히 신작로다. 먼지가 일고 군데군데 웅덩이를 피해서 차를 운전하고 있다. 시간이 좀 지체되었다며 약간 속도를 높이는 성 싶다. 그 때, 갑자기 차가 ‘끼이익’ 소리를 내며 멈춰 선다. 바로 앞에 커다란 트럭이 동시에 멈춘다.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커브를 돌아가던 참이라 반대쪽에서 오는 차를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나와 보니 차선도 없는 신작로에 직각으로 산모퉁이를 도는 곳이다.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 동무 같은 운전 고수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농담을 하면서 다시 출발했다.
고산 과수농장 전망대에 올랐다. 농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 안내원의 설명을 들었다. 고산군 일대의 땅이 과일제배에 적합하여 2009년부터 농장을 조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광활한 땅이다. 3천 정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까 방문했던 세포등판은 5만 정보, 이곳의 다섯 배다. 그 곳이 얼마나 넓은 땅인지 알 것 같다. 이곳에서 일꾼 2만여 명이 일을 하고 있고, 살림집은 약 2천 세대라고 했다.
농가 지붕위에 드문드문 노랗게 옥수수를 말리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농가, 줄을 맞춰 심어놓은 과일 농장, 추수가 덜 끝난 들판에 노랗게 보이는 다락논의 나락, 푸르른 남새밭, 집 뒤에 쌓아놓은 옥수수대, 지붕 위의 옥수수와 깻단들. 이런 것들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저 풍경과 함께 사람들이 한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농장에 사과를 주로 심고, 복숭아, 배 등도 심었다고 한다. 현재도 상당량은 수확하고 있지만, 오는 2016년부터 본격적인 수확이 가능할 것이란다. 그 때를 대비하여 과일저장소, 가공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도로 포장도 머잖아 완공될 예정이라고 설명을 이어간다.
전망대에 서 있기 어려울 만큼 바람이 세다. 으스스 춥다.
원산, 송도원 야영장 방문
원산을 향해 출발한다. 김 참사가 이쪽 고산 부근에 석왕사가 있다고 얘기한다.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왕이 되는 꿈을 해몽해준 장소란다.
주민들이 신작로를 보수하고 있다. 달구지로 모래를 싣고 와 퍼 놓으면 삽으로 고루 펴는 작업이다. 굴삭기 한 대가 냇가에 서있다. ‘현대’라는 상호가 멀리서도 똑똑히 보인다. 어린 병사가 달구지를 한가히 몰고 간다. 어디로 무엇을 실러 가는 걸까. 신작로 가에 매점이 보인다.
다시 원산에 돌아왔다. 송도원 부근이다. 바다에서 낚시꾼이 낚시를 하고 있다. 고기가 제법 입질을 하는 모양이다. 뒤쪽으로 멀리 하얗게 건물이 보인다. 군인 휴양소라고 했다. 전에 들렸던 송도원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명성호텔에 가서 미국에 전화를 했다. 시내 통화처럼 음질이 좋다. 전화방 안에서 여인들이 주패놀이를 하고 있다가 손님이 오니 얼른 판을 치운다. 괜찮다고 해도 좀 머쓱한 표정들이다. 쉬는 시간에 놀이하는 게 뭐 잘못된 일인가.
‘송도원 국제 소년단 야영소’를 찾았다. 93년 개원했는데 1,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고 한다. 매년 여름 7,8월에 해외 청소년들을 초청하여 수련회를 개최한다고 했다.
10살부터 13살 사이의 국내 아이들, 그리고 7살부터 18살 사이 외국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수련회란다. 국내학생은 당연히 무료이고, 국제학생은 200유로씩 경비를 부담한다고 한다. 이 수련회에서는 물 없이 밥 짓는 법, 야영하는 법, 기타 여러 가지 집단생활에 필요한 일을 배운다고 한다.
실내체육관이 현대식 건물이다. 농구장, 암벽 오르기 등을 실시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있다. 축구장, 수영장도 국제규격에 맞도록 잘 만들어졌다. 연못에는 물놀이 기구들이 갖춰있고, 바로 지척이 동해바다라 여름 청소년 훈련장소로 그만 이겠다.
함흥 가는 길
함흥을 향해 출발한다. 원산시내를 벗어나자 넓은 들판이다. 북한은 산이 많아 밭이 대부분인줄 알았는데 다니면서 보니 의외로 논이 많다. 왕복 2차선 길이다. 자동차는 드문드문 달리고, 자전거 행렬이 길게 이어진다. 학교를 파한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모양이다. 경운기를 몰고 가는 농부도 보인다. 저만치 밭에서 아내가 소 코뚜리를 잡고 앞에서 끌고, 남편이 쟁기질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린 소에게 쟁기질을 가르치는 모양이다. 소가 머리를 위로 치올리며 고집을 부리는지 여인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학생들이 한 줄로 서서 이삭줍기를 하고 있다. 우리도 초등학교 시절 농촌에서 저렇게 노력동원에 나가 이삭을 주운 적이 있다. 논에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논에서 옥수수를 기르는 모습은 또 금시초문이다. 올해 가뭄이 심했다는데 다랑이 논이라 물이 부족해서 모내기를 하지 못해 옥수수를 심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농사를 짓던 어느 해, 가뭄이 심해 모내기를 못하고 산두 씨를 뿌렸던 적이 있었다.
전탄강 다리 앞에 도착하여 잠깐 쉬었다. 함경남도 고원군과 강원도 천내군 경계다. 위대한 주체농법 만세!, 라는 표어가 보인다. 북한식 농법이라는 얘기인 모양이다.
함경남도 금야군을 지나간다. 함흥이 멀지 않은 곳이다. 이 부근이 이성계의 고향이라고 한다. 너무나 유명한 ‘함흥차사’ 이야기의 본고장이다. 남한의 전남 영암에서 매년 ‘왕인박사 축제’를 열듯이, 시절이 되어 금야군에서 ‘함흥차사’ 축제를 개최한다면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간다.
달리는 트럭에 사람이 한가득 타고 있다. 저러다 떨어지면 어떨까,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은데 모두들 행복한 표정으로 트럭을 타고 가는 중이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간다. 생각해 보아도 그동안 묘지를 본 기억이 없다. 김 참사에게 묘는 어디에 쓰느냐고 물었더니, 길에서 보이지 않는 깊은 산에 모신다고 한다. 세상 떠난 분들이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조용한 곳에서 오순도순 보내시도록 배려하는 걸까.
‘닭 공장’ 간판이 보인다. 개성 부근에서도 보았던 것이다. 닭을 기계적으로 기르는 곳이라는데 건물이 꽤 크다. 수만 마리 닭을 기르고 있을 거라고 한다. 머지 않는 곳에 ‘가금 전문학교’가 있다. 닭, 오리, 등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라고 했다.
드넓은 벌판에 목초를 조성해 놓았다.
벌판이 넓어 보이기에 무슨 평야냐고 물었다. ‘함주벌’이란다. 함경도에서는 알아주는 벌판이라고 한다. 주인 없는 달구지를 소가 혼자서 끄덕끄덕 끌고 간다. 신작로를 따라 곧장 가고 있다.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은데, 그런 걱정은 인간이 하는 게고 나는 그냥 가면 된다는 듯, 황소님이 느릿느릿 양반걸음으로 걸어가신다.
송천강에 도달했다. 함흥시가 강 건너편에 보인다. 이 강을 동서로 가로질러 농장지대와 공장지대로 구분된다고 한다.
7시 반 함흥 도착. 신흥산 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전기사정이 여전히 어려운 모양이다. 복도는 어둡고, 세면장에 더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함흥인구가 77만이라고 했다. 흥남이 여기서 8㎞인데 합하면 100만 인구가 될 거라고 한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9달러다. 식사를 마치고 올라오자 세면장에 뜨거운 물 두 바케스를 준비해 놓았다. 손님을 위한 정성이 느껴온다. 이렇게 작고 사소한 일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내려가는 길에 호텔 로비에 들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려고 하는데 아무도 없다.
호텔 앞에 매점이 두 군데 있다. 감이랑 밤, 그리고 몇 가지 먹거리를 팔고 있다. 평양의 노점상과는 달리 달러도 괜찮다고 한다. 홍시 감을 샀다. 1달러를 주니 말랑말랑한 홍시감이 10개가 넘는다.
오늘 하루, 꽉 찬 일정이었다. 내일은 흥남에 간다. “눈보라가 휘날리던, 바람찬 흥남부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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