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열과 떠나는 북한여행

북한 방문 14일째 이야기<24>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6년 08월 12일(금) 13:23
차를 돌려 ‘2.8비날론 연합기업소’로 향한다. 비날론(Vinalon) 생산공장이라고 했다. 석탄에서 섬유를 비롯한 소금, 식초, 물감 등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내는 곳이란다.
경지면적이 넓지 못하고 목화가 잘 되지 않는 북한에서 인민의 입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였다. 북한에 거의 무진장 있는 석회석을 원료로 섬유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있었다. 전남 담양출신인 당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리승기(1905-1996년)박사가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 1950년 10월, 전쟁 중 김일성은 그를 평양으로 모셔왔다. 안전을 위해 달구지로 산길을 따라 모셔왔다고 한다. 50년대에 ‘비날론’이라는 섬유를 발명하는 데 성공했다.
공장에 도착. 안내원이 안내를 시작한다. 1957년 첫 비날론을 생산했고, 비날론 생산공장이 여러 곳인데 이곳은 그 중 하나라고 했다. ‘2.8’이라는 이름은 2.8군대가 지었다는 의미라고 한다.
“2.8비날론연합기업소가 짧은 기간에 현대적으로 꾸려지고 비날론이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은 원자탄을 폭발시킨 것과 같은 특대형 사변이며 온 나라의 대경사입니다,” 김정일 어록이 벽에 붙어있다. 안내원이 그동안의 과정과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솜과 섬유, 소금, 간장, 식초, 물감, 가성소다, 염산, 카바이트, 초산 등, 최고 500가지 정도인데 지금은 170여가지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석회석과 무연탄을 전기분해하여 생산물을 얻어낸다고 했다. 하루에 석탄 600톤이 필요하다고 한다.
“강성국가 건설에서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자.”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등의 글이 벽에 걸려있다.
과학자 한 사람이 얼마나 큰일을 해낼 수 있는가, 한 인재(人材)가 인류를 위해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는가를 공장을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사람이 힘이고, 사람이 희망”이라는 말을 되새겨 보았다.
비날론을 생산하는 공장은 이곳 2.8연합기업소와 함께 남흥청년연합기업소, 승리화합연합기업소 등 5곳이라고 했다.
리승기 박사는 비날론의 발명으로 1961년에 공산주의권 노벨상으로 불리는 ‘레닌상’을 수상했다. 까맣게 모르고 있던 사실이다. 정치체제는 다르지만 이런 분은 널리 알려 민족의 자랑으로 삼을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그런데 그 후, 북한이 수소탄 실험을 했다는 뉴스를 듣게 되고, 이승기 박사가 북한 영변 원자력발전소 초대 소장을 지내는 등 1996년 사망 때까지 핵개발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 그의 생가가 남아있다고 한다. 그가 남한에 있었다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지난 일을 가정해본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까.
함흥냉면 원조 신흥관
다시 함흥에 나왔다. 점심을 먹으러 신흥관으로 갔다. 손님이 꽤 많다. 2층으로 안내를 한다. 함흥냉면 원조집이 아니던가. 함흥냉면을 주문했다. 감자지짐, 찰떡, 빵, 감자송편, 물만두 등이 차례로 나온다. 그리고 회냉면이 나왔다. 국물이 시원하고 깔끔하다. 맛이 깊다. 면발은 쫄깃쫄깃한데 도마도와 오이 씹히는 맛이 어울려 입안에서 시원하게 사근거린다. 안내원이 평양냉면은 메밀을 쓰지만 함흥냉면은 감자 녹마국수라고 설명한다. 자르지 않고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외지에서 온 사람인 것을 담박 알아본다.
후식으로 가재미 식혜가 나온 다음 아이스크림을 내온다. 아이스크림을 찹쌀과 계란 버터로 만들었다고 한다. 내 그릇에 육수가 좀 남아있는 것을 본 안내원이 “육수를 다 드셔야 합네다” 웃으며 얘기한다.
점심을 먹고 밖에 나오니 한 아주머니가 사진을 찍겠냐고 묻는다. 샘플 사진을 걸어두고 즉석 사진을 찍어주며 돈을 받는 사람이다. 삼륜차가 지나간다. 바퀴가 셋 달린 작은 트럭이다. ‘릉라도’라고 옆에 써 있다. 무슨 장사를 하는 모양이다.
울림폭포 가는 길
마식령 스키장을 향해서 출발. 오늘은 그곳에서 머무를 예정이다. 가는 도중에 울림폭포를 들려가자고 한다. 어제 올라왔던 원산 쪽 길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운전사 방 동무가 신흥관 냉면 얘기를 하면서 너스레를 떤다. “빵두 두지, 물만두 나오디, 이것들이 시키디도 않았는데 자꾸 음식이 나와 맛있는 음식을 쓰게 먹었단 말입네다.” “자꾸 나와 야단났다, 그러니 아이스크림이 쓰지 않겠냔 말입네다.” 값이 비싸게 나올까 걱정이 되어 음식 맛을 제대로 모르고 먹었다는 얘기다.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소가 달구지를 끌고 간다. 송아지가 따라가는 걸 보니 암소인 모양이다. 함흥지방 농가도 다른 지역과 비슷한 모습이다. 가을걷이는 거의 끝나고, 지붕에는 울긋불긋 농산물들이 널려있다. 지붕에 무엇을 말리는 모습은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전망 좋은 곳에서 잠시 쉬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야산을 개간하여 밭을 많이 만들어놓았다. 황토밭인데 홍수가 나면 대책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뒷좌석에 앉아 옆 풍경을 보면서 언덕길을 내려간다. 거의 4면이 깊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움푹한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20여 채 되어 보이는 작은 동네다. 지붕 위에 옥수수를 말리고 있는 노란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차를 잠깐 세워 사진을 찍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데, 그새 자동차가 언덕을 꽤 내려 와 버렸기에 그냥 지나쳤다.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두고두고 아쉬운 풍경이 되었다.
아주머니 두 분이 길가에서 상자 위에 감을 얹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감이 많이 나는 지역인 모양이다. 저런 모습은 남쪽에서도 이따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원산 가는 길에서 울림폭포 쪽으로 차가 방향을 튼다. 산속 오지 길이다. 시멘트 길인데 포장한 지 오래지 않아 보인다. 김 참사에게 물으니 군인들이 이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참을 가도 사람이나 차가 보이지 않더니, 5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무거운 자루를 지게에 지고 찻길을 따라 힘겹게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식량인 모양이다. 이 높은 언덕을 저 무거운 짐을 지고 어떻게 올라갈까 걱정이 된다.
남편이 집에 도착하면 눈 빠지게 기다리던 아내가 밥을 짓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 저녁, 온 식구가 밥상에 빙 둘러 앉아 김나는 밥을 맛나게 먹고 있을, 한 가난한 농가의 저녁 식사 풍경이 눈에 아른거린다.
울림폭포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 ‘울림명승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20여분 걸어 올라가니 폭포가 보인다. 함께 걸어가던 운전사 방 동무가 한마디 한다.
“이 꼬락쟁이 폭포는 나무하러 오는 사람이나 알았지 뭐, 이제는 평양에서도 우야 온단 말입네다”
김 참사에게 ‘우야’란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우정, 혹은 일부러 라는 뜻이라고 한다.
방 동무 말처럼 이 폭포는 하도 깊은 산속이라 나무꾼이나 알고 있던 곳인데, 2001년 정부에서 관광지로 개발하여 오픈한 폭포라고 한다. 강원도 천내군과 법동군 사이에 있다.
울림폭포에 도달했다. 올해는 가뭄이 들어 물이 예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요란한 폭포 소리가 산을 울리고 있다. 높이가 75m라고 한다.
젊은 남자 둘이 가까이 오더니, 그 중 한사람이 품속에서 산삼을 꺼내 보여준다. 50년생 진짜 산삼이라고 한다. 가만히 있으려니, “진짜인지 가짜인지 뿌리를 라이터로 태워보면 알 수 있습네다, 진짜는 타지 않습네다.” 옆에 서 있는 다른 젊은이가 거든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끼로 싸여있는 삼이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한 뿌리니 80불정도면 드리겠다고 해서, 북한 방문 기념으로 사볼까 싶은데 옆에 서있던 김 참사가 시간이 없다고 내려가기를 재촉한다. 사지 말라는 신호로 이해했다.
마식령 스키장
마식령 스키장 입구
다시 차에 올랐다. 첩첩산중이다. 갈지(之) 자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산을 올랐다가 내려가자 제법 평평한 들판이 나온다.
남정네 두 사람이 냇물을 따라가며 바위를 들춰 고기를 잡고 있다. 망치로 바위를 때려 고기를 기절시켜 고기를 잡는 방법이다. 나무 매나 망치로 물에 잠긴 바위를 꽝 내리친 다음 가만히 바위를 들추면 그 아래 숨어있던 기절한 고기들이 물 위로 떠오른다. 냇물을 따라 크고 작은 바위를 더듬다 보면 한 냄비 분량의 민물고기가 금시 잡혔다. 붕어, 피라미, 메기, 뱀장어 같은 고기들로 매운탕을 끓여 소주 한 잔 마시는 즐거움은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60대가 넘는 농촌 출신에게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조금 더 내려가다 보니 짧은 섶 다리가 보인다. 섶 다리는 Y자형 나무로 다릿발을 세우고, 위에 솔가지 등을 깔고 흙을 덮어 만든 임시다리를 말한다. 옛날에는 남쪽에서도 냇물이 흐르는 곳이면 섶 다리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남이나 북이나 살아가는 방법이 저렇게 비슷하다.
평양-원산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10여분 후에 마식령 스키장이 나온다. 3시30분경 스키장 도착. 호텔이 꽤 크다. 전체객실이 130개라고 한다.
좀 늦은 시간이지만 리프트를 타고 꼭대기 대화봉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여기서는 리프트를 삭주라고 한단다. 삭주 타는 값은 1인당 7달러, 스키복은 물론 장비 일체를 빌려서 스키를 할 수 있다. 하루 랜탈 비용이 35불이다. 김 참사와 방 동무랑 셋이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다. 스키시즌은 아니지만 관광객을 위해 꼭대기까지 리프트를 운행한다고 했다. 바람이 차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병사 세 명이 스키장 가장자리 허물어진 부분을 고치고 있다. 군인들이 관리를 맡아하는 모양이다.
대화봉까지 올라왔다. 1천364m 산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산 넘어 산, 첩첩이 산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이다. 안내판에 제1주로가 5천93m라고 적혀있다. 바람이 너무 세고 추워서 잠깐 밖을 둘러 본 다음 매점 안으로 들어갔다. 공사중이라 어수선 하지만 간단한 음료와 먹거리를 팔고 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따끈한 커피가 그만이다. 춥다고 하니 종업원 아가씨가 평일에도 봉우리에 구름 낀 날이 많다고, 날이 맑으면 동해바다가 보인다고 한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7달러다.
날이 저문다. 내려가려고 리프트를 탔다. 공사하러 올라왔던 남자 직원과 함께 내려가게 되었다. 막 출발했는데 리프트가 선다. 정전이 된 모양이다. 전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한단다. 사방은 어두워지고 바람 소리가 무섭다. 이렇게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밤을 새우는 게 아닐까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난다. 스키장은 특별관리 지역이라 정전 되는 일이 드문데 오늘 이런 일이 생겼다면서, 남자 직원이 자기 잘못이라도 된 양 미안해한다. 몸을 웅크리고 바람에 흔들리며, 15분쯤 지났을까. 리프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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