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banana)>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
2016년 10월 14일(금) 13:50 |
바나나(banana)가 한때 이런 미끼상품이었던 적이 있다. 늘 대형마트 입구 쪽 눈에 띄는 곳에 진열되어 있어 소비자를 유혹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입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어떤 마트에서는 쉽게 찾기 어려운 곳에 자리해 있다. 왜 그럴까? 당연히 미끼상품으로 쓸 만큼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나나는 지금 멸종위기다. 병충해 때문이라고 한다. 생산량이 적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바나나를 미끼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나나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과일 중 하나이자 아프리카 등에서는 중요한 식량이기도 하다. 바나나 농장에서는 수확이 끝나면 나무를 베어버린다고 한다. 바나나가 한번 열린 줄기에서는 다시 바나나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높이가 보통 3m에서 10m 가량이어서 바나나 '나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바나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즉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라 풀에서 열리고, 수확이 끝나면 베어버려야 다시 자란다.
바나나가 재배된 것은 기원전 5천년 전 말레이반도 부근에서부터였다고 하니 그 역사는 무척 오래다. 보통 야생 바나나는 열매 속에 크고 딱딱한 씨를 가득 품고 있어 먹을 수가 없다 한다. 따라서 바나나를 재배한 것은 열매가 아니라 뿌리를 캐 먹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씨 없는 돌연변이가 나타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바나나로, 품종이름이 '캐번디시(Cavendish)'다. 1950년대까지 주류를 이뤘던 '그로 미셸(Gros Michel)'의 대체 품종이다.
그로 미셸 품종이 멸종된 것은 '바나나 암'이라고 불릴 만큼 치명적인 병충해인 '파나마병' 때문이었다. 푸사륨(fusarium 불완전 균류의 일종으로서 침엽수의 입고병(立枯病)을 일으키고 고사시키는 균) 속 곰팡이가 물과 흙을 통해 바나나 뿌리에 감염되는 이 병은 1903년 파나마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에 이름도 파나마병으로 붙여졌다. 이 병에 저항성이 없었던 그로 미셸은 잎이 갈색으로 변해 집단 폐사했고 1960년대 생산이 중단됐다.
맛과 향이 진하고 껍질이 두꺼워 장거리 운송도 문제가 없었던 그로 미셸의 대체품종이 바로 캐번디시다. 그로 미셸보다 크기가 작고 맛과 향도 떨어졌지만 파나마병에 잘 견뎌냈다. 하지만 1980년대 대만에서 캐번디시 역시 파나마병 증상으로 말라죽기 시작했다. 품종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파나마병이 진화해 변종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만에서는 캐번디시 품종 70%가 사멸했다고 한다. 더욱 걱정스럽게도 지금까지 치료법이 없다. 인류가 즐겨 먹는 단 한 종뿐인 식용 바나나 캐번디시가 멸종위기에 처한 것이다.
바나나가 멸종위기에 처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 먹기 쉬운 바나나를 찾다보니 생긴 일이다. 씨가 없는 바나나의 번식을 위해서는 열매를 수확한 후 밑동을 잘라내야 한다. 그러면 6개월 후 땅속줄기에서 새로운 줄기가 자라고 열매가 열린다. 뿌리를 잘라서 옮겨 심어도 된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유전적으로 동일한 바나나만 얻게 된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씨 없는 바나나 경작으로 사람들은 달콤한 바나나를 얻지만, 바나나는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지고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졌다. 파나마병 같은 병충해가 나타나면 속수무책 전멸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바나나의 멸종을 막고 새로운 품종을 찾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바나나 구하기 컨소시엄(Banana Save Consortium)'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캐번디시를 대체할 수 있는 품종을 찾는 일과 함께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체 교정으로 캐번디시 바나나의 개량에도 나서고 있다. 병충해에 강하고 맛 좋은 바나나 품종이 나오기를 왜 기대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어째 가슴 한구석 개운치 않은 느낌은 남는다. 다름 아닌 인간의 탐욕 때문에 지구상의 식물 68%가 멸종위기에 처해있다는 뉴스가 생각나고, 바나나도 그 하나 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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