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trot)>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6년 11월 11일(금) 11:39
영어 'trot(트로트)'는 '빠른 걸음으로 걷다' 내지는 '총총 걸음으로 걷다'는 뜻이다. 두산백과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트로트가 연주용어로 쓰인 것은 1914년 쯤 미국, 영국 등에서 템포의 래그타임곡이나 재즈 템포의 4분의 4박자 곡으로 추는 사교댄스의 스텝 또는 그 연주 리듬을 일컫는 폭스 트로트(fox-trot)가 유행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지금 이들 나라에서는 사교댄스 용어로만 남아 있을 뿐 연주용어로는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트로트 풍(風)의 음악이 국내 처음 들어온 것은 1920년대 말 일제강점기다. 일본 고유 민속음악에 서구의 폭스 트로트를 접목한 엥카(演歌)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민요를 적극적으로 계승한 신민요 양식이 유행했는데, 레코드 제작이 본격화 하면서 일본 엥카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우리 가요 역시 일본에서 녹음하는 과정에서 엥카 형식으로 편곡됐다.
엥카 풍의 대중가요는 광복 후 크게 유행했으나, 왜색의 잔재를 없애고 주체성 있는 건전가요의 제작과 보급, 팝송과 재즈 기법 등이 도입되는데, 이 때 새로이 붙여진 이름이 바로 '트로트'다. 한편으로는 '뽕짝'이라는 명칭이 함께 통용되기도 했으나, 음악계는 비하적인 용어라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다. 일부에서 그 반작용으로 '전통가요'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1970년대 이후 트로트라는 명칭은 확고하게 그 자리를 잡는다.
음악계에서는 트로트를 일본 엥카에 뿌리를 둔 왜색 음악으로 보는 입장과, 서양의 폭스 트로트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으로 발전한 음악으로 보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트로트는 1970년대에 이르러 폭스 트로트의 4분의 4박자를 기본으로 하되, 강약의 박자를 넣고, 독특한 꺾기 창법을 구사하는 독자적인 가요 형식이라는 견해가 정설이다.
어쨌든 일본 엥카 영향을 받아 트로트 형태로 정착된 대표적인 노래는 1932년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황성옛터), 1934년 고복수가 부른 '타향'(타향살이), 1935년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등이다. 이때부터 트로트는 단조 5음계로 고착되면서 주로 2박자에 특유의 꾸밈음을 지닌 노래로 정착됐다는 설명이다.
1940년대에 들어서는 '나그네 설움'같은 장조 트로트가 새롭게 등장해 단조 트로트와 공존한다. 가사는 매우 애절한 슬픔의 노래가 대부분을 이룬다. 이뤄지지 못한 사랑, 행복해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 고향을 떠나 정착하지 못하는 나그네의 고통 등등.
해방 후에도 이런 양식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분단과 전쟁 등 고통스러운 상황이 반영된다. '가거라 삼팔선', '단장의 미아리고개', '꿈에 본 내 고향'처럼. 반면 전쟁 후 미국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은 노래들이 새로운 인기몰이를 하면서 트로트는 국내 대중가요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능력을 잠시 상실한다. 이 때 트로트의 인기를 부활시킨 가수가 바로 이미자다. 그가 부른 '동백아가씨'의 인기는 1970년대까지 이어진다. 그 뒤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영암 출신인 남진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 역시 영암 출신인 하춘화의 '물새 한 마리' 등은 한국트로트를 완전 대중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한다.
1970년대 트로트는 이전과 다른 경향을 보인다. 시골을 연상시키는 가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트로트가 시골이나 저학력자, 하층민 등 좀 더 넓은 대중들에게까지 대중화된 결과라고 보았다. 1970년대 청년문화 붐으로 포크송이 새로운 유행으로 떠오르고 록도 함께 인기를 얻으면서 트로트는 눈에 띄게 위축되지만 1976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필두로 다시 부활한다. 최헌, 윤수일 등 록그룹 출신의 솔로가수가 록 사운드와 트로트 선율을 결합한 '앵두', '사랑만은 않겠어요' 등의 노래로 새롭게 인기몰이를 하는 것도 이때다.
1980년대 들어 트로트는 더 이상 새롭고 참신한 양식이 아니라 익숙하고 편안한 양식이 된다. 그 결과 유행에 덜 민감한 중장년이나 저학력과 낮은 계층의 취향으로 밀려난다. 속칭 '뽕짝 메들리'라고 불리는, 옛 인기 트로트 곡을 같은 속도로 단순하게 연주되는 전자악기 반주에 맞춰 끊임없이 이어 부르는 방식의 음반이 인기를 모은 것이 이 때다. 이 메들리 음반가수의 대표 격인 주현미가 '비 내리는 영동교'로 인기몰이하면서, 트로트는 단조 트로트의 비극성이 퇴조하고,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를 지닌 장조 트로트가 강세를 보인다. 1990년대 이후 트로트는 비극성을 거의 지니지 않게 된다. 대신 유흥의 자리에서 흥을 돋우는데 적합한 신나는 노래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이처럼 우리 국민의 애환을 담은 트로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관련 음악인들을 양성하는 산실이 될 한국트로트가요센터가 영암에 들어선다. 국비 63억원과 군비 27억원 등 총사업비로 90억원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이다. 특히 처음 하춘화 기념관으로 추진됐던 것보다 훨씬 포괄적인 사업이다. 그만큼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뜻이다. 군 단위 시각에서 만지작거릴 일이 아니라 전국적, 더 나아가 세계적 안목에서 한국트로트의 산실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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