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열과 떠나는 북한여행 북한 방문 19일째 이야기<32>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
2016년 11월 18일(금) 14:18 |
호텔 앞 넓은 주차장을 걸어가면서 보니 잔디밭가 시멘트 블록 위에 은경, 옥화, 이런 이름들이 적혀있다. 어느 아침 아주머니가 양동이에 물을 가져와 잔디에 뿌리는 모습을 보았다. 저렇게 이름을 적어 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그리고 원산에서 송도원 국제 소년단 야영원에서도 관리자의 이름이 길가 화단에 써있는 것을 보았다. 그 구간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의 이름인 성싶었다.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잔디를 관리하는데 효과적인 모양이다.
대동강둑에 사람들이 붐빈다. 강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대동강 산책을 나온 엄마가 보인다. 그 바로 앞에 아가씨가 손전화로 통화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다. 북한에 손전화가 370만 대를 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양은 물론 지방에서도 손전화에 관한 얘기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다.
거북선 모형의 배가 강가에 매여있다. 2층으로 된 유람선이다. 그 옆에서 한 남자가 낚시질을 하고있다. 바로 위 공원 돌탁자에 빙 둘러 앉아 나이 지긋한 남자들 넷이 화투놀이를 하고 있다. 인민복 차림에 모자를 썼다. 은퇴한 분들이 한가한 오후 한 나절을 저렇게 보내고 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가니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대동강변 공터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20명쯤 될까. 남녀노소 구경꾼들이 층계에 앉아서 혹은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노는 모양을 구경한다. 어림잡아 30명은 넘을 성싶다. 노는 사람도 구경꾼이 있어 더욱 신이나는 모양이다. 구경꾼이 늘어날수록 목청도 높아지고 몸놀림도 흥겨워진다. 구경하고 있던 사람도 흥이 나는지 춤꾼 속으로 뛰어들어 한바탕 춤을 추기도 한다.
아이를 둘러업고 놀러 나왔던 할머니가 슬며시 자리를 뜬다. 아이가 젖을 먹고 싶어 칭얼대는 모양이다. 포대기로 아이를 들쳐 업은 저 모습도 참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해가 기우는 듯싶어 숙소로 돌아오는데 길가에서 자전거 빵꾸 때우는 모습이 보인다. 이북에 온 다음, 평양은 물론 지방에서도 자전거를 참 많이 보았다. 직장인의 출퇴근이나 학생들의 등하교, 농촌에서 작은 짐을 실어 나르는 모습까지 자전거가 많았다. 휘발유가 부족하니 자전거를 많이 사용하는가 싶었고, 일견 대단히 자연스럽고 적절한 선택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동안 ‘자전거포’를 본 적이 없었다. 저렇게 자전거가 많은데 고장이 나면 어디서 고치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몇 발자국을 더 걸어가는데 한 젊은이가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다. 눈 여겨 보고 있는데, 백여 미터 걸어가더니 저 만치 길가에 대기하고 있던 노인에게 가서 빵꾸를 때운다.
은퇴한 노인으로 보이는 남정네들이 연장가방 같은 것을 자전거 뒤에 싣고, 또는 어깨에 매고 와 길가에 앉아있기에 무엇하려는 것일까 유심히 봐 오던 참이었다. 저렇게 자전거 타이어를 수선해주고 푼돈을 버는 모양이다. 노인네들이 무료한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용돈도 벌어 쓴다면 일석이조가 아닐까 싶다.
멀리서 펑크 때우는 장면을 사진 찍었다. 그리고 건너편 쪽의 다른 풍경을 사진 찍고 있는데, 옆을 지나가던 한 중년 남자가 “왜 함부로 사진을 찍는 거요?” 하고 묻는다. 갑작스런 물음에 “경치가 좋아서요” 하고 대답했다. “보아하니 당신 우리 조선 사람 아닌가 본데...” 하며 시비를 걸어올 태세다. 사실대로 설명을 했더니 좀 수그러든다. 그러면서도 영 못마땅하다는 투다.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서방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해외 관광객을 안내원과 함께 다니게 하는 이유를 알겠다.
호텔 부근 버스정류소 앞에 모녀가 앉아있다. 아이가 맨 가방에 미키마우스가 그려져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가 딸에게 무언가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엄마가 얘기하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무얼 묻곤 한다. 아이가 웃으니 엄마도 따라 웃는다. 행복이란 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저렇게 소소한 일상에 행복이 있다. 따스한 햇살 한 줌이 모녀를 비추고 있다.
바로 옆 아파트 골목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탄 아이들 대여섯 명이 뒷 꽁무니를 잡고 줄서 달려오고 있다. 학교가 끝나고 동네 친구들과 함께 몰려다니는 모양이다. 앞에 가는 여자 아이가 “잡으라이, 여자하나 못잡아서리...” 하면서 달아나니 남자 아이가 기를 쓰고 쫒아간다. 아이들 노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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