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열과 떠나는 북한여행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6년 12월 02일(금) 14:04
"가로등 불빛 아래서 학생들이 책을 읽고 있다. 짠하다."
우치선(1919∼2003) 선생 밀랍상이라고 한다. 도자기 분야의 대가로서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분이라고 했다. 열세 살부터 도예를 시작하여 고려청자발전에 신기원을 세운 분으로 인민예술가로 추앙받았던 인물이라 한다. 인민예술가는 북한에서 미술, 사진, 작곡 등 예술 분야에서 공훈을 인정받은 예술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명예 칭호란다. 무대 공연 분야의 인민배우와 동급이라고 한다.
전시되어있는 도자기 몇 점을 살펴보았다. 흙덩이를 주무르고 구워서 저렇게 고운 빛깔의 자기를 만들어 냈다. 학이 날개를 펴고 청아한 세상으로 날아간다. 나는 저 그릇 하나하나에 쏟아 부었을 인간 노력의 층위를 어림할 수가 없다. 나 같은 도자기의 문외한에게 저 작품들은 돼지 앞에 던져진 진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북한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도자기를 아는 분에게 얘기를 듣고 관련 자료도 찾아보았다. 우치선은 임사준과 함께 북한에서 청자분야 최고의 도예가로 인정받았던 인물로, 수세기동안 맥이 끊겼던 고려청자를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 일본은 고려청자를 재현할 욕심으로 개성에 요업실험소를 세웠다. 그곳에서 후에 남과 북에서 고려청자의 선구자가 된 우치선과 황종구 등이 도자기 제작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우치선은 북한에서, 황종구 지순택 류해강 등은 남한에서, 각각 고려청자를 재현해 내는데 심혈을 기울려 그 분야의 독보적인 업적을 쌓았다.
황종구는 일본에 유학하여 도자기를 더 배워서 해방 된 조국에 돌아와 이화대학에 근무하게 된다. 서로 헤어진 지 45년 세월이 흐른 1990년 어느 날, 황종구는 북한의 우치선으로부터 도예 작품 한 점을 받는다. 일본의 한 교포가 황종구의 작품 한 점을 북의 우치선에게 가져갔는데 그가 황종구에게 본인의 작품 한 점을 전달하며 우정을 표시하게 된 것이다. 황종구 선생의 생몰연대는 우치선 선생과 같다. 1919에 태어나 2003년에 죽었다.
우치선 선생이 재현한 고려청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고려청자 수준을 능가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남한에서는 1995년 9월 광주비엔날레에 처음 소개됐고, 2000년 3월 서울 명동 한국 관광 명품점에 작품이 전시됐다. 그리고 최근 강원도 양구 근현대사박물관에 도자기 한 점이 전시되어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한국의 명공이라 불리는 류해강 선생. 경기도 이천 도요지에 가면 1대 도공 류해강 선생이 99세까지 고려청자를 재현해 놓은 기념관이 있다고 들었다. 2대 도공 류광열씨가 가업을 계승하여 전통자기를 만들고 있단다. 오직 한 길을 고집하며 전통을 되살려 그 맥을 이어가는 분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옷깃이 여미어 진다.
요, 요놈, 귀여운 녀석들!
이곳 창작사에서 700여명의 예술가들이 그림, 도자기, 수예 등 각 분야를 연마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화 교실을 방문했다. 먹 냄새가 향긋하다. 나이 40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누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려 놓은 그림들이 벽에 걸려있다. 계곡 바위를 타고 물이 흐르는 경치다. 무슨 말을 붙인다는 게 결례가 될 성 싶어 그냥 그림 그리는 모습만 살펴보았다.
조각, 수예 등 각 분야를 차근차근 돌아볼 예정이었는데 오늘이 마침 예술인 체육대회 날이라고 한다. 모두 응원을 나가야 하는 모양이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세계 제일을 자랑한다는 수예교실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시간이 되면 다시 와 보기로 했다
걸어 나오면서 보니 탁아소가 보인다. 창작사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나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이들을 맡기는 곳이라고 한다. 꽤 큰 3층 건물이다. 건물 높은 곳에 “미래를 사랑하라”는 글씨가 보이고, 현관 위에 “경애하는 김정은 장군님 고맙습니다”는 글이 써 있다.

미국서 온 92세 할머니를 만났다
점심때가 다 됐다. 옥류관 냉면을 먹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나오는 길에 보니 아파트 골목에 나이든 아주머니가 앉아 고구마 배추 무 등을 팔고 있다. 건축현장에 붙어있는 “천년책임, 만년보증” 이라는 구호가 눈길을 끈다.
옥류관에 도착. 지난번처럼 2층으로 안내한다. 이층은 달러로 음식값을 지불하는 사람을 위한 별실이라고 했다. 냉면을 주문했다. 냉면은 메밀로 만든 국수라고 했다. 지난번 먹었던 쟁반국수와는 맛이 다를 거라며 김 참사가 구미를 돋운다.
옆 테이블에는 미국에서 왔다는 할머니가 10여명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모습이다. 할머니를 모시고 온 따님과 얘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92세, 따님도 알고보니 70가까운 할머니다.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미루면 죽어서도 한이 될 성 싶다고 해서 어머님 건강이 좋지 않아도 할 수 없이 모시고 왔다고 한다.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진즉 모시고 오지 못했나 싶어 후회가 된다고 한다. 고향이 뭔지, 핏줄이 뭔지 모르겠다고 눈물을 보인다. 92세 할머니에게 몇 년 만에 고향을 찾아오셨냐고 물었더니 “하매 70년은 됐지 싶어” 하신다.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분들은 조카들이라고 한다. 그 오랜 세월을 고향과 가족을 그리며 살아온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감자 부침개 하나가 접시에 담겨 나온다. 그리고 냉면이 나왔다. 식초와 간장, 겨자가 탁자 위에 놓여있다. 국수 위에 고기 몇 점, 그리고 고명을 얹은 다음 찐 계란 반쪽을 담았다. 국물 맛이 독특하다. 감칠맛 나고 시원한 육수다. 안내원에게 냉면 국물을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물었더니 "미안합네다‘ 그냥 웃으며 지나간다. 바쁜 시간이라 대답을 할 수가 없다는 얘기인지, 육수 만드는 법을 알지 못한다는 뜻인지, 어쩌면 둘 다 였는지도 모르겠다.
냉면을 먹으면서 메밀국수는 이렇게 차게만 먹는 음식일까 생각하다보니, 광주 충장로 ‘청운 모밀집’ 메밀국수가 생각났다. 고등학교 시절 많이 들렸던 곳이다. 평양냉면처럼 찬 육수가 아닌 뜨거운 멸치국물에 말아먹는 메밀국수였다. 가난한 청춘들은 더운 메밀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곤 했다. 국토횡단을 하면서 강원도 지방에서 먹었던 춘천막국수도 메밀로 만든 특별한 음식이었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 백석 시인의 <백화>라는 시에도 메밀국수 얘기가 나온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문학작품을 통해 음식 풍속이나 생활양식이 전해진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메밀국수는 남과 북에서 똑같이 즐겨 먹는, 우리 민족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다.
음식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낯선 지방을 여행할 때 그 지방의 특색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가 없다. 국토종단과 횡단을 하면서 두루 맛보았던 각 지방의 음식이 혀끝에 남아있다. 전남 장흥의 매생이국, 강진의 토하젓, 영암의 짱뚱어탕, 그리고 전주 콩나물국밥과 남문시장 순대가 기억에 남는다. 안동 간고등어, 평창시장의 메밀 부침개, 속초의 물회, 강원도 고성 대진항에서 맛봤던 숭어회 등.
이번 북한 방문 중에도 옥류관 냉면을 비롯, 비빔냉면 원조 함흥 신흥관, 개성의 13첩 한식, 원산 송도원 식당의 매운탕, 그리고 해금강에서 소주 안주로 올라왔던 낚시꾼에게 얻어왔다는 연어회. 이런 음식과 함께 풍경과 사연들이 기억된다.

용악산 법운암을 관람하다
김 참사가 오후에는 용악산을 가보자고 한다. 방북하기 전 읽었던 자료를 떠올린다. 용악산에 무슨 서원이 있었고, 김구 선생이 거처했던 암자가 있다더라는 얘기가 생각난다.
운전사 방 동무가 도착했다. 용악산까지 15km쯤 될거라고 한다. 시내를 빠져나가자 이내 단풍으로 덮인 산이 보인다. 산자락 끝에 이르니 맑은 호수가 있고 뒤편으로 아파트 몇 채가 서 있다. 아파트와 산 풍경이 어울리지 않는다. 내 고향 영암 월출산 산자락에 지어놓은 우뚝한 아파트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것처럼 생뚱맞다. “워~매, 좋은 산을 완전히 배래뿌렀네 잉!” 끝내 못마땅해 하던 친구의 말이 생각나 혼자서 웃었다.
단풍 숲으로 덮인 꼬불꼬불한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주차장이 나온다. 안내판이 서있다. 법운암은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기인 392년에 세워진 유적으로써 본전과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으로 이루어졌다, 고 한다. 관람요금은 어른 100원, 어린이 30원, 외국인은 1유로라고 적혀있다. 요금을 받는 사람도, 관람객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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