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아버지인가, 머슴인가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7년 01월 13일(금) 16:20
이른 아침, 커피 한 잔을 놓고 신문을 펼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촛불 시위 기사로 가득하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백만 시민의 함성이 광장에 넘실거린다. 민초가 내리치는 매서운 죽비소리다. 대통령 지지율이 4%라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한 미주 한인사회의 여론은 어떨까. 며칠 전 오피니언 난에 "탄핵과 하야만이 해결책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다음과 같은 요지였다.
"한 가정의 아버지가 너무 잘못했습니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잘못을 성토하며 나가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죄인의 모습으로 수치를 참고 견딥니다.…아버지를 내칠 것이냐, 아니면 가정을 살릴 것이냐를 택일해야 합니다. 모든 가족들은 아버지가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가정을 살리기로 했습니다. 일시적 감정으로 큰 것을 잃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의 모습입니다…."
옳은 얘기다. 잘못을 저질렀다고 아버지를 내쫒을 수는 없다. 자식이 아비를 버리다니. 그래서는 안 된다. 그건 패륜(悖倫)이다. 인륜(人倫)을 져버려서는 안 된다. 대통령을 아버지라고 가정하는 경우다.
그런데 대통령을 왕이라고 생각만 해도 얘기가 달라진다. 맹자나 루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군주가 군주다운 행동을 하지 못하면 백성은 그 군주를 갈아치울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배워 익히 알고 있다. 역사가 증명한다.
오피니언 글을 읽고 나서 좀 놀랐다. 이 시대에 대통령을 아버지로 여기는 분이 있다니. 그런 발상은 왕조시대나 가능한, 아니 왕조 때라 해도 과한 얘기다. 수령을 어버이로 받드는 북한체제에서나 통할 수 있는 논리다.
우리는 지금 주권재민(主權在民), 국민이 주인인 세상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이다. 헌법에 나와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1조2항),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다(7조1항). 대통령은 공복公僕, 즉 일정기간 국민을 위해 일하는 머슴일 뿐이다.
대통령은 아버지인가, 머슴인가. 인식의 차이는 크다. 대통령이 머슴이 되어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태도와 아버지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자세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해법도 그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을 아버지로 여긴다면 대통령이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하야나 탄핵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머슴이라고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머슴은 주인을 위해 일한다. 일을 잘하면 칭찬을 받겠지만 반대의 경우 주인은 머슴을 쫒아낼 권리가 있다.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머슴은 군말 없이 짐을 싸야한다. 그게 머슴의 운명이다.
대통령이 물러나야 하는가 아닌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어떤 존재인가, 기본 인식이 바로서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올바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생각의 기본이 바뀌어야 한다. 대통령은 아버지가 아니다. 머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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