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물었던 스물한 살 설날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
2017년 02월 27일(월) 17:07 |
그날 밤, 무릎까지 쌓인 눈에 푹푹 빠지며 나는 산 속을 혼자서 한없이 걸었다. 어둠 속에 우뚝우뚝 장승처럼 서 있는 나무를 붙들고 물었다. '평생 이렇게 지게질로 살아야 하나. 앞이 보이지 않는 내 인생을 어찌해야 하는가' 나무에게 묻고 또 물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는 이파리를 엎었다 뒤집었다 팔랑거리며 '살아보라' '살아보라'고 나를 향해 온몸을 흔들어 댔다.
끝 간 데 없이 넓은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서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도 메아리조차 없었다. 허지만, 강물이 흘러가며 몸을 뒤틀어 나직하게 들려주는 그 말을 나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썰물에 시커멓게 모습을 드러냈던 뻘등이 밀물이 밀려오자 다시금 질펀한 강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살을 에는 찬바람을 맞으며 거기서 그렇게 한 밤을 꼬박 새웠다. 어둠이 가고 뿌옇게 먼동이 터 올 무렵, 나는 결단 했다. '그래, 이제라도 학교에 가자.' 스물한 살 나이에 고등학교에 입학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내가 학생이 되다니! 가슴이 뛰었다. 내 앞에 펼쳐질 길을 생각하며 벅찬 설렘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젊은 날의 방황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그 때가 내 인생의 갈림길이었다.
스물한 살 늙은(?) 고등학생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광주에 올라와 야간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돈을 벌면서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인생이 만만한 게 아님을 하나씩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더디지만 한 걸음씩 나는 내가 정한 길을 따라 걸어갔다. 숨차게 내달아 마침내 가파른 언덕 하나를 올라섰고, 다시금 산 넘고 파도를 건너 내 길을 갈 수 있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방향이지 출발이 몇 해 더 빠르고 늦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무엇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어느새 40여 년 전의 일이 되었다. 되돌아보면, 내 길을 내가 걸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까지 당도할 수 있도록 고비 고비에서 나를 도와준 분들이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역사 하신다는 말을 배우면서 비로소 지난날들이 그 분의 은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 내 앞에 나타났던 사람이 하느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어떤 이가 하느님일 수도 있고,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해 하느님을 대신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감히 해 본다.
스물한 살 설을 떠올리면,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고향 산천이 저절로 따라온다. 칼바람을 맞으며 나무들과 얘기를 나누고 바람한테 의견을 구했던 그 날이 생각난다. 그리고 마침내 길을 찾아 집을 나서던 한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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