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이녁없이 친허게 사는것이 재미여”

군서 5일장 김규완·이수남씨 부부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2008년 07월 24일(목) 20:46
정겨운 삶의 체취 물씬 풍기는 장터
‘품앗이’에 후덕한 인심까지
훈훈한 이웃情 남아있는 곳
물가는 쉴새 없이 오르고 세상살이 각박해도 5일장에서는 서민들의 정겨운 웃음과 삶의 체취가 물씬 풍겨난다.

군서면 5일장 야채전. 모두 알만한 사람들만 모이는 면소재지 장터인지라 장꾼들사이 정감있고 풋풋한 대화가 오고가고 웃음이 터진다.

“어르신, 뭣 사로 나오겼소?” / “아짐, 어째 오늘은 혼자 나오겼소?” / “깨 폴러 갔소”

모두 이웃 사촌이고 한다리 건너 사돈에 팔촌인지라 아는 체 않고 그냥 넘어갈수가 없다. 식구들 안부 다 묻고 덕담을 주고 받아야 도리를 다 한듯. 뉘집 묏자리 옮겼다는 이야기부터 뉘집 아들 승진했다는 이야기까지 저마다 ‘장터통신’을 토해낸다.

점심 나절이 가까운 터라 한참 북적이던 장이 잠시 잠잠해진 시간이지만 물건 파는 아짐들은 지나는 사람에게 관심 보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어디서 외겠소? 뉘 찾소?” 멋적게 얼쩡거리는 낯선 사람에게도 관심을 보여야 직성이 풀린다. “아침 나절이 질로 바뻐. 사람들 볼라면 그때 와야제”

야채전에는 오이, 배추, 열무, 고추, 가지, 감자, 고구마순 등 집집마다 파는 품목은 비슷비슷하지만 주인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알뜰하다. 옆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물건을 대신 팔아주는 것은 ‘품앗이’. 인심 또한 후하다. 열무 한단에 감자 몇개는 덤이다. 거기다 외상까지.

“얼매요?” / “2천원만 주쑈”

“오메 내가 돈을 안갖고 나왔네, 이걸 어쩌…” / “글먼 다음에 주쑈”

아는 얼굴이므로 기약없는 다음 날을 약속하며 거래명세서 필요없는 외상. 얼굴만이 외상거래장이다.

점심 때다. 서너명씩 모여 각자 싸온 밥과 반찬을 펼쳐놓고 같이 식사하자며 주변사람을 불러모은다. “누구 된장 갖꼬 온 양반 이리 옷쇼. 쌈 싸먹게”

야채전에서 내외가 나란히 앉아 야채를 파는 김규완(71·남), 이수남(65·여)씨 부부.
영암읍 남풍리에 사는 이들 부부는 영암장과 군서장을 번갈아 오가며 야채를 판다. 손님들이 “어메? 영암장에서 봤는디 여기서 또 보네?”라며 아는체 하는것이 인사다.

바깥양반 김규완씨는 전북 진안이 고향이지만 무려 42년전 영암땅에 자리를 잡았고 이곳이 고향이 됐다.
“여기 남쪽으로 온께 사람 살만한 곳이드랑께, 장사를 혀도 먹고 살만헌 곳이드랑께, 모든 것이 풍부혔어”
본디 장꾼이었던 그는 젊었을 적에 전라도 땅 여기저기 안가본 곳이 없다. 해남으로 강진으로, 장흥으로 진도로, 완도로 남도땅 어디든 장을 찾아가 장사를 했다.

재래시장 경기가 시들해지면서, 그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먼곳까지 장사를 떠나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영암장과 군서장만 나온다. 자식들 다 키우고 먹고살만도 하지만 평생 해왔던 장사를 손 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일 안허고 집에서 놀면 몸이 아퍼버려. 또 이렇게 장사 나오면 오죽 재밌어, 다들 이녁없이 친허게 사는것이 또 재미제”

그는 “기름값, 비료값, 농자재값은 다 오르는디 이 채소값은 그대로여. 오히려 떨어져. 농사짓는 사람들이 질로 고생이제”라며 걱정섞인 한숨을 내쉰다.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아 끓이던 김규완씨가 점심을 거진 마친 야채전 주인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커피 한잔썩 허제~ 이리들 오랑께~”

사료값 폭등, 농자재값 폭등, 공공요금 폭등…. 서민들 삶에 밭고랑같은 주름살 질지라도 5일장에는 아직 이웃 챙겨주는 훈훈한 정(情) 남아있다.

달착지근한 커피 한잔 처럼.
/변중섭 기자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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