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제동원 참상 고발수기

이상업 선생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 2판 발행

이승범 기자 stonetigs@hanmail.net
2017년 06월 09일(금) 14:03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고 이상업 선생의 징용참상 고발수기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소명출판 刊) 2판이 발행됐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2판에는 야노 히데키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자 보상입법을 위한 한일공동행동 사무국장의 글이 새로 수록됐다.
야노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가 군함도 등 징용시설을 2015년 유네스코 산업유산으로 올린 문제와 관련해 2판 발행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일본 정부와 일부 학자가 '식민지배나 강제연행은 없었다', '탄광 현장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대우에 차이는 없었다' 등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수기가 역사 왜곡을 반박하는 실증자료라고 강조했다.
야노 사무국장은 "이상업 어르신이 동원된 가미야마다 탄광이 군함도와 같은 미쓰비시광업 소속 탄광이었다"며 "수기를 통해 군함도 탄광 노동과 조선인 노동자 처우가 어땠는지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판에는 저자인 이상업 선생이 '지옥 같은 곳'이라고 표현한 가미야마다 탄광을 일본인 학자 다케우치 야스히토가 조사한 내용도 일부 소개됐다.
다케우치는 가미야마다 탄광에서 사망한 조선인 노동자 가운데 이름이 확인된 사람이 66명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가미야마다 탄광이 소재한 일본 후쿠오카현 기록에는 1944년 1월까지 사망자가 44명으로 나와 있다.
한편 수기를 펴낸 이상업 선생은 아시아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3년 11월 열여섯의 나이에 후쿠오카현 미쓰비시광업 가미야마다(上山田) 탄광으로 끌려갔다. 지하 1500m 막장에서 하루 15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그는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세 번째 만에 탈출에 성공해 해방 뒤 고향에 돌아왔다.
이후 1948년 영암남초등학교를 시작으로 1994년 덕진초등학교 영보분교 정년퇴임까지 33년 동안 교단에 있었으며, 월출산을 마주보고 있는 고향 영암에서 생을 보내다 지난 5월26일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승범 기자 stonetig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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