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워드 라인(sword line)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7년 11월 03일(금) 11:53
영국 런던의 하원 의회 바닥에는 빨간색 두 줄이 그어져 있다. 양쪽에 서서 칼(sword)을 휘둘러도 닿지 않는 거리인 2.5m 너비라고 한다. 이름 하여 '스워드 라인'(sword line)이다.
영국이 의회정치가 태동한 나라긴 하나, 초창기에는 의원들 사이의 폭력사태가 매우 잦았다. 심지어는 패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의원 가운데 기사 출신은 의사당에서 칼부림을 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서로 무릎이 닿을 만큼 가까이 마주 앉아 치열한 논쟁을 벌이다보니 말보다 주먹이 앞설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바로 이 '스워드 라인'이다. 아무리 긴 칼로도 상대방을 찌를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하도록 양쪽으로 2.5m 간격을 둬 빨간 선을 그어놓은 것이다.
지금도 영국 의회는 이 스워드 라인을 두고 양대 정당의 대표들이 나와 연설을 주고받으며 이른바 '끝장토론'을 벌인다. 때론 단체로 서로에게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처럼 몸싸움은 물론이고, 물건 등을 집어던지는 추태는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만일에 이 스워드 라인을 넘거나 의원으로서 지켜야할 품위나 명예를 지키지 않으면 의장으로부터 호명을 받는다. 세 차례 이상이면 의회 출석이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영국 의회에서 의원들 사이의 폭력사태를 줄인 또 다른 장치가 있다. 바로 의원들이 서로를 호칭할 때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상대 의원을 진심으로 존경해서 붙이는 말은 아니다. 이보다는 상대 의원의 발언을 존중하고 인정하겠다는 취지다. 상대 의원이 말하는 동안 폭력을 쓰지 않고 끝까지 경청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놀랍게도 이 수식어가 도입된 이후 영국 의회에서는 몸싸움이 확연하게 줄었다고 한다.
구미 각국의 정치사를 훑어보면 의회 정치의 성숙은 폭력사태가 그 밑거름(?)이 된 경우가 많다. 미국 역시 100년 전만 해도 법안 심의 과정에서 의원들 사이의 주먹다짐은 예사였다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성숙하면서 이는 '역사'가 됐다. 과거처럼 치열한 법안 전쟁을 벌이기는 하지만 물리력으로 법안을 처리하거나 이를 저지하는 모습은 사라졌다. 반대를 위해서는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만 결과에는 깨끗이 승복한다. 그 다음엔 민의의 심판을 따르면 될 일이다.
우리의 국회 역시 영국 의회에서 유래한 이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상대 의원 이름 앞에 어김없이 붙여 쓴다. 그러나 그뿐이다. 영국 의회처럼 상대 의원의 발언을 존중하겠다는 고상한 취지 같은 것은 없다. 그냥 버릇처럼 쓸 뿐이다. 정당정치에서 정권교체는 당연한 일이지만 결코 승복하지 않는다. 새 정부 정책에 야당은 무조건 반대다. 권력을 쥔 상대방에 큰 흠집이 생겨야 다음 선거에서 권력을 빼앗아 올 수 있다고 여긴다. 심판에 담겼던 민의는 곧 잊혀진다. 잣대는 오직 내편 아니면 네 편의 '편 가르기'다. 내편이 아닌 네 편에서 하는 일은 무조건 틀리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인정하는 문화가 없어진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여전히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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