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聖火)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8년 04월 13일(금) 11:54
올림픽의 성화(聖火)가 처음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은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였다. 하지만 성화대가 따로 마련되지 않은 채 횃불처럼 꽂아놓은 상태였다. 따라서 성대한 성화 봉송식도 없었다고 한다.
높은 성화대가 마련되고 대회기간 내내 성화가 불타오른 것은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때부터였다. 당시 히틀러는 발칸반도 제국의 청년들을 동원해 고대 올림픽 개최지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태양으로 점화한 횃불을 베를린까지 3천㎞를 릴레이 시켰다.
히틀러를 추종하는 나치스 참모본부가 만든 '작전'이었던 성화 봉송과 성화대는 나치스의 절대 권력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이었다. 그리스에서 인근 7개국을 거쳐 독일까지 성화를 봉송하게 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펼쳐질 독일군 공격루트를 사전 답사하는 목적이었다. 지금 올림픽 성화가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과는 정반대다.
원래 성화는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픽 경기대회 기간 경기를 봉납하는 제우스 신전의 제단에 성화가 불타고 있었던 고사와 횃불경기에서 고안됐다고 한다. 올림픽에서 성화가 처음 불타오른 1928년부터 1948년까지는 그냥 '올림픽의 불(olympic fire)'이라고 불렀다. 1950년 올림픽헌장에 '성화(sacred olympic fire)'라고 공식 규정되면서 채화와 봉송은 비로소 대회 행사 가운데 하나가 된다. 1964년부터는 동계올림픽에서도 성화 봉송을 시작했다.
1968년 제19회 멕시코 대회 때는 성화 봉송 최종 주자가 남자에서 여자로 바뀐다.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 때는 남녀가 함께 등장했다. 아시아경기대회는 1951년 제1회 뉴델리대회 때부터 성화가 점화되기 시작했다. 그리스 올림피아가 아니라 개최국의 유서 깊은 곳에서 채화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1986년 열린 제10회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경주 화랑교육원에서 채화한 성화가 3개 코스로 나뉘어 서울로 봉송됐다.
우리의 전국체육대회에서는 1955년 제36회 대회 때 제2대 한국IOC위원인 이상백씨의 제의로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성화를 처음 채화했다. 이듬해 제37회 대회 때부터는 성화 봉송 행사도 등장했다.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는 1973년 제2회 대전 대회부터 성화가 등장했다. 1974년 제3회 서울 대회 때는 남산의 팔각정에서 채화했으나, 1975년 제4회 부산 대회부터는 경주 '화랑의 집'에서 채화하고 있다.
오는 4월 19일부터 나흘 동안 영암군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제57회 전라남도체육대회가 열린다. 당연히 성화 채화와 봉송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성화 채화는 오는 18일 월출산 천황사 바우제단과 영산호준공기념탑 등 2곳에서 이뤄져, 2개 코스로 나눠 성화 봉송이 이뤄진다. 군민 참여 분위기를 제고해 축제의 장으로 만들자는 취지다. 성화 채화와 봉송 행사로 한마음이 된 군민들의 역량이 영암군 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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