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배를 끝내고 토란국을 먹으니…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8년 11월 09일(금) 13:20
나는 내 자신과 싸움을 하러간다. 항상 나에게 모든 것에 대해 곱다, 밉다, 싫다, 좋다, 맛있다. 맛없다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놈과 맞장을 뜨고 싶었는데, 이번 절 수행 때 어떻게 생긴 놈인지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어 집을 나선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퇴직 후 몸담고 있는 회사 일과 집안 일 등이 산적해있지만, 나 자신 부터 돌봐야겠기에 어려울 결정을 하고 움직여본다. 절 수행이란 108배나 천배나 3천배나 만배나 마(魔)가 없을 수는 없다. 다만 형태나 크기가 다른 뿐이다, 나는 지난 2000년 초부터 108배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매일 아침 108배로 하루를 시작하니까 절 수행은 꽤 오래된 셈이다.
광주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곡성군 관읍사가 있다. 나는 지난달 스님께 11월 1일 부터 3박 4일 절 수행할 것을 말씀드렸고, 승낙을 받은 참이다. 오후 5시쯤 도착해 여장을 풀고 저녁공양과 차담을 마친 뒤 잠자리에 든다. 모처럼 산사에 누워 잠을 청하니 잠은 오지 않고 공상 만 가득하다. 뒤척뒤척하다 보니 새벽 2시다. 잠이 오질 않아 절 수행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만배를 하려면 매일 3천300배를 해야 하니 오늘 목포는 3천300배다.
절 수행을 하는 곳은 관음성지로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원통전(圓通殿)으로 정하고 좌복을 깔고 절을 시작한다, 절이란 이상하다. 108배를 하나, 천배를 하나, 3천배를 하나, 소위 마(魔)라는 것이 있다. 다만 절의 숫자와 마는 크기와 형태만 다른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아! 마가 오는구나, 아! 마가 가는구나’하고 알아차리면서 절을 하려 한다. 어떤 스님은 절 수행이 자신의 화(성냄)를 다스리는 데는 최고의 수행이라고 말씀하신다. 서원(誓願)을 세워본다. 절 수행으로 오는 육체적 고통을 통해 나의 내면세계를 발견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라고.
첫날 500배까지 왼 무릎에서 뚝뚝 소리가 나 듣기가 곤란했다, 2천배가 지나니 척추와 허리 주변에 통증이 느껴진다. 5년 전 절 수행 때는 무릎아래 정강이 뼈, 비골주변이 끊어질 것 같이 아파지만, 오늘은 상체 척추와 늑골주변에 통증이 온다. 절 수행을 마치니 오후 6시다. 주변을 정리하고 나서 잠자리로 향한다. 평소는 11경 잠자리에 들지만,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해본다. 이틀째 절 수행은 참으로 힘들었다. 전날의 절 수행으로 팔다리 근육들이 뭉쳐 고통이 배가되는 느낌이다. 나는 이 통증을 즐겨야겠다고 다짐하고 거듭 힘을 낸다. 마음속으로 ‘김보환, 너는 무엇을 위해 고통을 참고 절 수행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혼자 웃는다. 허허허…
참으로 힘든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오늘은 3천배로 마무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공기밥과 김치, 콩조림을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허기를 때운다. 이런 상태로는 내일 절 수행이 불가능할 것 같아 걱정된다.
마지막 날이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방문을 여니 차가운 기운이 뺨을 때린다. 관음사가 있는 곳의 온도는 광주시에 비해 3∼4도 정도 낮다. 오늘은 다른 날과는 달리 수많은 새벽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정말 아름답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낫기를 바라면서 새벽 4시부터 절 수행을 시작한다. 어제보다는 근육이 풀려 통증이 덜한 것 같다. 하지만 2천배를 하고나니 양쪽 발등과 발목의 통증이 심해 아주 견디기 힘들어진다. 다른 부위는 절하면서 고통을 참으면 되지만 발등은 구부렸다 펴니 발목 또한 고통 그 자체다. 나는 사력(死力)을 다해 고통을 이겨내자 다짐하며 3천700배를 마치니 오후 6시다. 어느덧 관음사에 땅거미가 지고 있다. 나는 바삐 회향 준비를 한다.
영암읍 회문리에 살던 어느 노인의 외침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사랑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화녀(火女)의 웃음이요, 여름밤의 반딧불이요, 물거품이요, 풀잎의 이슬이요, 순간(瞬間)이자 찰나(刹那)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멋진 말씀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불교경전인 금강경(金剛經 금강반야바라밀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알 수가 없었다. 그 때는 무슨 말이지 몰라 노인이 지나면 옆으로 피하곤 했는데, 지금 만난다면 대포라도 한잔 했을 터이다….
사람의 생(生)과 사(死)는 순간이고 찰나다. 너무나 짧다. 1초 1분 1시간이 너무도 소중한 이유다. 물리적으로 1초에 460m를 간다고 한다. 하루에는 3만9천㎞를 간다. 1시간이 아깝다, 하루가 아깝다, 우리는 시시각각 죽음으로 치닫고 있다. 그것도 모르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심과 집착으로 가득한 것이 인간이다. 우리에게 그릇의 양이 정해졌다면, 아니 다음 생이 있다면 더 큰 그릇으로 태어나야 하지 않는가, 어차피 업의 종자를 가지고 태어나 선업(善業)은 쌓고 악업(惡業)은 소멸(消滅)되어야 할 것 아닌가?
극락전과 원통전의 불을 끄니 다시 밤하늘은 별들뿐이다. 들려오는 이름 모를 짐승들 소리와 냇물소리만 밤하늘의 적막을 깬다. 조금 전 서울의 아내가 “집에 가면 토란국을 끓여두었으니 보온밥통의 밥과 함께 먹으라”는 연락이 왔다.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마음은 편안해지고 조금은 희열이 느껴진. 절 수행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서 토란국을 먹을 생각을 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행복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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