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배 소비촉진

김재원 전남도종합민원실장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08년 10월 10일(금) 10:01
충격적인 소식이다. 멀쩡하게 생긴 배를 폐기 처분한단다. 농림수산식품부가 농협을 통해 일정량의 배를 사들여 폐기 처분한다고 발표했다. 폐기 대상은 병해충이 먹지 않고 흠도 없는 정상 규격품이다. 산지 농협별로 농가의 동의를 얻어 과잉 생산된 물량을 자율 폐기하는 협약을 맺고 이달 중순부터 시행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폐기할 물량은 1만여 톤. 이에 따른 농가손실분(44억원)은 농산물 가격안정 기금으로 보전한다는 방침이다.

우리 전라남도에서도 그 동안 정부에 배 값 하락에 따른 배 수매지원 등 특별대책 마련을 여러 차례 건의했었다. 하지만 막상 일부 배를 사들여 폐기한다는 소식을 접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으로 고급 과일에 속하는 배가 이렇게 수난을 당하는 것은 과잉 생산과 소비 둔화에 원인이 있다.

올해 배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많이 늘었다. 과일이 한창 자랄 때인 6~7월께 마른장마로 비가 적어 과실이 토실토실 여문 덕이다. 뿐만 아니라 8~9월엔 고온이 지속돼 병충해까지 거의 생기지 않았다. 태풍이나 장마 같은 기상재해도 발생하지 않아 작황이 더 없이 좋았다. 풍부한 햇볕 덕분에 맛과 당도 또한 최고를 뽐낸다. 과수농가 입장에서 보면 하늘까지 도운 풍작인 셈이다.

반면 소비는 계속된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큰 폭으로 줄었다. 배 소비 성수기인 추석 때 소비량이 지난해 절반 수준도 되지 않았다니 사정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배 재배 농민들이 이른 추석을 겨냥해 수확을 서두르면서 홍수출하까지 이뤄져 배 값이 폭락했다. 오죽하면 농민들 입에서 “풍년이 원망스럽다”는 말까지 나올까 싶다.

이뿐인가. 올해 기름값이 과히 살인적이다 싶을 만큼 올랐다. 각종 농자재 값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농민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외국산 과일도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다.

풍년농사를 짓고도 농민들의 얼굴에 웃음은커녕 수심이 가득하고 주름만 늘어가는 이유다. 자식 돌보듯 애지중지 키운 과일이 제 가격을 받지 못해 땀의 대가는 놔두더라도 판로가 막막할 뿐이다. 설사 팔더라도 생산비마저 건질 수 없는 현실이 우리 농민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소비자의 현명한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하시기를 조절해야 하네, 유통구조가 잘못됐네 하는 식의 공방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탐스럽게 익은 배를 몽땅 폐기하기 전에 소비촉진에 팔을 걷어야 할 판이다.

배가 우리 몸에 좋다는 건 누구나 익히 아는 사실이다. 석세포가 적은 배는 과육이 연하고 부드러우며 과즙이 많다. 아삭아삭한 맛이 그만이다. 우리 몸에 쌓인 발암물질을 빠르게 배출시키는 기능도 탁월하다. 암 예방효과가 크다는 연구결과 발표도 나왔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배 한 상자를 사려면 솔직히 주머니를 먼저 매만져야 했었다. 몇 번을 망설일 정도로 가격이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값이 많이 떨어져 예전의 절반도 안 되는 값으로 거뜬히 살 수 있다.

과일을 명절에만 먹는 시대도 벌써 지났다. 그 동안 가격 부담 때문에 배를 충분히 먹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맛있는 배를 실컷 먹어보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가까운 친지와 이웃들한테 배 한 상자씩 선물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현대삼호중공업 같은 큰 기업에서 배 소비촉진에 앞장서는 것도 지역사랑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소비자는 맛있는 배를 값싸게 사먹을 수 있고, 농민들은 다시 한번 농사지을 힘을 얻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배는 또 토양과 기후를 중시하면서 자연의 방식대로 생산된 제철 과일(슬로푸드)이다.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도, 친환경농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의 농업과 농촌을 지킨다는 측면에서도 생산적인 일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지금부터라도 수요와 공급을 예측해 생산량을 조절하고 저장시설 확충, 판로개척, 유통구조 개선 등을 서둘러야 한다. 생산농민들도 고급화, 명품화, 특성화로 경쟁력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난 봄 하얀 배꽃으로 멋진 경관을 연출, 보는 이로 하여금 그윽한 향취에 젖게 한 배 과원을 내년에도 다시 볼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현명한 판단과 노력이 필요할 때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이 기사는 영암군민신문 홈페이지(yanews.net)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yanews.net/article.php?aid=228798970
프린트 시간 : 2024년 10월 20일 14:46:13